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공급대란 3가지 이유..."장기화시 車 원가상승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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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용 반도체' 공급대란 3가지 이유..."장기화시 車 원가상승 불가피"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1.01.23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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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용 반도체에 비해 車반도체 수익성이 낮아
파운드리 업계, 단기간에 생산량 늘릴 수 없어
자동차 업계, 단일 공급사를 선호하는 어려움도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국내 완성차 업체가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가 재고 확보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산업구조적으로 IT업계에 비해 자동차 업계가 반도체 수급에 불리한 여건이 바뀌는 게 쉽지 않아 차량용반도체 공급부족이 장기화 될수 있다고 경고한다. 

22일 현대차그룹과 GM대우 등 국내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생산 공장 가동에 문제는 없는 상황이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 될 경우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나마 국내 자동차 업계의 상황은 외국 업체에 비해 나은 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 생산에 문제는 없지만 반도체 수급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재고 축적 등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GM대우 관계자도 "현재 주말 특근 등을 조정하고 있을 뿐 생산에는 차질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따라 포드는 미국과 독일에서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 했고, 폭스바겐 그룹은 중국과 북미, 유럽 등에서 1분기 목표치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아우디 그룹 역시 일부 모델 생산을 연기했다. 도요타·혼다·닛산 역시 중국·일본·미국내 생산 계획을 축소할 예정이다. 

문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사태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학계·자동차업계·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수급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 IT제품용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의 특성 ▲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힘든 반도체 업계 상황▲ 반도체 수급시 복수 공급업체를 두기 어려운 자동차 제조의 특수성 등을 들고 있다. 

이 같은 복합적 원인 때문에 반도체 수급 문제 해결되려면 6개월 혹은 그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1~2개월 수준의 반도체 재고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자동차 업계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 원인1. '규모의 경제'...IT기업이 車기업보다 반도체 수급 유리

업계에서는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사용하는 IT 제품 수요가 코로나19 여파로 크게 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이 줄어든 것을 이번 사태의 1차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 기업)업체는 물론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종합반도체 기업(IDM)도 생산시설 증설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는 IT제품을 차량용 반도체 보다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서버나 PC,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10나노미터(nm, 1nm는 10억분의 1m) 이하 고사양 제품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

인텔의 최고 사양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제온 플래티넘 8280’ 모델의 경우 개당 가격이 9387달러(한화 약 1038만원)에 이른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데이터 센터 운영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고가의 CPU를 수십만개 규모로 주문할 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는 IT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요구 성능이 낮다보니 20~40nm대 공정에서 만든다. 자동차 한대에는 100여가지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단순 작동을 제어하는 반도체의 경우 몇만원 수준인 제품도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수익성뿐만 아니라 물량에서도 IT제품용과 비교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완성차 업체의 자동차 판매량은 7264만대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12억5000만대 수준이다. 노트북을 포함한 PC의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판매량도 9159만대에 달한다. 

여기에 ‘하이퍼스케일(HyperScale)’데이터 센터에서 쓰는 서버용 CPU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까지 폭증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란 면적 2만2500㎡ 수준의 규모에 최소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갖춘 데이터센터다.

올해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전년 대비 10.17% 늘어난 628개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전세계적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매장에서 GPU는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 최근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채굴에도 GPU가 쓰이면서 가격이 폭등한 결과다. 이렇다보니 반도체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규모의 경제에서 IT 업계와 자동차 업계는 게임이 안된다”며 “이런 산업구조는 한 번에 바꿀 수 없기에 장기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있어서 구조적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원인2. '시장 논리'...파운드리 호황, 몇만원짜리 차량용 뒷전

파운드리 업계가 불황이라면 수익성이 낮아도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해 고정비용을 줄였겠지만 현재 파운드리 업계는 초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CPU, GPU, 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AP) 등 IT제품용 반도체 주문이 쏟아지면서 수익성 낮은 차량용 반도체 주문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1, 2위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10위권 업체인 한국의 DB하이텍도 지금 주문하면 6개월 후에야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TSMC와 삼성전자가 각각 한해 20조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하는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지 않으면 수익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대규모 파운드리 업체가 차량용 반도체를 물량을 늘리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IT제품 수요 폭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도 자동차 업계의 고민을 깊게 만든다.

