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복의 세계잡학사전] 얄마르 샤흐트:히틀러 시대 獨중앙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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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복의 세계잡학사전] 얄마르 샤흐트:히틀러 시대 獨중앙은행 총재
  •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 승인 2021.02.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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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前 두차례 중앙은행 총재 역임한 샤흐트
보건 주택등 민생 위한 '재정지출 확대' 적극 주장
나치와 결탁...전범임에도 전범재판서 무죄받아
재정 역할 논란...샤흐트 선례보며 "확대하되 더 창의적이어야"
위민복 외교부 외교사무관
위민복 외교부 외교사무관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각국 중앙은행 및 여러 금융기관들이 출자해 설립한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Centre for Economic Policy Research)라는 곳이 있다. 이 연구센터의 웹사이트로서 VoxEU는 경제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정책제언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긴축 재정을 하면 극우가 준동한다"

2020년 한창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8월에 올라온 기사가 하나 있다.

<재정긴축과 나치의 부상(浮上) / Fiscal austerity and the rise of the Nazis>(2020년 8월 16일): https://voxeu.org/article/fiscal-austerity-and-rise-nazis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재정을 생각하면서 긴축정책을 펼쳤다가 나치가 정권을 잡는 상황을 조성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다. 특히 보건과 주택 예산에 있어서의 재정 긴축이 독일 국민들의 표심을 대거 나치로 움직이게 했다면서, 1930년 뉴욕타임스와 얄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의 인터뷰 기사가 인용되어 있다. '굶주리면 굶주릴수록 더 많은 히틀러가 나오리라'는 발언이다. (Hjalmar는 주로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얄마르”라고 읽는다. '헬멧을 쓴 용사'라는 의미의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히틀러와 샤흐트. 키가 컸던 샤흐트는 항상 와이셔츠 깃을 바싹 세우고 다녔다.
히틀러와 샤흐트. 키가 컸던 샤흐트는 항상 와이셔츠 깃을 바싹 세우고 다녔다.

재정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했던 샤흐트

얄마르 샤흐트라는 사람은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라 할 것이다. 재정의 역할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19라는 복병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 주제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어왔었고, 특히 래리 서머스 미 하버드대 교수의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직전, 2020년 전미경제학회에서도 주된 토론 주제였다. 이 현대적인 재정의 역할이라는 답변이 어쩌면…?

SCHACHT, HERE, SEES WARNING IN FASCISM; Former Reichsbank Head Says Vote Is Germany's Demand for New Deal From Allies. RIDICULES FEAR OF HITLER Predicts Many More Like Hint if Nation Is to "Starve"--Calls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1930년 10월 3일): https://www.nytimes.com/1930/10/03/archives/schacht-here-sees-warning-in-fascism-former-reichsbank-head-says.html
SCHACHT, HERE, SEES WARNING IN FASCISM; Former Reichsbank Head Says Vote Is Germany's Demand for New Deal From Allies. RIDICULES FEAR OF HITLER Predicts Many More Like Hint if Nation Is to "Starve"--Calls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1930년 10월 3일): https://www.nytimes.com/1930/10/03/archives/schacht-here-sees-warning-in-fascism-former-reichsbank-head-says.html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얄마르 샤흐트는 독일 중앙은행(Reichsbank) 총재를 두 번(1923~1930년, 1933~1939년) 지내면서 20세기 전반기 독일 경제를 두 번 살린 사람이라 해도 과장되지 않다. 그리고 그 수단은 1920년대의 렌텐마르크(Rentenmark)와 1930년대의 어음 발행, 그러니까 결국 둘 다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의 나치 협력 때문에 크게 강조되지 않는, 좀 묘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렌텐마르크는 1923년부터 1948년까지 바이마르 공화국이 발행했던 일종의 IOU(차용증서)이다. 행정부가 전권을 갖는 전권위임법(Ermächtigungsgesetz, 1923년 2월-1924년 3월)을 통해 발행했는데 법정통화는 아니었지만 법정통화처럼 사용됐다. 실물(금)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IOU가 중요한 이유는 유로 위기와 관련, 이탈리아에서 2018년 총선 당시 제기됐던 아이디어 때문이다. mini-BOT이라는 단기채권을 지폐처럼 발행해서 쓰자는 내용이었는데, 유로 탈퇴의 징검다리가 될 만한 사안이었다. 다행히 이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쳤다.

렌텐마르크 실물. 렌텐마르크는 결국 제국마르크(Reichsmark)의 창설로 연결됐고, 당시 심각했던 하이퍼 인플레이션가 종료된다.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1/ZweiRentenmarka.jpg
렌텐마르크 실물. 렌텐마르크는 결국 제국마르크(Reichsmark)의 창설로 연결됐고, 당시 심각했던 하이퍼 인플레이션가 종료된다.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1/ZweiRentenmarka.jpg

1930년대 어음이라는 것은, 외파어음(Öffa-Wechsel)과 메포어음(Mefo-wechsel)을 의미한다. 각각 독일공공일자리회사와 제철연구소라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어음을 발행했다. 제국은행이 지급보증을 하고 이자를 지급해 현금화를 억누르는 등 중앙은행 장부나 정부 재정회계에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막대한 재정팽창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의 독일중앙은행.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Reichsbank
당시의 독일중앙은행.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Reichsbank

1930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보듯, 샤흐트 독일중앙은행 총재는 히틀러의 나치에 대해 처음에는 그리 동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앞뒤가 좀 달랐다. 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긴축주의를 반대했으면서도, 독일 내에서는 긴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면당하다시피 해 중앙은행 총재 직을 사임한 것이다. 그후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 1893~1945년)의원과 어울려 다니다가 파시즘 연구회(Gesellschaft zum Studium des Faschismus)에 가입한다.

