[대중문화 오지날] 빈센조, 중국산 즉석 비빔밥 먹고 체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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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빈센조, 중국산 즉석 비빔밥 먹고 체할라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8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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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즉석 비빔밥 PPL이 불러온 논란
역사의식과 국민감정까지 지켜주는 콘텐츠 제작을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잘나가던 드라마가 PPL로 시끄럽다. tvN 드라마 ‘빈센조’ 이야기다. 드라마는 이탈리아에서 마피아 조직의 변호사였던 ‘빈센조(송중기 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14일 방송된 8회에서 나왔다. 

주인공 빈센조가 먹은 즉석 비빔밥 브랜드가 중국산이었다. 짧게 지나간 장면이었지만 품목이 한국 전통 음식인 비빔밥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유튜버와 네티즌들이 최근 한복과 김치의 원조가 중국이라 주장해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중국산 비빔밥 PPL을 굳이 해야 했냐는 지적이다.

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사진=tvN ‘빈센조’ 방송 캡처
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사진=tvN ‘빈센조’ 방송 캡처

중국 제품 PPL이 많이 보이는 요즘

지난 몇 년간 한국 콘텐츠에 ‘중국 PPL’이 과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기도 했겠지만, 중국 자본이 한국 콘텐츠에 투자를 많이 한 데 따른 반대급부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서 논란이 된 바도 있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들이 편의점에서 중국산 인스턴트 훠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주인공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중국 기업 로고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또한, 중국산으로 보이는 제품들이 로고와 함께 나온 장면들이 여러 번 나왔다. 누가 봐도 PPL로 보였다.

영화도 중국 PPL로 의심되는 장면이 나왔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승리호’에서 주인공이 중국 소설인 ‘영웅문(英雄門)’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PPL이 아니고 서사적인 장치라 주장했지만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흐름이 이상했던 장면이었다. 일각에서는 ‘승리호’에 투자한 중국계 투자사와 중국어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방편이 아니겠냐는 분석도 있었다.

PPL이라서 문제일까, 아니면 중국산이라서 문제가 된 걸까

PPL(Product Placement)은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에게 예산 확보를 도와주는 선택지 중 하나다. 다만 콘텐츠 흐름에 잘 녹아들어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PPL이 있었는지 모르게 하는 게 미덕이다. 하지만 광고주의 입김에 따라 노골적으로 등장시킨다거나 때로는 대본을 고치기까지 한다고 한다. 

미국 영화 ‘트루먼 쇼’를 보면 트루먼(짐 캐리 분) 주변 연기자들이 어떻게 PPL을 넣는지 잘 나오고, 국내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면 드라마 작가와 감독이 PPL을 두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잘 나온다.

어느 인터넷 포털의 드라마 ‘빈센조’ 실시간 게시판에서 PPL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았다. 뜬금없는 PPL이 드라마 집중에 방해되었다는 취지와 중국 제품이 PPL로 나오는데 그것이 한국 음식인 비빔밥이라서 짜증난다는 취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중국에서 온 PPL이 싫다는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문 여론조사기관이 분석한 통계는 아니지만, 중국산이 한국 콘텐츠에 PPL로 등장하는 데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반응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tvN 드라마 ‘빈센조’에 나온 중국산 즉석 비빔밥. 사진=tvN ‘빈센조’ 방송 캡처
tvN 드라마 ‘빈센조’에 나온 중국산 즉석 비빔밥. 사진=tvN ‘빈센조’ 방송 캡처

막무가내식 ‘중화’ 주장에는 이성적 비판으로 대응을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나라이지만 중국산이라서 무조건 싫다는 식의 의견 피력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정적 대응은 오히려 중국 측에 역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과 비난은 그 근거가 단단해야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제품을 보이콧 했을 때를 보자. 그때는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들의 반역사적 행위와 발언을 응징하는 의미가 강했다. 일본제라서 보이콧한 게 아니라, 그들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는 데다 왜곡된 발언까지 해서 우리 국민이 항의 표시로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여행도 가지 않은 것이다.

드라마 ‘빈센조’의 중국산 즉석 비빔밥 PPL을 들여다보면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떠오른다.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중국 동북쪽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말한다. 예를 들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한 것이다. 이러한 동북공정의 목적은 중국인들과 외국인들에게 그렇게 믿게 하려는 데 있다.

최근 중국의 유튜버들과 네티즌들이 한복과 김치의 원조가 중국이라고 우겼다. 심지어 민족시인 ‘윤동주’마저 조선족이라고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막무가내식 ‘중화(中華)’ 주장은 결국 중국 정부가 벌여온 동북공정이 중국인들 뇌리에 자리 잡은 결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저쪽이 막무가내로 나온다고 해서 이쪽까지 감정적으로 나가면 오히려 빌미를 내어줄 수도 있다. 비빔밥도 중국 음식이라 우길 수 있는. 그러니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사실과 근거를 담아서 제대로 대응하면 어떨까. 

한국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할수록 감내해야 하는 것은 많아지고

이 모든 일은 국내 자본만으로 제작하기에는 한국 콘텐츠 규모가 커져 외국 자본을 끌어들인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그 자본의 많은 비중이 중국 측에서 오는 현실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자본의 힘 앞에서 표현의 자유는 지분만큼만 행사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제작사가 중국 돈을 받았을 때 이미 그들에게 받은 돈만큼 표현의 지분을 줘 버린 것이다. 결국, 빌미를 한국 제작사가 주었다.

그 여파가 송중기의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결과를 불렀다. 실시간 게시판을 보면 중국산 PPL 비판 못지않게 송중기를 비난하는 분위기도 거세다. 왜 그 상황을 거부하지 않았느냐며. 

한편, 해외에 얼굴이 많이 알려진 송중기가 연기한, 중국산 즉석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생각해 보았다. 비빔밥이 중국 음식이라고 오해하는 외국인들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상위권에 자리하는 비빔밥이 드라마에 나온 단 몇 초의 장면 때문에 중국산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영상이 이미 흘러지나 간 마당에 굳이 책임을 묻기보다는 앞으로 재발 방지를 요청하고 싶다. 제작사와 연출진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기왕이면 역사와 국민감정에 맞춘 콘텐츠로, 그리고 PPL도 선을 지키며 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소한, 빌미는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해서 인기를 얻는 것은 물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의 마음부터 사로잡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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