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평범하기에 위대한 존재, 가족 – 영화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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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평범하기에 위대한 존재, 가족 – 영화 ‘미나리’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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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밥은 먹었니?”

극장을 나서며 문뜩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드렸다. 자식의 삼시세끼가 늘 궁금한 엄마, 아니다.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을 달고 사시는 엄마다.

“아직 못 먹었어...”

이런 솔직함 따위는 걱정의 무게를 키울 뿐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난 꽤 긴 세월 철부지 딸이었던 것 같다. 

“잘 챙겨먹었어”

엄마를 위한 착한 거짓말을 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복받치는 감정에 전화를 끊었다. 살가운 딸이 되지 못한 미안함이 죄스러움으로 바뀌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는데, 잘 아는데... 난 왜 이거밖에 안 되는 자식인건지....

영화를 보고 순간순간 코끝이 찡했던 감정들이 엄마와의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난 뒤 결국에 터져버렸다.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싶어 가방을 뒤적거려 손수건을 꺼낸다.

평범해서 특별한 내러티브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일이었다. 이는 용기라는 무기 하나로 낯선 땅에 뿌리내린 이민자들의 고생스런 삶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말이기도 했다. 

카메라에 담긴 아칸소의 푸른 초원은 한 폭의 그림 같지만 꿈을 꾸기에는 척박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 바퀴 달린 집(트레일러 주택)은 제이콥(스티븐 연)의 가족에게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견뎌내야만’ 하는 공간이다. 정착하기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곳, 모니카(한예리)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농장을 만들어 꿈을 이룬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제이콥과 아이들을 위해 도시로 가고 싶은 모니카, ‘가족’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해 동상이몽을 꾸는 부부의 삶은 위태롭지만 그래도 단단하다. 마치 바람따라 이리저리 움직일 것 같은 불안한 바퀴 달린 집이 꿈쩍 않고 너른 대지위에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그 곳에 순자(윤여정)가 찾아온다. 멸치, 고춧가루, 아픈 손자 데이빗(앨런 김)에게 먹일 한약과 딸에게 줄 돈봉투까지 가지고서... 신파 대신 선택한 밝은 캐릭터는 외려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엄마의 내면을 숨긴 것 같아 가슴이 아려온다.

할머니답지 않은 할머니와의 동거가 싫기만 한 데이빗과 앤(노엘 조)의 거리두기에도 순자는 특유의 투박한 따뜻함으로 피붙이들을 보듬는다.

심장이 약해 뛸 수 없는 손자에게 ‘스트롱 보이’라고 불러주고, 위험하다고 가지 못했던 산기슭 냇가에 데려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심어보이기도 한다. 시나브로 정(情)이 스며들며 거리두기는 자연스레 해제된다. 

억척스럽게 일하는 제이콥과 모니카는 시공을 초월해 우리네 부모님들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다. 감독의 자전적인 스토리라는 특별함 보다 1980년대를 살아간 이들의 평범함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내러티브는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데이빗의 건강이 호전되고 제이콥의 농장 일이 풀리는 순간, 그럼에도 꽃길은 허락되지 않는다. 찰나의 행복과 긴 고통이 오버랩 되는 것이 마치 인생인 것처럼. 

화염에 휩싸인 저장고는 그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을 법도 한데, 감독은 결코 고통을 그리지 않는다. 눈물을 유도하지 않는 대신 스크린 너머의 삶에 관객은 자연스레 상상 속에서 공감하게 된다. 

영화 미나리. 

미나리, 가족에 대한 은유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자신의 쓸모없음을 느끼고 가족에게서 사라지려는 순자에게 데이빗이 건네는 이 말은 영화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명대사 중의 명대사다.

심장이 아파 뛸 수 없었던 아이가, 밀어내려고 했던 할머니에게 뛰어가 함께 하잔다. 애써 노력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기적은 그렇게 찾아온다. 가족이 전부 아닌가. 그거면 된거다. 파문이 인 듯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일렁거린다. 

데이빗을 데리고 제이콥은 이제는 무성하게 자란 미나리를 캐며 영화는 끝난다. 미나리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은 이들 가족의 또다시 시작하는 삶에 대한 은유다. 낯선 곳에서 꿈을 향해 끈질기게 버텨내는 서사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평범한 풀' 미나리는 순자가 말했듯 ‘원더풀’이다.

소박한 작품이 빚어내는 일상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 흔한 반전도, 낭만도 없다. 소소한 웃음과 이따금씩 울컥거림이 교차하고 피곤한 삶이 반복된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친근하다. 마치 그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순도 100% 그 자체다. 자연스러움에 빛이 난다. 

영화 ‘미나리’는 열린 결말이지만 난 감히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분명 더 단단해졌을 테니 말이다. 

가족은 시공을 초월한 진리다. 공기 같아서 평범하지만 공기 같기에 위대하다. 

그래서 가족은 원더풀이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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