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비트코인에 관한 불편한 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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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비트코인에 관한 불편한 산술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1.03.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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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 평가된 비트코인, 지급수단 아니기에 가격 크게 출렁거려
일론 머스크, 지급수단? 큰 착각...비트코인과 전기차간 '물물교환' 구상일 뿐
비트코인, 법정화폐될 가능성 크지 않아...당분간 '불편한 산술' 계속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학자에게는 자기 논문이 끊임없이 인용되고 읽히는 것이 큰 보람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사전트와 네일 왈라스가 쓴 “통화주의자의 불편한 산술(Some Unpleasant Monetarist Arithmetic)”이라는 논문이 그렇다. 1981년 발표된 후 엄청나게 인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제목의 패러디 논문들도 무수히 쏟아졌다.

그 논문은 짧고 메시지가 아주 명쾌하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늘릴 때 중앙은행이 국채를 인수하면 통화량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초래된다. 국채를 인수하지 않으면, 시장금리가 상승하여 국가부채의 증가속도가 빨라진다. 어느 경우에나 중앙은행은 괴롭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재정정책에서 별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결론이다. 불편하고 염세적이다.

이 글은 비트코인에 관한, 불편하고 염세적인 사실을 다룬다. 지금의 비트코인의 가격은 비정상적이거나 비트코인은 지급수단이 아니다. 그런 결론이 기분 나쁜 사람들은 여기서 읽기를 중단해도 좋다.

비트코인 알고리즘

비트코인은 약 10분마다 1개의 블록이 형성되고 블록 형성에 성공한 채굴자에게는 보상(reward)이 지급된다. 보상규모는 처음에 50개(비트코인)였지만, 약 4년마다(정확히 말하면, 블록체인이 21만개 늘어날 때마다) 절반으로 줄어든다. 즉, 50개, 25개, 12.5개 순으로 반감되어 왔고 2020년 3월부터는 6.25개다.

그 보상으로 인해서 하루 900개(=시간당 약 6블록X 24시간X 6.25개) 정도가 늘어나며, 이 글을 쓰는 현재 비트코인의 발행량은 1863만919개다. 발행 상한선 2100만개를 향하여 발행량은 계속 늘고 보상규모는 계속 줄어드니까 증가율은 결국 0%를 향해 수렴한다. 2020년 중 증가율은 2.5%였다. 같은 기간에 미 달러화는 37%나 늘어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비트코인 가격 평가

지난해 비트코인의 가격은 305%나 상승했다. 그 정도의 가격상승이 정상적일까? 그것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가 있다. 이자율평가(interest rate parity) 모형이다. 이자율평가 모형은 미래의 환율을 계산할 때 쓰는 것이지만, 스스로 자라나는 두 생명체의 향후 교환비율을 점검할 때도 쓸 수 있다. 성장속도가 다른 고구마와 감자의 1년 뒤 교환비율을 따져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달러화와 비트코인을 고구마와 감자라고 생각하자(그래서 단위는 모두 개다).

2019년말 현재 미 달러화와 비트코인의 교환비율은 7158대 1이었다(1비트코인=7158달러). 그 상태에서 지난해 미 달러화는 37% 증가하고, 비트코인은 2.5% 증가했다. 양자의 증가율 격차만 감안한다면 2020년 말 미 달러화와 비트코인의 교환비율은 9567대 1(=(1+0.37)/(1+0.025) X 7158)이어야 적당하다. 2019년말과 비교해 보면, 작년 말 실제 가격 2만8996달러는 3배 이상 과대평가된 것이다.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비트코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것은 불편한 산술(some unpleasant arithmetic)이다. 물론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첫 번째 반론은 2019년 말의 교환비율이다. 만일 2019년 말 달러화와 교환비율이 2만1000대 1이었다면, 2020년말의 2만8996대 1이야말로 정상적인 교환비율이다. 즉 과거의 가격으로 현재의 가격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현물환율이 맞고 선물환율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두 번째 반론은 비트코인 수요의 폭증이다. 애초에 이자율평가 모형을 적용할 때 달러화와 비트코인을 고구마와 감자로 생각했다. 양자의 성장속도 또는 수확량의 차이라는 물리적 측면만 살핀 것이다. 투자자의 수요라는 심리적 측면을 감안하는 순간 이자율평가 모형은 무력해 진다.

비트코인은 미 달러와와 경쟁하는 지급수단이 아니기에 가격이 크게 출렁일 수 밖에 없다. 사진= 연합뉴스
비트코인은 미 달러와와 경쟁하는 지급수단이 아니기에 가격이 크게 출렁일 수 밖에 없다. 사진= 연합뉴스

결 론

지금까지의 시도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다. 일종의 공상이요, 얼빠진 계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사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얼빠진 계산이 시사하는 바는, 비트코인은 지급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비트코인이 미 달러화와 경쟁하는 지급수단이라면, 이자율평가 모형을 통해 서로 얽히게 된다. 과거의 가격과 증가율 격차 등에 의하여 경쟁재들과 거미줄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지금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이유는 그것이 지급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8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이 15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샀다고 밝히고, 자신의 회사가 만드는 전기자동차 테슬라도 앞으로 비트코인을 받고 팔겠다고 발표했다. 그 보도가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 폭등을 촉발했다.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PayPal)이라는 간편지급 플랫폼에 투자했던 사람이다. 그런 지급결제 전문가가 비트코인에 자신감을 갖고 거액을 투자했으므로 비트코인이 장차 지급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 것이다.

큰 착각이다. 지급수단이 되려면, 일단 가치가 안정되어야 한다. 머스크의 발언은, 앞으로 법정화폐 대신 물물교환 방식으로 전기자동차를 팔겠다는 뜻이다. 지급방식의 발전이 아니라 후퇴인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화폐는 장차 사라지는 것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법정화폐가 무엇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흔히 법정화폐는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많은 나라에서는 일정 한도를 넘는 동전은 수취를 거절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에서 지폐도 거절하고 신용카드만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용카드만 받는 공용 주차장이 많다. 소위 계약자유의 원칙이 법화를 우선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는 법화의 상식적 특성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재 각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데, 그것이 법화가 될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하 70도에 보관해야 하는 화이자사의 코로나19 백신이 법화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1992년 핀란드중앙은행은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카드 형태의 디지털화폐(Avant)를 발행했지만, 단말기가 있어야 쓸 수 있다는 이유로 법화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2년 만에 중단했다. 스웨덴중앙은행은 똑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 2019년 국회에 법화의 조건에 대한 질의서를 보낸 뒤 지금까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노르웨이중앙은행도 CBDC 발행의 첫 번째 과제를 법화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앙은행들조차 법화에 대해서 자신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은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중앙은행들과 입법부까지 잠 못 이루게 한다. 당분간 ‘불편한 산술’과 함께 사고실험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참고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에서는 화폐가 무엇인지를 두고 20년 이상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다(bullionist controversy). 새로운 시대의 입구에서 돈이 무엇인지를 두고 헤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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