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통신] 남자가 된 여군...한국과 달랐던 인도네시아 軍최고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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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통신] 남자가 된 여군...한국과 달랐던 인도네시아 軍최고사령관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 승인 2021.03.13 11: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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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하열' 기형에 여자로 자란 군인 스토리, 이슬람사회에 비상한 관심
군부내 최고사령관, "이등하사는 남자" 보고받은후 조언하고 변호해줘
최근 미남으로 변한 모습에 인도네시아 젊은이들 '열광'...아직은 여군
한국 군지휘부가 버린 '변희수 하사의 죽음' 안타까워...성소수자들의 인권 보호해야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오피니언뉴스=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아쁘릴리아 산티니 망아낭 (Aprilia Santini Manganang). 

아쁘릴리아는 영어의 April에서 온 이름. 1992년 4월 27일생에 전 프로 여자배구 선수를 했고, 현재는 육군 이등하사다. 변한 것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지난 3월 9일 인도네시아 남부 자카르타 육군사령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안디카 뻐르까라(Andika Perkara) 육군사령관은 아쁘릴리아 망아낭(Aprilia Manganang) 육군 이등하사와 관련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예쁜 여자이름의 육군 이등하사의 '비극'

그녀가 실은 요도구 기형인 '하이포스페이디어스(Hypospadias)'를 가진 남성이라는 것. 하이퍼스페이디어스는 '요도하열'이라고도 알려진, 요도가 음경 밑에 뚫리는 질병이다. 극단적인 경우 음낭 가까이에 있기도 해 마치 여성의 음부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 수술을 하면 제 위치에 요도구가 있도록 교정할 수 있다. 

안디카 육군 사령관은 "이 생식기 기형은 사실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남자 아이 출생시에 발견되는 이상 사례중 두 번째로 흔한 것"이라고 친철히 설명하기도 했다.  

아쁘릴리아 산티니 망아낭 (Aprilia Santini Manganang) 육군 이등하사.
아쁘릴리아 산티니 망아낭 (Aprilia Santini Manganang) 육군 이등하사.

육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의학에 무지했던 아쁘릴리아 망아낭의 가족들, 출산을 도운 산파는 요도하열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쁘릴리아를 여자아이로 판단했고 그래서 아쁘릴리아는 여자로 성장했다. 

요도하열 문제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달 전인 2021년 2월 3일. 아쁘릴리아가 육군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분비가 많고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체내기관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테스토스테론은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

현역 배구선수 시절의 아쁘릴리아. 사진= Liputan6.com
현역 배구선수 시절의 아쁘릴리아. 사진= Liputan6.com

육군병원의 검사결과를 보고받은 안디카 사령관은 아쁘릴리아 망아낭 이등하사를 직접 만났다. 그는 상황을 그녀에게 설명해주고, 교정수술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쁘릴리아 망아낭은 사령관의 제의대로 교정수술에 동의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한 매체와의 비대면 인터뷰에서 “도움을 준 의사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난 28년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바람이 마침내 올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고 기뻐했다. 

유명한 여자배구선수 출신...선수 시절 '남자 아니냐' 의혹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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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태어난 여자아이란 뜻을 가진 ‘아쁘릴리아’라는 이름은 영어 에이프릴(April)에서 따온 것. 그 예쁜 이름과 달리 아쁘릴리아는 배구선수 시절 남성 못지않은 기량으로 배구 팬들의 시선을 모았던 인기 운동선수였다.  

지난 2015년 SEA(Southeast Asian Game)게임에서 인도네시아 여자배구 대표팀이 필리핀을 3 대 0으로 재압했을 당시, 필리핀팀 코치는 아쁘릴리아를 보고 남자가 여자팀에 들어와 부정행위를 한다고 제소했다. 아쁘릴리아는 건장한 체형에 가슴도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콧수염도 보였다. 하지만 SEA게임 조직위원회는 이 의구심을 기각했다. 아쁘릴리아가 남성 체형의 여자 배구선수로 중학교 시절부터 유명했다는 이유였다. 

현역 배구선수 시절 스파이크를 때리는 아쁘릴리아. 사진= CNN Indonesia 캡처
현역 배구선수 시절 스파이크를 때리는 아쁘릴리아. 사진= CNN Indonesia 캡처

그 역시 자신이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실제 성별이 남자라는 것까진 정말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직도 인도네시아 육군 여군여단 소속이다.

