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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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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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대정당 CDU의 새 당수로 뽑힌 '아르민 라셰트' 주총리
외교전문가지만, 러시아 비난발언 일절 안해
독일, 경제침체 탈출위해 수년간 러시아·중국과 협력 강화해
9월 총리 선출되어도 '메르켈의 친러시아정책' 계승할 듯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소속된 독일 최대정당인 기독민주당(이하 CDU) 차기 당수로 아르민 라셰트(Armin Laschet)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가 당선됐다. 지난 1월 22일 CDU 우편투표 결과까지 합산한 결과 최종적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집권여당 당수에 올라...9월 차기 총리 가능성 

독일 거대 정당은 CDU 또는 사회민주당(이하 SPD)으로 이들 두 당에서 총리를 번갈아 배출해 왔다. 따라서 올해 9월 26일에 개최되는 연방의회 선거 결과 CDU가 승리할 경우 당수인 라셰트가 독일 총리가 될 전망이다.

다만 기독연합당 내 바이에른의 기독사회당(이하 CSU)의 당수인 마르쿠스 죄더(Markus Söder)의 인기도 만만찮기 때문에 라셰트가 차기 총리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섣부른 상황이다.

총리로 등극한다면 라셰트는 지난 2005년 11월부터 15년간 독일 최장기 집권을 해 온 메르켈 총리의 성실한 계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뉴스 프로그램인 타게스샤우(www.tagesschau.de)는 1월22일  메르켈 총리 또한 퇴임 뒤 내각의 전면적인 개편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CDU 당수 경선에서 라셰트의 유력한 경쟁자였던 프리드리히 메르츠(Merz) 전원내대표가 재무장관으로 기용될 것이라는 소문 또한 CDU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새로운 CDU 당수 아민 라셰트. 앙헬라 메르켈 총리가 축하하고 있다. 사진 출처= www.dw.com
새로운 CDU 당수 아르민 라셰트(오른쪽).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축하하고 있다. 사진 출처= www.dw.com

독일 외교난제: 대서양간 핵심이익의 충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독일을 향해 불어오는 외부 폭풍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메르켈 총리 집권 후반기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과 겹치면서 미-독 외교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이미 단계를 넘어버렸다.

실제 들여다보면 주독미군 철수 문제와 독-러 천연가스 수송사업인 Nord-Stream2 사업 중단문제는 미-독 양국간 핵심적인 이해관계 충돌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의 양보로 끝나기 힘든 면이 있다.

또한 독일의 대중국정책이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미 행정부와 중요한 연결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독일은 쉬운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관계를 형성한 것이 국익에 관한 견해 차이였기에, 그 견해 차이는 CDU 당수인 라셰트라도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독-러간 가스수송관 공사 프로젝트인 Nord Stream 2 구상.  출처= www.dw.com
독-러간 가스수송관 공사 프로젝트인 Nord Stream 2 구상. 출처= www.dw.com

'통합의 마이스터' 아르민 라셰트는 어떤 인물?

CDU의 새 당수로 선출된 라셰트는 어떤 인물인가.

라셰트 당수는 전형적인 독일남부 사람이다. 노르트라인-베르트팔렌주의 도시인 아헨의 교외 출신으로 부모 양가 모두 벨기에 쪽이라 불어에 능숙하며, 부인 또한 아헨의 유명한 정치가문 출신이다. 매우 유연한 성품의 소유자로 이번 선거운동기간 동안에도 당내 여성계의 지지를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17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 선거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그는 '통합의 마이스터(ein Meister der Verpackung)'로 통한다. 그는 주총리선거에 이기기 위해 CDU/FDP(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했는데, 지금도 그 연정은 돈독하다. 나아가 FDP가 차기 연방정부의 행정부 구성에도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도 낳고 있다. 