파시즘 연구회 소속 인원들은 대체로 나치 정권에서 고위직에 올랐고, 이 연구회에 기업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대표적으로는 BMW를 움직이는 크반트 가문을 일으켰던 기업가 귄터 크반트(Günther Quandt, 1881-1954)가 있다.

귄터 크반트.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GüntherQuandt
귄터 크반트.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GüntherQuandt

"히틀러 총리 임명해야" 앞장섰던 샤흐트

얄마르 샤흐트는 그 후 독일중앙은행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1932년 히틀러 총리 임명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산업계의 청원(Industrielleneingabe)'을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그리고는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자 그는 다시 중앙은행 총재로 복귀한다. '산업계의 청원'은 샤흐트가 주도했으며 여기에 참여한 총 19명의 기업가와 은행가들은 “특정 정당의 입장을 떠나” 히틀러의 총리 임명을 강행해야 한다는 의도를 적어 놓았다. 하지만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 청원을 곧바로 받아주지는 않았다.

이제 적극적인 나치 동조자가 된 그는 '황금나치당원뱃지(Goldenes Parteiabzeichen der NSDAP)'도 히틀러로부터 직접 받고, 당비도 100제국마르크씩 납부했다. 히틀러는 물론 나치 고위관료들과 어울려다녔으며, 그리고 중앙은행총재 외에 경제부장관도 맡는다.

1934년 제국중앙은행 회의장면. 맨 왼쪽이 샤흐트 총재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le:BundesarchivBild183-H29131,Reichsbank,SitzungderTransferkommission.jpg
1934년 제국중앙은행 회의장면. 맨 왼쪽이 샤흐트 총재.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le:BundesarchivBild183-H29131,Reichsbank,SitzungderTransferkommission.jpg

그런데 이때부터 히틀러와 충돌이 시작된다. 히틀러는 전쟁 대비를 위해 자급자족 모델을 선호했지만, 경제학자로서 샤흐트는 자급자족이 비효율적이라 여겼다. 게다가 샤흐트는 어음 발행을 통한 재정팽창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결국은 정부가 이를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전쟁준비가 한창인데 그게 통할 리 만무했으며, 실권은 점차 괴링에게 넘어갔다.

'발키리 작전'에 연루돼 체포...전범재판에서 '무죄 석방'

그래서 1937년에 경제부장관을, 1939년에는 중앙총재직을 사임한다. 이때부터는 히틀러와 샤흐트의 사이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44년 '발키리 작전', 즉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돼 게슈타포에게 체포됐었고 결국 그는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샤흐트에게 다시 인생의 반전이 온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유리하게 작용됐던 것. 전쟁 시작 전에 이미 나치와의 끈이 떨어졌고, 심지어 히틀러 암살에도 연루됐기 때문이다.

1946년 그는 무죄 방면된다. 전후 그는 여러 개도국 경제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독일 내에서는 전직 나치 당원들이 세운 극우단체인 '자유저널리즘협회(Gesellschaft für freie Publizistik)'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의 피고들 중 가장 높은 IQ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샤흐트.(At the Nuremberg trials several Nazi leaders achieved genius-level scores on an IQ test. Highest result was 143!(2016년 9월 15일): https://www.thevintagenews.com/2016/09/15/nuremberg-trials-several-nazi-leaders-achieved-genius-level-scores-iq-test-highest-result-143/)

보건 주택등 민생에는 재정지출하되 창의적이어야

종합해 보면, 그는 현대 경제에 있어서 중대한 정책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면 위에 언급된 보건이나 주택 등 민생에 밀접한 부문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이며, 재정에 최대한 부담을 안 주는 '창의적인 재정확대책'도 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도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모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으며, 전쟁 기간 중에는 나치와 소원해지기도 했다. 전후에는 자신이 나치 당원이 아니었다고 뻔뻔하게 발언했다가 결국은 극우단체 활동으로 여생을 보냈다. 여담이지만 현재 국내에 얄마르 샤흐트를 본격적으로 그리고 있는 책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필자인 위민복은 외교부에서 주로 통상 분야에, 최근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근무했다. 전공은 경제학이며 전공 공부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석사까지만 받았다. 평소에 잡다한 주제로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 물론 성씨가 같아(?) 친숙한 '위키피디어'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지인들 사이에 '한국의 걸어다니는 위키피디아'로 불린다. 동 칼럼은 필자가 속한 기관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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