IT 제품 교체 주기가 자동차 업계와 비교될 수 없기에 최근의 IT제품 수요 우위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한 이같은 사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시작될 메모리 반도체 빅사이클(장기간 지속되는 가격 상승기)가 2년 정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면 관련 CPU, GPU 등 수요도 늘어나 파운드리 호황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현재 시점에서 생산을 늘리고자 증설을 결정해도 최소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추가 생산이 가능하다.

IT제품 수요가 갑자기 줄어 파운드리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 물량을 소화하지 않는 이상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네덜란드 NXP와 독일 인피니온, 스위스 ST 마이크로 등이 증설을 결정해도 최소 6 개월 후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원인3. '단순 공급망'...자동차업계 ‘싱글벤더’ 특성

차량용 반도체 생산기업이 증설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2년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역성장했다. 시장 1위 업체 NXP의 경우 지난해 2분기 차량용 반도체 사업부 매출이 전분기 대비 32%줄어든 674만달러를(한화 약 74억원)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5% 줄어든 수치다.

반면 NXP에서 자동차 사업부를 제외한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인프라 사업부 등은 같은 기간 전분기 대비 각각 16%, 3%, 12% 성장했다. 

현재 공급 부족을 해결하고자 차량용 반도체 생산 시설을 증설할 경우 성장 중인 다른 사업부에 대한 투자액은 줄어들 수 있다. 더욱이 시장 상황이 바뀌면 상대적으로 IT향 반도체 대비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거액의 투자금은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차량용 반도체와 가정용 반도체(일반 가전 제품용) 차이. 자료=SK하이닉스 뉴스룸 캡처

자동차 업계가 전통적으로 ‘싱글벤더(단일 공급사)’를 유지하는 특성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 물량을 급격히 늘리기 어려운 이유로 지목된다. 자동차 제조사는 차량용 반도체 품질이 탑승자  안전과 직결돼 반도체 내구성과 해킹 가능성 등 보안성을 엄격히 검증한다.

반도체는 더욱이 일반 기계 부품 내구성 테스트보다 훨씬 엄격한 방법으로 전기적 결함을 검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차량 교체주기가 평균 10년 이상인 상황에서 하나의 반도체가 엔진의 고열을 감당하며 눈과 비가 오는 상황에서 10년 이상 한 번의 오류 없이 작동해야 한다. 자동차 한대에 약 100여개 이상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이 교수는 “개별 반도체를 검증하고 여러 반도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모듈 전체에 대한 안정성 테스트는 또 다른 이야기”라며 “테스트 기간과 비용이 증가하기에 자동차 업체는 안정성과 신뢰성을 가진 공급사 한 곳을 선택하면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간 자동차회사가 싱글벤더만을 유지한 것 역시 이번 사태의 중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럽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이 증설을 선택하거나 삼성전자, TSMC 등 파운드리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 생산 물량을 늘려도 이를 소화해줄 수요처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장기화 가능성 커진 반도체 수급사태

앞서 언급한 IT제품용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파운드리 업계 업황, 복수 공급업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자동차 제조 특성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전망이다. 

단기간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점은 자동차 업체가 싱글벤더를 포기하고 ‘멀티벤더(복수의 부품 공급사 선정)’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 경우 차량 제조 원가가 높아진다. 최저가를 제시한 납품업체 이외에도 1~2곳의 업체에 일정 물량을 할당하며 더 높은 납품단가도 맞춰줘야 2~3곳의 부품 공급선을 유지할 수 있다. 

가격 상승 부담에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국내 업체는 이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유통망 차원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공급선을 합치고 물량을 늘리는 등의 반도체 재고 확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반도체 업계에 있는 만큼 장기화 될 경우 자동차 제조사 대부분이 생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라며 "그렇다해도 자동차 업계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고가 차량의 경우 탑재하는 반도체도 고가”라며 “수급 어려움이 계속되면 수익성 차원에서 저가 모델 생산을 먼저 중단하고 고가차량의 생산에 집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기업이 증설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라며 "시장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워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 투자 결정을 놓고 여러가지 계산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앞으로 싱글벤더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결국 멀티벤더를 선택하면서 검증 기간과 비용이 늘어 판매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우위인 상황은 해결될 수밖에 없다”며 “유휴 장비를 활용하거나 증설로 결국 시장은 이 문제는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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