친러시아, 친시리아적 태도의 라셰트

그는 또한 러시아에 대해서도 매우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존의 메르켈 총리가 굽히지 않았던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계속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7일 러시아 반체제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모스크바에 귀국한 직후 구속된 사건에 대해 모든 독일 유력정치인들과 각 정당 당수들이 비난 목소리를 내었을 때 침묵한 단 한사람이 바로 라셰트 당수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유럽의회에서 외교위 소속으로 활동한 외교전문가인데, 아직까지는 그가 지향하는 독일의 대외정책이 어떤 방향인지 애매모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월 20일자 독일 매체인 쥐트도이치자이퉁이 라셰트를 "푸틴을 이해하는 인물(Der Putin-Versteher)"이라 평한 것은 독일 내 팽배한 그의 '친러시아적 태도'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4년 시리아 난민사태를 두고도 러시아보다는 미국을 비난했던 그의 태도에서 심지어 시리아 정부의 지배자 아사드 대통령과의 친분을 의심하는 목소리까지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유럽대외정책을 다루는데 있어 초심자가 아닌 그가 과연 CDU 또는 유럽인으로서 정체성이 확실한 지 명확하지 않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라셰트 당수의 대외정책에 대한 태도를 볼 때 독일이 경계하는 러시아 세력과의 친분, 파국에 이른 미-독 대서양 외교의 부활, 동아시아 패권경쟁에 대한 민주국가와의 협력에 있어 과연 독일이 유럽 최강국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독일, 바이든의 핵심지지자로 복귀할 수 있을까

메르켈 집권 말기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불화는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라고 보기 어렵다. 독일이 러시아와 가까워진 것이 메르켈 총리의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 때문만도 아니다.

독일은 지금 매우 어려운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 2019년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0.6%로 제조업 부진이 6년내내 지속되고 있으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5.2%의 역성장을 보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독일은 이미 화석에너지 시대를 마무리하고 재생에너지 시대로 나아갈 것을 천명한 상태다. 천연가스는 재생에너지 생산의 보완재로서 매우 중요하다. 독일 경제가 날로 허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독일 에너지 전환정책의 핵심축을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독일이 러시아를 버릴 수가 없는 이유다.

미국은 이런 독일에게 러시아를 대신해 어떤 대체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독일 정계가 바이든의 당선을 어느 나라보다 뜨겁게 환영해 맞이했지만 바이든이라고 독일의 난제를 단숨에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만일 독일이 에너지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불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대중국봉쇄정책, 독일이 찬물 끼얹어

미국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중국봉쇄정책에 대놓고 찬물을 끼얹는 나라 또한 독일이다.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독일이 주도한 '중국-EU간 포괄적투자협정(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 CAI협정)'이 미국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1월 22일자 포린폴리시(www.foreignpolicy.com), 더디플로마트(www.diplomat.com)과 같은 미국 외교전문지들은 EU가 중국과 지난해 12월 30일에 체결한 CAI 협정에 대해 미국과 인도 등 주요 EU 경제파트너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낸 바 있다.

독일은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더 급한 상황으로, 자국과 EU의 경제침체를 생각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미국과 협력할 여지를 계속 없애고 있다. 미국과 벌어진 틈 사이로 중국은 EU와 독일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 체결된 중-EU 포괄적투자협정이 미국의 새로운 골치거리가 될 전망이다. 사진= www.dw.com 캡쳐
지난해 연말에 체결된 중국-EU 포괄적투자협정이 미국의 새로운 골치거리가 될 전망이다. 사진= www.dw.com 캡쳐

이미 메르켈이 독일의 생존을 위해 벌여놓은 일들은 후임자가 누가 되더라도 수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메르켈의 성실한 계승자로 정의되는 라셰트 당수는 지금 독일의 대외정치경제 방향을 전환할 의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만약 라셰트가 이끄는 CDU가 9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그가 총리가 되면 미국은 메르켈 시대보다 더 반갑지 않은 인사를 상대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대서양의 봄이 과연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 필자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며 오피니언뉴스 베를린 통신원 활동을 겸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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