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자영업 손실보상법’의 올바른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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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자영업 손실보상법’의 올바른 감상법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1.01.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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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할지 선택은 정치철학의 문제...옳고 그름 논할 필요없어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보상할지, 집행 쉬우면서 평형성 논란도 해결해야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 개선을...피해손실 보상하되 세수에 기여하도록 하자
'한은 국채 인수 강제화'는 후진적 접근...통안증권 발행 자제하면 될 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자영업손실보상제를 두고 세상이 시끄럽다.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까지 보상의 제도화를 언급해서 논란이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보상의 당위성과 재원이다. 이 글에서는 보상의 당위성은 다루지 않는다. 순전히 정치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원마련은 기술적인 문제다. 그와 관련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검토되는 한국은행의 국채인수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한은이 정부에 협조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본문에서 밝힌다).

결론적으로 자영업 손실보상제에 관한 보도를 읽는 데는 감상법이 필요하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자영업 손실보상법을 둘러싼 현재의 보도방식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원론적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코멘트를 단순 전달하기 바쁘다. 그런 방식으로는, 코앞에 닥친 코로나19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자영업 손실보상제 필요한가?

재정을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관해서는 민주국가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모든 위정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중국 위(魏)나라의 명제는 토목공사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썼다. 보다 못한 신하 위개(衛凱)가 “국가는 수입에 맞추어 지출을 정해야 한다(量入爲出)”고 충고했다(삼국지위지). ‘양입위출’은 예기(禮記)에도 소개될 정도로 오래된 원칙이며, 조선도 이를 재정운용의 기본 원칙(경국대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양입위출은 통치철학일 뿐,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당나라 덕종은 양출제입(量出制入), 즉 지출부터 생각하고 세수는 후순위에 두는 원칙을 세웠다. 조선의 세조도 비슷한 생각에서 양입위출의 원칙을 '계출제입(計出制入)'을 원칙으로 대체했다. 국가는 개인과 달리 수입보다도 씀씀이를 먼저 계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그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덕종과 세조의 재정이 파탄나지는 않았다. 영국의 케인즈는 대공황을 겪으면서 덕종과 세조의 생각에 접근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반이론」이다.

물론 케인즈에 동의하지 않는 경제학자들도 많다. 코로나19 위기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자영업자들의 손실까지 보상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순전히 정치철학의 문제다. 백인백색이며, 백가쟁명(百家爭鳴)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역사에서 나타난 한두 가지 사례를 갖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지만,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여러 의견을 통합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요, 과정이다.

그렇다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원론을 두고 찬반 의견을 전달하기 바쁜 지금의 언론 보도방식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다. 차라리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보상할 것이냐를 점검하는 것이 훨씬 전문적이고 생산적인 보도가 될 것이다.

한편,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집행방식이 번거롭고 형평성마저 의심스럽다면 보상의 효과가 줄어든다. 여당에서도 법제화만 서둘 것이 아니라 보상지원에 관해 당사자와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금을 늘려야 하나?

늘어난 재정지출은 결국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 조세저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른 나라와 비교하게 된다. 여기부터는 경제전문가들의 영역이다.

흔히 직접세는 개인소득세, 법인소득세, 그리고 소비세로 구분한다. 우리나라 재정수입 구조에서 개인소득세는 OECD 평균 수준에 비해 크게 낮고, 법인소득세는 상당히 높다. 따라서 법인세 부담을 낮추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업인들과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법인세율을 낮추면 고용과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실증분석이 근거다. 그러나 법인세율은 정치상황에 따라 결정되고, 정치는 통상, 금융, 노동 등 여러 가지 문제들과 얽혀있기 때문에 법인세율 조정의 효과만 분리해 내기 힘들다.

법인세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이중과세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법인세를 낸 뒤 배당을 하면, 그 배당금은 주주들의 개인소득세에 반영된다. 틀림없이 이중과세다. 하지만 이중과세는 주주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다. 주주가 되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이중과세 문제가 없다. 결국 우리나라의 법인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는 사실은, 법인세를 통해 소득재분배 기능이 작동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법인세와 관련해서 개선해야 할 것은 과세표준구간을 좁히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나라들은 모든 법인에 대해 1~2개의 세율을 적용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소득구간을 잘게 쪼개서 10~25%의 세율을 적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다(4개 구간). 자연인이 아닌 법인에 대해서도 누진세를 적용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지나친 평등주의이자 난센스다. 과연 그래야 하는 지 전문가들의 검토가 필요하다.

소득세와 관련해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것은 간이과세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간이과세제도는 1995년 소규모사업자의 납세편의를 높이려고 도입한 것으로서 소규모사업자(매출액 4800만원 이하)에게 업종별 평균 부가가치율의 10%를 과세한다.

