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나발니 구속後 '독일 노르트스트림2'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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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나발니 구속後 '독일 노르트스트림2' 어디로 가나
  •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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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나발니 구속후 EU 외교관 추방..EU도 맞불 외교戰
EU, 노르트스트림2사업 등 3개 對러 제재안 발표
독일 메르켈 총리 반발...재생에너지 전환정책 차질 우려
주독미군 철수 철회한 미국도 독일에 '친러정책 반대' 압박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지난 2월 8일 독일 외교부는 자국내 주재하던 러시아 대사관 직원 1명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5일 러시아가 독일을 포함한 스웨덴, 폴란드의 EU 외교관을 추방한 것에 대한 대응 조치라는 설명을 붙였다. 

러시아가 먼저 EU외교관을 추방, 관계 악화를 자초했다. 러시아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구속에 항의하는 집회에 이들이 참여했다는 이유다. 반면 이들 외교관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현장에서 사태보고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양측 모두 상대방 조치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러시아와 EU간 외교적 갈등이 빠른 시일내 가라앉기는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와 EU간 외교관 맞추방 사태의 진앙인 나발니 사건은 지난 해 8월 러시아 정부 소행으로 추정되는 독극물 중독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러시아 의료진들은 독극물에 의한 독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서방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이 거처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나발니는 베를린으로 후송돼 목숨을 건지게 됐다. 그러나 독일 의료진들은 나발니 체내에서 신경작용제를 찾아냈다고 발표하면서 양측이 긴장관계로 빠져들었다. 

이어 러시아의 주요 야권 인사로 푸틴 대통령의 잠재적 경쟁자인 나발니는 회복되자마자 모스크바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독일도 그의 출국을 막지 않았다. 올해 1월 17일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된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1월 23일부터 영하 50도에 이르는 강추위 속에 러시아 전역에서 그의 석방을 위한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위가 몇 주째 계속되면서 체포된 사람들도 5천명을 넘었다. 시위가 누그러지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 정부의 불만은 시위에 참여한 EU외교관들에게 향했다. EU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심기가 불편해진 러시아가 '외교관 추방'이라는 카드로 자신들의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합법적 절차를 거친 업무였다고 주장하는 EU회원국들 입장에서 이 사태를 절대 가볍게 넘기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경찰이 친나발니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다. 출처= APNews
러시아 경찰이 친나발니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다. 출처= APNews

EU, 나발니 구금관련 '러시아 제재' 구상중

양측 외교관 추방 사태의 피해 당사국 중 한 곳인 독일은 러시아와 매우 애매한 관계에 놓여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2월 9일 EU의 외교안보 고위대표인 조셉 보렐(Josep Borrell)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렐 대표는 나발니 체포와 관련, 러시아가 전제주의적이고 민주적 법치주의에 대한 관용을 찾아볼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와 함께 민주적 가치를 자국 통치의 외적 위협요소로 간주하고 있다며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포함한 다양한 조치를 고려해야 할 시기라고 언급했다.

러시아에 대해 신규 제재를 시사한 조셉 보렐 EU외교안보 고위대표. 출처= APNews
러시아에 대해 신규 제재를 시사한 조셉 보렐 EU외교안보 고위대표. 출처= APNews

이미 유럽의회는 지난 1월 21일 나발니 구속과 관련해 러시아 제재를 요청하는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유럽의회 발표에 따르면 첫째, 알렉세이 나발니 구금결정에 관여한 러시아 공무원과 푸틴 대통령 측근에 대한 제재, 둘째 EU로 향하는 러시아 불법자금 유입 차단, 셋째 독-러 천연가스 수송사업인 노르트스트림2(Nord Stream 2)의 즉각적인 중단 등이 제재안의 골자다.

EU의 대러시아 제재, 독일의 불편한 입장

독일은 이같은 제재가 실현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나라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많은 러시아인들이 독일로 유입돼 현재 독일에는 비EU권 국가출신 중 터키 다음으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스파이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주요 열강들의 첩보전 무대가 된 베를린은 작년에도 러시아 정부의 사주를 받은 체첸반군 살인사건이 있었다. 베를린에는 러시아 마피아와 러시아의 검은 돈이 늘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발니 구속에 대한 제재안으로 나온 독-러 천연가스 수송사업에 대한 EU의 전면적, 영구적 중단 요구는 독일정치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총 사업비 95억 유로(약 12조8000억원 )로 투자규모가 엄청난데다 이미 90%이상 완공된 만큼, 수송관 사업 자체를 중단한다는 것은 독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 의회도 지난해 12월 해당 사업에 대한 제재를 결의한 바 있으며, 그 직접적인 제재 대상으로 러시아의 파이프설비선인 '포투나(Fortuna)'호가 지목됐다. 미국이 독일에게 해당 사업을 재고하길 바란다고 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상승에 따른 ‘EU 안보의 위협’이다.

EU의회에서 노르트스트림 2 사업 중단을 요구한 결의안이 581명 의원들의 절대적 지지(50명 반대, 44명 기권)를 받으며 통과됐다는 점 역시 갈등의 골이 심상치않음을 보여준다. 

비록 비구속적 결의이긴 하지만, 절대 다수의 유럽의회 의원들은 독일이 유럽내로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반감이 큰 게 사실이다. 미국이 반대하고 있는 이유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폴란드는 해당 사업을 중단할 것을 계속 주장해왔다. 우크라이나와 발틱국가들의 우려도 동일선상에 있다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1일 프랑스마저 독일에게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도입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독일에 전달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임기마무리 시기의 메르켈 총리, 정치력 시험대가 될 것

이에 따라 오는 9월 임기가 만료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놓인 것으로 해석된다. 메르켈 총리는 EU 회원국과 미국의 노르트스트림2 사업중단 요구에 반발하는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이치벨레(Deutsch Welle)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와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임을 밝히고, 미국이 자국문제가 아닌 역외 사안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럽의회나 유럽외교안보를 맡고있는 보렐 대표는 회원국의 경제적 결정사항에 대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러나 독일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종국에는 EU 전체의 에너지 안보를 적성국가인 러시아에게 맡기는 것이라며 EU는 공동운명체임을 잊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반면 메르켈 총리로서는 독일 재생에너지 전환정책의 큰 골격중 하나인 러시아 천연가스도입 사업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국가경제의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지난 2월 5일 미국의 주독미군 철수 계획이 철회된 뒤 독일은 나토군에 대한 국방비 지출을 트럼프 전 미대통령이 요구한 GDP 2%를 맞춰주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메르켈 총리가 미국과 어떠한 담판을 벌일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천연가스 수송사업은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가?

● 필자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며 오피니언뉴스 베를린 통신원 활동을 겸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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