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반도체 공급난] ③"일정차질 불가피"...‘제2의 D램’ AI반도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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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없는 반도체 공급난] ③"일정차질 불가피"...‘제2의 D램’ AI반도체 개발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1.02.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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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리스, 시장성 확보 안 된 시제품 생산시설 물색 어려워
"1·2차 납품업체와 협력, 안전성 검증까지 3~4년 필요"
"기술장벽 높아지기 전 생태계 구축해야"
반도체 인력 양성도 난관, "풀케파로 산학용 시설 제공 어려워"
2019년 4월 30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 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연초부터 '반도체 빅사이클'이 도래 했다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균형 ▲전자제품 가격 상승 ▲AI 반도체 등 신기술 개발 차질 등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웠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 확대와 함께 코로나로 인한 재택 증가로 가전·IT 제품용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업계는 전 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 수급불균형이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파운드리 공급부족 사태로 정부가 ‘제2의 D램’으로 키우겠다는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R&D)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반도체 시제품 생산과 연구인력 양성 일정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8일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업계에 따르면 파운드리 가동률이 10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시제품 생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제품 반도체 테스트를 거쳐야 시장성 등을 평가해 개발 프로젝트의 후속 사항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파운드리 '케파(생산능력)'에 여유가 없어 시제품 생산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시제품 생산비용 증가...신규 제품 검증 쉽지 않아

현재 파운드리 공정에서 'MPW(Multi Project Wafer)'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팹리스 업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MPW 개념도. 자료=한국산업기술진흥원

MPW는 웨이퍼 한 장에 여러 개의 연구개발(R&D)용 반도체 시제품을 제작하는 사업을 말한다. 팹리스 업체는 MPW를 활용해 시제품 생산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요즘 같은 공급 부족 상황에서는 MPW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시장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 주문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시장성이 보장되지 않은 시제품을 생산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국내 한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중소 팹리스 입장에서 반도체를 처음부터 양산용으로 제작하기는 어렵다”며 “싱글런(Single Run)으로 가거나 검증용 MPW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한정된 수요 때문에 기존 거래량 등이 많지 않은 업체는 MPW에 신규로 들어가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싱글런이란 MWP와 달리 한 웨이퍼에 하나의 샘플 반도체를 제조하는 사업을 말한다. 보통 65나노미터(㎚·10억분의 1m)공정의 경우 싱글런이 MPW 대비 약 6배의 비용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팹리스 업체는 싱글런에 앞서 MPW를 활용해 칩의 기술적 성능, 특성,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시장 조기 진입해야 하는 차량용 반도체, 시기 놓칠라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파운드리 공급 부족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 팹리스 업체의 개발 일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용 반도체를 개발 중인 한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는 완제품이 나와도 양산까지 시간이 4년 정도 걸린다”며 “개발과정에서 1티어(Tier, 1차 부품 공급업체), 2티어와 협력하면서 워킹 샘플, 수주 샘플들을 넣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산업동향 보고서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의 신규 수요가 집중 발생할 전망”이라며 “차량용 반도체는 차 한 대에 수천 개가 들어갈 만큼 규모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반도체·AI 분야의 글로벌 선도기업에 의해 기술장벽이 높아지기 이전에 생태계 구축은 필수”라고 진단한 바 있다.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팹리스 업체가 부품 공급업체와 협력하면서 샘플을 만들며 제작을 완료해도 유럽 등에서 자동차 안전성 검증을 받기까지 1~2년의 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 

자율주행차 1대에 약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될 전망이다. 스마트폰 1대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수십개 수준이다.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캡처
자율주행차 1대에 약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될 전망이다. 스마트폰 1대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수십개 수준이다.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캡처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다품종 소량생산해야 하는 특성상 제품 출시 시점이 빠를수록 좋다. 먼저 탑재된 반도체는 기타 부품과의 호환성, 안전성 테스트 등을 거치기 때문에 교체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후발 주자가 교체비용을 초과하는 이익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초기 제품의 시장 선점 효과는 유지된다. 