아쁘릴리아는 그 후에도 뛰어난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프로팀에 입단해 인도네시아 프로배구리그인 쁘로리가(Proliga)에서 뛰면서 네차례 팀 우승에 기여했다. MVP도 두 번 차지했다.  

아쁘릴리아 자신도, 배구계의 모든 이들도 그가 여자라고 믿었지만, 2015년 SEA게임 당시 필리핀팀 코치의 의구심대로 그는 여자 배구계에서 뛰는 사실상 남성이었고 그 완력과 스테미너는 다른 모든 여자선수들을 압도했다.

그는 2018년 9월 11일 배구계를 은퇴했고 그간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이번 성별교정 소식과 함께 다시 대중의 시선을 받게 됐다. 

보수적 이슬람사회와 군부, 조용히 지켜보는 이유는

그런데 보수적인 인도네시아 이슬람 사회가 이번 아쁘릴리아의 성별 변경 뉴스에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의아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얼마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변희수 하사의 안타까운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던 변 하사가 여성으로 성전환했다는 사실만 판단해 군에서 퇴출시켰던 대한민국 육군 지휘부는 아쁘릴리아의 성별 교정을 적극적으로 돕고 응원해 준 인도네시아 육군지휘부와 어떻게 다른 걸까?

물론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고 비교하기엔 여러 차이점이 있다. 우선 아쁘릴리아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이 바뀐 점이 차이중에 하나라고 할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이른바 '신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오래전 가족의 무지로 인해 발생한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만약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꾸는 방향이었다면 선천적 기형의 교정이라 해도 인도네시아 이슬람계가 이렇게 조용하진 않았을 것 같다.

또다른 차이점은 우리나라 군 수뇌부가 변희수 하사를 버린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 육군사령관은 육군본부 장성들을 뒤에 앉혀 놓고 직접 아쁘릴리아 이등하사의 상태와 성별조정에 대해 설명하고 변호한 모습이다.  

군 조직 최고 정점에 있는 인물이 적극적으로 아쁘릴리아 편에 선 상황인 만큼 누구도 감히 아쁘릴리아를 비난하기 어려웠다. 

육군본부 기자회견에서 아쁘릴리아 이등하사의 상태를 설명하는 안디카 뻐르까라 육군사령관. 사진= liputan6.com
육군본부 기자회견에서 아쁘릴리아 이등하사의 상태를 설명하는 안디카 뻐르까라 육군사령관. 사진= liputan6.com

그렇지만 그동안 아쁘릴리아가 여자 배구선수로서 일구었던 업적, 팀 우승과 자신이 MVP를 받았던 일들을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남성이 여자배구에서 뛰어 얻은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육군사령관의 발표가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아직 이에 대한 불만이나 비난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아쁘릴리아가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성별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나중에 유명한 배구선수로 성공했지만 성 정체성 문제에 시달렸던 유년시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마당에 비난보다는 동정하는 여론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동정여론이 이는 사회 분위기에는 최근 남성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가 마치 로또 맞은 복권처럼 엄청난 미남이 되었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헬스장에서 운동중인 아쁘릴리의 최근 모습. 남성으로서 자신감이 넘친다. 사진= sports.sindonews.com
헬스장에서 운동중인 아쁘릴리아의 최근 모습. 남성으로서 자신감이 넘친다. 사진= sports.sindonews.com

아쁘릴리아 망아낭 이등하사의 새로운 삶은 진심으로 축하받아 마땅하다. 그는 이제 곧 합법적으로 남성의 지위와 그에 걸맞는 새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떠올린 고 변희수 하사를 애도하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성소수자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축복하고 싶다.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은 1995년 당시 (주)한화 무역부문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입성했다. 2016년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을 지냈고, 재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가 있고, 한국외대 양승윤 명예교수와 함께 <막스 하벨라르>를 공동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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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욕 2021-06-06 07:35:39
변희수 사건은 안타깝지만 비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본다.인도네시아같은 경우 성소수자도 트랜스젠더도 아닌 무지에 의해 성별을 잘못 판단한 것을 고쳤을 뿐이지..성을 선택하지도 바꾸지도 않은 경운데 어떻게 비교를 하나?

202 2021-03-13 12:25:56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인간의 고귀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