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인포르메] '이베리코 돼지' 나라에 ‘비건’ 열풍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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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인포르메] '이베리코 돼지' 나라에 ‘비건’ 열풍이 분다
  • 최지윤 스페인 마드리드 통신원
  • 승인 2021.02.1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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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육류를 사랑하는 나라' 스페인, 비건 바람 불어
가축 사육에 동물 복지 비난· 건강 우려·환경 훼손 우려 '배경'
1주일 비건생활 체험에 불편함 없어...장기적으로 확산될 듯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이베리코 돼지’는 소위 질 좋은 품종으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 대표 돼지고기 이름이다. 세계 수출량이 많아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스페인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도축된 돼지의 수는 5천만 마리를 넘어 전국민 숫자 4650만명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전통 방식으로 돼지를 숙성시킨 ‘하몬’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자 생산량이 폭등한 탓이다. 이 소식은 여러 나라에 보도됐고 채식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의 많은 원성을 사기도 했다.

'고기' 좋아하는 나라에 웬 '비건' 바람

한 UN 보고서에서 오늘날 지구인들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60년대 이후 약 20kg 정도 증가한 1인당 약 43kg 가량이라고 한다. 이 보고서는 1인당 GDP가 증가하며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개인의 육류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상관관계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특히 유럽과 북미 국가의 경우 1인당 육류 소비량이 80kg을 기록, 세계 평균보다 두배나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중에서도 스페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2017년 기준 100.25kg을 기록해 유럽 1, 2위를 다툴 정도다. 최근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바뀌는 추세인 한국과 비교해도 고기를 많이 섭취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과한 육류 소비량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과 스페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을 비교한 그래프. 2017년을 기준으로 스페인은 100.25kg, 한국은 70.7kg을 기록하고 있다. 자료=UN 식량농업기구
한국과 스페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을 비교한 그래프. 2017년을 기준으로 스페인은 100.25kg, 한국은 70.7kg을 기록하고 있다. 자료=UN 식량농업기구

그런데 앞서 살펴본 통계와는 상반되게, 스페인 일간지 더로칼은 스페인내에 자신을 ‘완전 채식주의자(비건)’라고 말하는 인구가 0.1% 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수치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페인은 세계에서 비건이 가장 많은 열 번째 나라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아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스페인의 베지테리언(지속적인 채식주의자) 비율은 1.5%(약 70만 명), 비건 비율은 0.2%(약 10만 명)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주요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전통적으로 육식을 즐기던 스페인 식습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에다 '건강 우려'도 급증

채식주의의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는다”라는 오해가 흔했지만, 채식주의에는 제법 다양한 단계가 있다. 사람마다 채식주의를 하는 이유와 동기,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유연하게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부터 과일과 견과류, 곡류의 섭취만을 허용하는 ‘프루테리언’까지 그 종류가 다양한 것.

마드리드의 컨설팅 회사 랜턴의 보고서(그린 레볼루션)에 따르면, 7.9%의 스페인 인구가 ‘플렉시테리언’이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채식을 하지만 가끔 고기와 생선을 섭취한다. 유연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육식을 기피하는 채식주의자는 스페인 인구의 총 9.9%이다. 스페인 리서치 회사인 IRI는 스페인의 식물성 육류 판매는 Covid-19 팬데믹 이후 454%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스페인에서 채식주의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세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는 ‘동물 복지에 대한 우려의 증가’다. 농지에서 사육되는 동물에게 개선된 환경과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덕이다. 

두 번째는 ‘붉은 육류와 가공육으로 인한 건강염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은 하몬을 비롯해 가공육 소비 또한 매우 높은 국가로, 암과 심혈관 질환 발생이 많아지자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특정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어서 육류나 유제품 섭취를 하지 않는 사람도 물론 많다.

