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반도체 공급난] ① 대책없는 자동차 업계..."정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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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없는 반도체 공급난] ① 대책없는 자동차 업계..."정부가 나서야"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1.02.03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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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팹리스 "지난해 9월부터 납품기한 맞추기 어려워"
파운드리, 수익성 때문에 자동차 반도체 물량은 뒷전
8인치 생산라인 증설도 쉽지 않은 상황
향후 미래차 기술 확보에도 빨간불
"시장성보다는 국가 기간산업 관점에서 정부가 지원해야"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1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연초부터 '반도체 빅사이클'이 도래 했다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 ▲전자제품 가격 상승 ▲AI 반도체 등 신기술 개발 차질 등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웠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 확대와 함께 코로나로 인한 재택 증가로 가전·IT 제품용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업계는 전 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 수급불균형이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기업) 공급 부족으로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수익성 악화와 향후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국내 완성차 업체에 차량용 반도체를 납품하는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납기일을 맞춰달라는 제조사 요구에 난처한 입장”이라며 “지금 파운드리 업체가 수익성 때문에  밀려오는 IT, 전자 업계 쪽 주문에 먼저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완성차 업체의 해외 공장에서 납품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지만 중소 팹리스 업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

8인치 라인 '인기폭발'...증설도 쉽지 않아

이같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됐다. 업계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할 땐 주로 8인치 웨이퍼(반도체의 원재료가 되는 기판)를 사용한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8인치 라인에서 생산하는 TV, 모니터, 생활가전 등 각종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다. 여기에 지난 2년간 역성장했던 완성차 시장 역시 지난해 말부터 수요가 살아나면서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도 늘면서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웨이퍼. 사진=삼성전자반도체이야기

공급 증가를 위해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 8인치 생산라인을 증설하긴 쉽지 않다. D램, 플래시 메모리 등 소품종 대량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부가가치 제품은 8인치 대비 생산성이 2.25배 높은 12인치 공정에서 만든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생산성을 생각하면 8인치 생산 장비와 공정을 사용한 제품이 12인치에 비해 2.5배 비싸야 수지가 맞다”고 설명했다. 

12인치 라인에서 생산하는 반도체는 8인치 대비 고가이고 수량도 많다. 이미 반도체 제조 주력 공정이 12인치로 넘어간 상황에서 8인치 반도체 제조 장비는 더 이상 신규 생산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8인치 생산 라인을 늘리려면 구형 장비를 개조해서 들여오거나 장비 제작업체에 웃돈을 주고 추가 생산을 의뢰해야 한다. 

안 이사는 “현재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파운드리 업체가 비싼 돈을 주고 8인치 공정을 늘릴 경우 시장에 공급이 늘어나면서 반도체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는 시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소 수조원이 드는 시설 투자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업계에서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1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 예측하는 이유다.  

중소형 팹리스는 수익 감소 불가피..."소비자 손해로 이어질 것"

이 같은 파운드리 공급부족은 결국 반도체 단가 상승과 차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완성차 업체에 반도체를 납품하는 한 팹리스 관계자는 “우리 같은 중소 팹리스는 반도체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재고를 관리하는게 쉽지 않다”며 “결국 파운드리 업체가 단가를 올릴텐데 제조원가가 올랐다고 단가를 높일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량에는 200여개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대부분 차량용 반도체는 첨단 기술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시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팹리스 업체가 납품단가를 높이면 완성차 업체가 공급사를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의 수혜를 입는 곳은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NXP, 인피니언, 르네사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ST마이크로일레트로닉스 등 상위 업체 몇 곳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반도체 공급사를 바꾸려면 안정성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며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 결국 차량 생산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테스트를 거쳐 반도체 공급사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요 공급에 의해 반도체 가격이 오르고 테스트 비용 등으로 차량 가격도 오르면서 결국 소비자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용 반도체, 기간산업으로 봐야...정부가 나서줘야"

시장성에 밀려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지자 업계와 학계에서는 더 이상 시장성이 아니라 국가 기간 산업으로서 자동차 생태계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은 자율주행등 기술 발전으로 향후에 자동차 한대에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될 것으로 추정한다. KATECH은 전체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9년 418억달러(한화 약 45조원)에서 2022년 553억달러, 2024년 655억달러(한화 약 72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지형 KATECH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가 NXP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설이 나오고 있다”며 “반도체 개발에 몇년이 걸리는 만큼 삼성전자와 함께 지금부터 노력해서 다양한 중소 팹리스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생태계를 구성하는게 이상적인 그림”이라고 말했다. 

반도체는 몇년에 걸친 개발과정에서 다양한 시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선 시장성이 담보되지 않은 시제품을 생산해줄 파운드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면 시제품 완성후에도 양산을 맡아줄 파운드리를 찾기 어렵다. 

이 교수는 “자동차산업의 전후방 산업 규모는 조선업에 비해 3~4배 크다”며 “현재 한국 GNP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23%인데 현대차 그룹이 18% 수준”이라며 “향후 기술 발전에 따라 충분히 역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기간 산업인 자동차 생태계를 위해 정부가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반도체 생산 라인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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