정부 ‘제2의 D램’ 육성계획에도 차질 줄 수도 

정부는 지난해 11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것을 예상해 오는 2030년까지 매출 1000억원이상의 글로벌 팹리스 기업 5개를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팹리스 경쟁력의 핵심은 설계 능력이다. 전문인력의 양과 질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정부는 향후 10년간 1조원을 투입해 석·박사 3400명을 포함해 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 1만7000명을 양성한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파운드리 공급부족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내 반도체 석·박사과정에 있는 대학생들이 연구 과정에서 MPW를 통한 실습 기회가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윤모 산업자원부 장관, 이재용 부회장 등과 2019년 4월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웨이퍼·칩 공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 좌우는 연구원들. 사진=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이하 아이덱)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무상 지원을 받아 반도체 인력양성을 진행하고 있다. 

미세공정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2인치 웨이퍼에서 가로·세로 4mm크기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최소 8000만원~1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파운드리 업체 사정에 따라서 시제품 생산 가격은 더 오르기도 한다. 반도체 회로 설계 분야는 투자 비용대비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다.

이런 상황에서도 반도체 전문가 양성을 위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정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파운드리 공정을 중국으로 옮긴 SK하이닉스는 비용이 많이드는 마스크(Mask, 미세한 전자회로가 그려진 유리판)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덱 관계자는 “현재 파운드리 공급 부족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28나노 공정을 제외하면 DB하이텍에서 연 1회 제공하는 MPW 과정만 남은 상황”라며 “나머지 국내 파운드리 기업은 지난 2~3년간 서서히 지원을 줄이다가 현재는 파운드리 수급상황이 안정화되기전까지는 산학지원을 고려해두고 있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SKT가 개발한 인공지능반도체를 전달받은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28나노 공정을 제공하지만 다른 파운드리 기업이 지원을 중단하면서 연구 주제별로 세분화된 공정 수요를 만족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파운드리 공급부족 사태 전까지만 해도 아이덱을 통해 국내 대학에서 1년에 120~130개 이상의 연구팀이 MPW를 활용해 시제품을 만들었다. 현재는 10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줄어든 상황. 앞으로 파운드리 공급부족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해외 공정을 이용해야한다. 

반도체 전공 대학원생이 설계에 참여해 MPW로 실제 반도체 테스트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보통 1년이 걸린다. 과거에는 석사 과정에서 MPW 이후 수정을 거쳐 2~3번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며 실력을 쌓아갈 수 있었지만 파운드리 공급 부족 상황이 길어질수록 실습 회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아이덱 관계자는 “설계 분야는 반도체 경쟁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력임에도 3D 업종이라 할만큼 투자 비용에 비해 결과를 내기 어렵다"며 “국내 파운드리 업체와 MPW 확보를 위해 꾸준히 접촉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업황 때문에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당분간 해결은 쉽지 않을듯

일각에서는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국내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국내에서 시제품을 만들면 생산 과정에서 수차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 등 해외 파운드리의 경우 제품 테스트 결과만을 통보하지만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국내 기업과 협업시 반도체 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국내 파운드리 산업 규모가 커지면 반도체 IP 등 설계자산의 외부유출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만 TSMC같은 경우 제조만을 담당하기 때문에 시제품이나 양산품을 분해해 제조기술을 들여다볼 생각을 안하겠지만 중국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파운드리 산업 규모를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국내 파운드리 업체 대부분은 아날로그 반도체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조원을 들여 증설을 선택하기 어렵다. 

정부 또한 파운드리 업계를 대놓고 지원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전후방 생태계를 생각하면 설계에서 생산까지 파급효과가 큰 시스템반도체 성장을 위해 파운드리까지 국내에서 하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WTO체제에서 그런 정책을 실행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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