마지막으로 ‘육류 산업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도 비건 확대의 이유다. 고기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되어 홍수, 이상 기온 등 지구의 생태계가 서서히 파괴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돼지고기로 인해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약 60억 유로가 넘는다.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양돈 사업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온실가스의 일정 부분이 가축 사육으로 인해 발생한다. 특히 스페인은 연간 강수량이 적어 가뭄에 굉장히 취약한 나라인데, 돼지 한 마리를 사육하는 데 하루에 15ℓ(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여러 비정부기구(NGO) 단체는 동물의 배설물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될 위험이 매우 높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스페인 환경부는 농장의 위생, 동물의 복지 및 사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스페인의 대체 육류 제조 회사인 에우라의 제품.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유명하고, 콩으로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사진=heurafoods.com
스페인의 대체 육류 제조 회사인 에우라의 제품.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유명하고, 콩으로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사진=heurafoods.com

육류 대체 식품 판매도 급증...락토프리 '마실거리'도

이런 흐름속에 육류 대체 식품을 생산 판매하는 회사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스페인 유명 비건 브랜드인 '에우라 푸드(Heura Food)'의 CEO 마크 콜로마는 “식물 기반 식품이 세계 다른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전역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육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건강한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식물 기반 산업에서 놀라운 붐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에우라는 100% 식물을 기반으로 한 대체육류 식품으로 유럽산 콩, 올리브 오일, 소금 및 향신료로 만들어진다. 이는 닭고기와 같은 양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 건강한 채식이라는 옵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비건 전문점에서만 판매되던 에우라는 최근 유럽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판매를 확대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물성 육류 브랜드 2위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스페인 최대 피자 전문점인 텔레피자(telepizza)에서는 지난달 비건 치즈와 비건 육류를 사용한 완전 채식 피자를 새롭게 선보였다. 사진=telepizza.es
스페인 최대 피자 전문점인 텔레피자(telepizza)에서는 지난달 비건 치즈와 비건 육류를 사용한 완전 채식 피자를 새롭게 선보였다. 사진=telepizza.es

요즘 스페인이 비건을 포함한 모든 채식주의자에 친화적인 나라라는 것을 실생활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스페인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는 '글루텐 프리' 제품을 포함해 비건을 위한 완전 채식 메뉴가 늘어나고 있다. 멕시칸 스타일 패스프푸드점인 타코벨 스페인은 “100%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 육류와 유사한 질감과 외관을 가진 육류 대체 제품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실제 마트에 가 보면, 스페인에는 일반 우유부터 시작해서 '유당 불내증(유당 분해효소 결핍증)'을 가진 사람을 위한 '락토프리' 우유까지 그 종류가 매우 많다. 또한 아몬드, 곡물, 코코넛 등과 같은 식물성 재료를 포함한 마실 거리가 광범위하게 많이 판매되고 있다.

'비건 생활' 1주일 해보니...

필자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스페인에서 유행하는 ‘비건’을 1주일 동안 체험해 보기로 했다. 1주일 동안 비건으로 지내면 영양소 결핍이 나타나지 않을까, 먹을 수 있는 식품이 굉장히 제한적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생각보다 스페인에서 비건으로 사는 것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콩과 두유, 견과류, 버섯 등을 자주 먹었으며, 커피를 마실 때는 우유 대신 곡물이 들어간 음료로 바꿔서 먹고, 디저트 종류는 비건을 위한 글루텐 프리 가게에 가서 구매했다. 고기가 생각나는 날에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콩과 식물성 재료로 대체 고기로 만든 음식을 주문했다.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우유 대체 식품.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목축업이 발달한 국가로, 워낙 유제품의 종류가 다양하다. 최근에는 비건을 위한 대체 음료 역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최지윤 통신원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우유 대체 식품.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목축업이 발달한 국가로, 워낙 유제품의 종류가 다양하다. 최근에는 비건을 위한 대체 음료 역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최지윤 통신원

먹거리가 다양한 스페인에서 비건으로 지내려면 많은 유혹을 뿌리쳐야 했지만, 1주일 동안의 비건 체험은 성공적이었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지고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완전 비건으로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가끔은 몸의 클렌징을 위해 비건이 되는 ‘플렉시테리언’은 누구든 실천할 수 있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먹거리가 있지만, 본인의 신체에 맞게 적절한 음식을 선택하고 섭취하는 것도 능력이다. 

현 인류는 평균 수명 80세를 넘기고, 이제 ‘100세 시대’를 내다보고 있다. 노년까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의료 기술 발달과는 별개로 평소의 식습관 역시 건강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손꼽힌다. 지구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개인의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에 맞춰 채식주의와 비건의 유행은 스페인에서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최지윤 통신원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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