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영의 홍차수업] (27)현대 중국 홍차가 태어나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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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영의 홍차수업] (27)현대 중국 홍차가 태어나기 까지
  •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21.02.0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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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와 설탕 넣어 마시는 영국식 홍차, 떫은 홍차와 어울려
'우유-설탕-홍차' 조합은 과거 유럽서 에너지원 역할하기도
영국식 홍차에 밀린 중국, 녹차처럼 우려마시는 '고급 홍차' 개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우리나라에서는 홍차는 '쓰고 떫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 중에서도 60대 이후, 즉 60년대, 70년대 홍차를 마신 기억이 있는 분들은 특히 이런 느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그 분들이 마신 홍차는 쓰고 떫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영국인 대부분이 마시고 있는 홍차도 쓰고 떫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그 쓰고 떫은 홍차를 왜 그렇게 많이  마실까?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물 다음으로 많이 마셔지는 음료가 홍차이기도 하다. 이들 국가들에서 마시는 홍차 역시 쓰고 떫다. 이들은 왜 쓰고 떫은 홍차를 마실까?

영국을 포함한 이들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우유와 설탕을 넣거나 혹은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넣는다. 따라서 홍차 자체는 쓰고 떫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마시는 홍차는 결코 쓰고 떫지 않다. 게다가 우유와 설탕을 넣을 경우에는 오히려 떫은맛이 강한 홍차가 더 좋다. 이런 홍차에 우유와 설탕이 조화되어 달콤하면서도 훨씬 더 풍성한 맛이 되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대부분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넣어 마신다. 사진=구글
영국인들은 대부분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넣어 마신다. 사진=구글

우유와 설탕을 넣는 홍차, 아무 것도 넣지 않는 녹차

우리나라에서는 홍차를 마시면서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았다. 너무 떫은맛에 설탕은 일부 넣기도 했을 것이다. 이는 녹차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전통 영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우리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유와 설탕을 넣어야 맛있도록 만든 홍차(그 당시는 대부분 티백)를 우유와 설탕을 넣어야 맛있게 되는 영국식으로 강하게 우려서는, 정작 마실 때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녹차 음용법으로 마셨으니 어떻게 그 홍차가 쓰고 떫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홍차를 전 세계에 확산 시킨,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아주 초기부터 우유와 설탕을 넣었다. 따라서 홍차는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우유와 설탕을 넣어야만 완성되는 음료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홍차를 공급한 중국은 (자신들은 마시지 않으니) 수요자들 요구에 맞춰 우렸을 때 강한 맛이 나도록 홍차를 가공해서 1650년경부터 200년 이상을 공급해 왔다.

인도 아삼지역에서 영국인이 밀림을 개척해 넓은 다원을 만들고 대량으로 홍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 무렵이었다. 햇빛이 강하고 무덥고 습한 아삼 기후 조건에서는 중국종(소엽종) 보다는 아삼종이라 불리는 대엽종 차나무가 더 적합했다. 대엽종은 떫은맛을 내는 카데킨 성분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홍차를 이렇게 우려낸 채 마시면 쓰고 떫은 맛을 피할 수 없다. 사진= 구글
홍차를 이렇게 우려낸 채 마시면 쓰고 떫은 맛을 피할 수 없다. 사진= 구글

(홍)차의 맛과 향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차나무 품종, 차나무가 재배되는 자연환경 즉 떼루아 그리고 가공과정 이렇게 3가지 요소다. 아삼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차나무 품종이나 자연환경으로 인해 중국 홍차보다는 더 강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 여기에 가공방법 마저도 달랐다. 싹과 어린잎 보다는(싹과 어린잎의 장점은 연재 글 4번 참조) 다 자란 잎을 그것도 위에서 다섯 번째 잎까지 채엽했다. 이렇게 채엽한 거친 찻잎을 강한 유념(비비기)을 통해 찻잎에 상처도 많이 내고 동시에 찻잎도 작은 입자로 분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홍차는 빠른 속도로 우러나고 쓰고 떫은맛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영국은 이런 홍차를 원했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 홍차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영국이 홍차의 나라가 된 것은 홍차가 기호식품 역할만 했기 때문이 아니다. 20세기 초반 무렵까지만 해도 홍차는 단백질(우유)과 당분(설탕)을 공급하는 식량에 가까웠다. 품종, 떼루아, 가공방법까지 더해져 인도, 스리랑카에서 영국인에 의해 생산된 홍차가 우유와 설탕을 넣는 유럽인 입맛에는 중국 홍차보다 더 맞게 되었다. 이리하여 영국이 홍차를 마시기 시작한지 거의 250년이 지난 1900년 무렵이 되어서는 영국은 실질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차 독립을 하게 된다.

영국식 홍차와 경쟁할 수 없었던 중국은 자신들을 위한 섬세한 홍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구글
영국식 홍차와 경쟁할 수 없었던 중국은 자신들을 위한 섬세한 홍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구글

유럽의 중국 홍차로부터 독립...중국의 새로운 돌파구

인도(그리고 스리랑카)에서 이런 상황이 전개됨과 동시에 거의 200년 이상을 독점적으로 유럽에 홍차를 공급해온 중국은 위기를 맞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인도 현지 조사 후 내린 결론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영국식으로 대량 생산되는 강한 홍차와는 경쟁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대신 중국이 선택한 것은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실 수 있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홍차였다. 그리고 이 음용법 이야말로 중국인 자신들이 차를 마시는 방법이기도 했다. 중국인은 당나라 때 다성(茶聖)이라고 알려진 육우의 주장 이후부터는 차는 차 자체로만 즐겼다. 원나라 시절 몽골인이 차에 우유를 넣었다는 자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짧았고 그것도 몽골인 관습이었다.

주로 수출만 하던 홍차를 중국인 자신을 위해서든 혹은 유럽의 고급 입맛을 위해서든 새로운 가공법으로 생산한 것이 오늘날의 중국 홍차다. 중국 홍차 종류는 다음 글에서 정리하겠다.

● 홍차전문가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 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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