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연극평론가의 육아 일기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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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연극평론가의 육아 일기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
  • 문주용 기자
  • 승인 2021.02.2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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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롤앤 출판사, 애지니아빠 지음/이강훈 그림
10년동안 받아적은 딸아이의 말을 책으로 펴내
"아이의 말은 어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말의 원래 모양 아닐까"

[오피니언뉴스=문주용 기자] 육아하는 부모가 느끼는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아이가 입으로 소리낼 때 아닐까. 정확한 발음이 아닌데도, 엄마, 아빠라 불렀다고 우기게 되는 순간 말이다.

"10년 가까이 오랫동안 딸의 언어를 받아적은 아빠가 있을까요. 항상 같이 있었고, 언제든 받아적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죠. 그 말을 모아 책을 냈어요."

연극평론가 조만수 충북대 교수가 육아중인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을 만한 책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출판사 파롤앤)>을 냈다.

늦게 본 딸인 '애지니'가 3살때부터 11살때까지 낳은 옹알거림에서 촌철살인급 문장들을 받아적은 글중 추려내 펴낸 것.

애지니가 어떤 말을 남겼는지 살짝 들춰보자.

<행복이 가득한 집>

매미 소리가 잦아든 한여름의 밤. 약하게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이 더운 기운을 곁으로 날려버린다. 배가 불룩하도록 수박을 잔뜩 먹고 애지니는 잠자리에 누웠다. 먼저 누운 엄마를 껴안는다. 엄마는 미동도 없다. 눕자마자 바로 잠들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잠든 엄마를 끌어안고 기분이 좋아 애지니는 혼자 중얼거린다.

"아, 좋다. 눈 오는 날 집에 있는 느낌이야."

눈 오는 날, 눈에 맞는 느낌이 아니라 집에 있는 느낌은 뭘까. 그것도 한여름에....

 

애지니가 막 7살이 됐을 때를 소개한 대목도 있다.

<끈적이>

함께 TV를 보는데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에게 멋진 대사를 날린다. 드라마 대사를 따라하는 습관을 가진 아빠가 애지니에게 "이것만은 명심해. 네가 어디에 있든 이제부터 내가 너와 함께라는 것을!"

애지니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된다. 그리고 이내 부르르 진저리를 떨며 아빠를 밀치며 소리친다.

"이.... 끈적끈적아!"

평론가인 아빠는 이 말에 대해 생각을 덧붙인다. '끈적거린다'는 말을 이런 때 쓰는 줄 몰랐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상황에 맞는 말을 골라할까? 정말 말은 배우는 게 아니라 몸 안에 그냥 저장되어 있다가 알맞은 상황이 되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아이들의 말은 엉뚱하다. 아이니까 할 수 있는 말들은 어른의 상상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재미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하지만 사실 말의 원래 모양새는 아이들의 것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왜곡시킨 말이 아닌 말의 원래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면 살며시 아이에게 다가가 귀 기울여보자"고 조언한다.

하지만, 아빠인 저자가 이 책을 냈다는 건, 더이상 '애지니'가 말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곧 중 2가 되는 애지니에게 더이상 말을 받아적을 기회가 얼마 전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아빠는 실감했다. 애지니는 대신 세상의 말들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하는지를 관찰하고 따라한다. 다행히(?) 중2가 되니, 삐딱하게 자기만의 세상을 그려가리라 짐작한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아빠가 바라는 것은 그 안에도 웃음이 있기를. 세상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말은 웃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런 마음으로 시종일관 "아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관찰자로만 있고자 애썼다"고 했다. 때문에 저자의 본명도 책에 남기지 않았다. 어른의 생각이 읽히기 보다는 '애지니'의 말에 눈길가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었을까.

작가인 조만수 교수는 충북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며 연극을 만들고, 연극에 관한 글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의 그림을 그린 이강훈은 대학에서 시작디자인을 전공했다.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명 작가로, 틈틈히 달리거나 이야기를 쓴다. 400여권의 단행본에 그림을 그렸고 <도쿄 펄프픽션>, <나의 지중해식 인사> 등을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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