문제는 온정주의(또는 포퓰리즘) 때문에 평균부가가치율이 비현실적으로 낮고, 간이과세대상자는 너무 많다(개인사업자의 27.8%)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세형평이 어긋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문제를 개선할 절호의 기회다.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손실을 보상해주는 동시에 그들의 세수기여 방안도 함께 검토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영업자 손실보상 방안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모든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세금을 함께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내체육시설 업종 관계자들과 코인노래방, 스터디 카페 업주들이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합금지 해제, 영업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내체육시설 업종 관계자들과 코인노래방, 스터디 카페 업주들이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합금지 해제, 영업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의 국채 인수는 어떻게 봐야 하나?

당장 세금을 늘리지 않고 재정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국채발행 밖에 없다. 여기서 여당이 거세게 비판을 받는다. 굳이 한국은행이 국채를 강제로 인수하도록 입법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채발행 잔액은 아직 명목GDP의 50%에도 이르지 않았다. 그런데 강제 인수를 법률에 담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무능을 스스로 밝히는 셈이 된다.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G7에 오를 정도로 훌륭한 나라가 금융시스템은 형편없음을 국회가 만천하에 선언하는 것이다.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한은의 강제 국채인수는 국제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영란은행과 유럽연합(EU)의 중앙은행들은 마하트리히트 조약과 유럽연합기능조약, 유럽중앙은행 정관 등에 의해 정부에 대한 대출과 국채인수가 금지되어 있다. 포퓰리즘의 폐해를 겪은 브라질(헌법 제164조), 칠레(헌법 제98조), 과테말라(헌법 제133조)와 같은 일부 남미 국가들은 헌법으로 금지한다. 중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조차 중앙은행의 대정부 여신을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1933년 독일의 히틀러가 집권한 직후 한 일은 독일의 재무장이었다. 페이퍼컴퍼니(MEFO)를 세우고 그 회사가 발행하는 채무증서를 중앙은행이 인수토록 한 뒤 그 돈으로 군수업체를 지원했다. 고용과 생산이 늘어났다. 그러자 한 걸음 더 나가서 1939년 중앙은행법에 “중앙은행은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아울러 라이히스방크의 국채 인수를 제도화했다. 그 뒤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했다.

이런 흑역사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는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는 최악의 결정으로 이해한다.

참고로 일부 언론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도 특별법을 통해서 연준이 국채를 인수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준은 오로지 “공개시장”을 통해서만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연준법 제14조).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행은 공개시장이 아닌, 발행시장에서도 국채를 살 수 있다(한은법 제75조). 이를 ‘인수(underwriting)’라고 한다. 외환위기 전에는 한은의 국채 인수가 빈번했다. 채권 유통시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림부의 양곡증권이나 건교부의 국민주택채권 등이 계획대로 발행되지 않으면, 한은이 매년 말 짜투리 국채를 전부 인수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시작될 때는 금융시장 전체가 작동을 멈춰서 5.5조원의 정부보증채 전액을 한은이 인수했다. 외환위기 돌파에 필요한 장기 자금이 한은의 직접 인수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여당이 그런 방안을 주도했다.

결론은 이렇다. 한은의 국채 인수가 경천동지할 만한 일은 아니다. 과거에는 꽤 빈번했다. 다만,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는 후진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특별법을 통해 굳이 한은의 국채 인수를 강제화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다른 방법은 없나?

‘한은의 국채 인수’라는 말에 놀라거나 흥분해서 잊은 것이 있다. 당장 금년의 국채 발행 예정액이 사상 최고수준이고, 그래서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전의 금리수준을 이미 돌파했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의 하나는, 한은이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 발행을 중단하는 것이다. 통안증권은 국채와 경쟁하는 무위험자산이다. 그러므로 한은이 통안증권 발행을 자제하는 것은 국채를 직접 인수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갖는다.

통안증권은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따라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던 1961년부터 발행됐다. 초과유동성을 장기간 묶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려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통화주의가 퇴조하고 금리중심의 통화정책을 추구하는 요즈음, 그 유효성을 찾기 어렵다. 미국, 영국, 덴마크 등 주요 선진국들은 만기 1개월 미만의 단기예금을 통해 초과유동성을 흡수하고 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굳이 채권시장에서 통안증권을 발행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자 정부가 힘겹게 국채를 발행하는 마당에 한은까지 통안증권 발행을 계속하려고 하면, 그에 맞는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입증의 책임이 한은에게 있는 것이다. 통안증권 발행잔액이 2020년 12월말 현재 162.5조원, 2020년 명목GDP의 8.9%나 된다.

60년 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했고, 통안증권이 발행됐다. 우연히 시기가 일치한다. 그때 케네디가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마십시오.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여기서 국민과 당신을 한국은행으로 대체해 보자. 그것이 이 엄중한 비상시국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은행이 품어야 하는 질문이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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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2021-01-27 07:44:39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자영업 손실보상법에 대해 체계적으로풀어놓은 글입니다. 쟁점은 무엇이고 어떤 시각에서 접근해야할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