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홍차, 1939년 중일전쟁중 군비조달 목적으로 탄생
정산소종, 훈연향이 독특한 홍차...유럽서 각별한 대접받아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 홍차는 기문홍차, 운남홍차(전홍), 정산소종(랍상소우총) 이렇게 세 종류다. 각자 독특한 맛과 향 그리고 탄생하게 된 나름의 역사적 배경과 전설을 갖고 있다.
이들 중국홍차는 싹과 어린잎 위주로 가공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싹과 어린잎이 부드럽고 연약하니 당연히) 유념도 약하게 해서 찻잎에 상처를 적게 내고 찻잎 형태도 가능하면 원래의 모습(Whole leaf)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우유와 설탕 넣는 것을 염두에 둔 영국식 홍차 가공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도 4~ 5분 정도가 적당하다(찻잎에 상처가 적으니 우러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국 홍차는 떫지 않고 부드러워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아도 (인도,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지는 영국식 홍차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감미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초, 청말, 국민당정부시절 속속 탄생한 중국 홍차들
기문홍차는 안휘성 기문현에서 1875년경 처음 만들어졌다. 중국 홍차를 대표하며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와 함께 세계 3대 홍차라고 알려져 있다(누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는 모른다)
좋은 기문홍차는 건조한 카카오 매스의 쌉쌀한 맛에 난 꽃 향이 조화되었다고 평가받는 매우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워낙 독특한 향이라 홍차 세계에서는 그 자체로 기문향(Keemun Fragrance)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문홍차의 묘하고 약간 중국스러운 이국적인 향이 우리나라에서 훈연향(燻煙香)으로 아주 크게 잘못 알려져 있다.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전홍(滇紅:전이 운남성을 뜻함으로, 운남홍차라는 뜻이다)은 탄생 배경이 매우 드라마틱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중국 남동부의 모든 항구를 점령하면서 차를 수출할 수 있는 통로가 없어졌다. 다행히 보이차 생산으로 유명한 운남성에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버마(미얀마)로 연결되는 도로가(Burma Road) 있었다. 이 길을 통해 차를 수출해 국민당의 전비(戰費)를 조달할 목적으로 1939년부터 운남성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홍차가 전홍이다.
당시 홍콩을 통해 영국으로 수출되어 반응이 좋았다. 1986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운남성을 방문했을 때 전홍을 선물로 받는 뉴스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디감 있고 다소 무거운 듯 하면서도 섬세한 맛을 가지며 기문홍차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중국홍차다. 전홍은 대부분의 중국홍차와는 달리 대엽종으로 만든다.
정산소종(랍상소우총)은 홍차탄생에 관한 또 다른 전설을 가지고 있는 홍차다. 부분산화차(우롱차)의 탄생지로 알려진 푸젠성 무이산에서 생산된다. 가공단계에서 특이하게 연기를 쐬는 과정이 있어 완성된 차에서 연기(燻煙-훈연향이라고 한다)향이 난다.
전설에 의하면 명말청초 혼란기에 차농들이 차를 생산하던 중 청나라 군사가 온다는 소식에 만들던 찻잎을 숨기고 피난 갔다가 돌아오니 찻잎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급히 건조하느라 불을 지피는 과정 중에 연기향이 스며들어 못 쓰는 차가 되었다고 싸게 팔았는데, 이것을 구입해 간 유럽인들이 이 맛과 향을 더 좋아해 홍차의 기원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직접 방문해 본 무이산 동목촌(정산소종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해발이 높고 계곡이 많아 안개가 빈번한 매우 깊은 산속에 위치했다. 필자의 눈에도 그랬지만 차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곳은 햇빛이 충분치 않아 원래부터 불을 지펴서 찻잎을 건조했다고 한다. 연재 글 11번 <홍차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에서도 말했지만 홍차는 어느 한 시기에 짠 하고 등장한 것이 아니다. 전설은 그냥 전설일 뿐이다.
정산소종도 나중에 홍차로 발전하게 된 여러 차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만 훈연향이 나는 유일한 것으로 아주 오랫동안 유럽에서 각별히 대접받은 차 인 것은 분명하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정산소종은 훈연이 매우 부드럽게 되어 섬세한 맛과 향을 가진다. 반면 서양에서는 매우 강한 훈연향이 나면서 “랍상소우총(LAPSANG SOUCHONG)”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판매된다. 우리나라 애호가들에게는 정로환 냄새가 난다고 알려진 호불호가 뚜렷한 홍차다. 사실 두 차의 시작은 같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공과정에서 차이가 생겼고 그것이 맛과 향의 차이로 이어졌다.
중국 고급홍차에 도전하는 인도·스리랑카·케냐 홍차
차 연구자들은 경제성장으로 형성된 중국 소비자층이 고급차에도 본격적으로 돈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06년 전후로 본다.
이 무렵 정산소종이 생산되는 동목촌에서 개발되어 출시된 홍차가 금준미(金駿眉)다. 매우 비싼 가격으로 유명하다. 이른 봄 싹으로만 가공해 섬세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바디감은 강하고 다소 무거운 듯한 느낌도 준다. 매력적인 맛과 향을 가진 것은 맞지만 값이 너무 비싸 필자는 가성비 측면에서 선호하지 않는 홍차다.
싹과 어린 잎 위주로 만든 중국홍차는 오랫동안 인도/스리랑카 홍차와는 차별화된 맛과 향을 가졌었다. 최근 들어 고급차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인도, 스리랑카, 케냐 등에서도 기존 생산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싹과 어린 잎 위주의 고급홍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홍차와는 품종과 떼루아가 다른 이들 국가의 고급홍차는 맛과 향에서 어떤 차이를 가지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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