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국채와 통안증권 만기, 다시 생각해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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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국채와 통안증권 만기, 다시 생각해 봐야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1.01.08 1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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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장기 국채 비중 줄이고 단기채 발행키로 해
한은, 통안증권 단기화 대신 3년물 발행하려 해
국채 단기화 부적절하고, 통안채 장기화도 '시대착오적'
기재부-한은, 불필요한 경쟁심...'통화정책의 한류' 고심하자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자금이 부족하면 돈을 빌린다. 그때 채무의 만기는 사업계획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10년 뒤에 원금이 회수될 공장을 짓는다면 10년짜리 회사채를 발행하고, 6개월 뒤 현금이 회수되면 6개월짜리 어음을 끊여야 한다. 월급쟁이들은 신용카드 사용액을 월단위로 결제한다.

자금 조달과 운용기간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기간 미스매치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199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는 장기 소요자금을 단기로 차입했다. 단기금리가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그 미스매치가 한동안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조달비용이 자꾸 커졌다. 결국 1994년 1.1억 달러의 채권만기가 돌아왔을 때 이를 제대로 갚지 못해서 카운티가 파산했다. 기간 미스매치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과서적 사례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오렌지카운티처럼 파산하지 않는다. 하지만 채권만기가 부적절하면, 불필요한 비용과 불확실성을 부담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다.

이 글에서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의 적정만기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는 장기, 한은은 단기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년 중 정부는 단기채권(2년물)을, 한은은 장기채권(3년물)을 각각 발행할 예정이지만, 이는 적절치 않다.

국가채무가 늘어날 때는 장기국채 발행이 상식

재정자금을 투입하는 상당수 사업들은 그린 뉴딜 사업처럼 자금회수 시점을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국채의 적정만기를 결정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서 보통 명목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기준으로 삼는다.

명목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상승할 때란,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서 민간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상황이다. 재정자금을 쓰기도 바쁘므로 돈 갚는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런 때는 장기국채 발행 비중을 높이고, 국채의 평균만기를 늘린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원칙을 7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출처= L. Summers 등(2016), “The Optimal Maturity of Government Debt”, Brookings Institute.
출처= L. Summers 등(2016), “The Optimal Maturity of Government Debt”, Brookings Institute.

올해 우리나라의 사정이 그렇다. 총 국채발행 예정액은 176.4조원으로서 지난해보다도 1.9조원 늘어날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내년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기획재정부는 일단 국가채무비율이 금방 낮아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재정준칙의 적용을 몇 년 뒤로 유보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기국채 발행 비중을 높이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의 생각은 그 반대다. 금년 중 장기국채 발행비중을 지난해보다 5%포인트 정도 낮추고, 지금까지 발행하지 않았던 단기국채, 즉 2년물 국채까지 새로 발행할 계획이다.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다. 1990년대 초 미국 오렌지카운티가 단기차입을 늘린 것은 장단기 금리차가 컸기 때문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그런 상황도 아니다.

현 상황에서 단기국채 발행을 늘리는 것은 재정정책의 효율성만 떨어뜨린다. 만기가 빨리 돌아오는 국채의 재발행을 위해서 실무부서가 쓸데없이 바빠지고, 시장리스크가 커진다. 국채를 재발행하는 시점에 시장금리가 상승하거나 재발행에 차질이 생기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통안증권은 단기로 발행하는 것이 원칙

통화정책은 단기금융시장을 통해 실물경제로 파급된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은행의 활동은 단기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채권을 매매하기보다 단기 RP거래를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은의 여신 만기는 1년 미만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그렇다면, 중앙은행 채권도 단기물로 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은도 그 점을 잘 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한국은행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의 만기를 1년 이내로 제한했다. 1990년 초 한계지준제도를 폐지할 때 통안증권 최장 만기를 2년까지 늘렸지만, 실제 발행은 최대한 늦췄다.

실제 2년물 통안증권이 발행된 것은 7년 뒤였다. 당시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 때문이었다. 즉 은행신탁계정과 투신사 등 제2금융권이 투자상품 판매액의 일정비율만큼 의무적으로 통안증권을 매입토록 한 ‘통안증권 편입의무’가 1997년부터 폐지되고, 동시에 은행 특정금전신탁의 최장만기는 1년에서 2년 이상으로 연장되었다. 한은은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1996년 12월부터 2년물 통안증권을 발행했다. 결국 2년물 통안증권 발행은 순수 통화정책이라기보다는 당시 취약했던 채권시장의 수급 구조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한은은 더 이상의 최장만기 연장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25년이 흐른 지금, 금융통화위원회가 3년물 통안증권 발행을 검토한다(2021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이는 정부가 2년물 국채 발행을 추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2년물 채권시장을 침투하니까 한은도 3년물 채권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생각이다.

양쪽 모두 틀렸다. 현 상황에서 정부가 단기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부적절하거니와 한은이 장기 통안증권을 발행하는 것은 더 부적절하다. 우선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가상승 조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한은은 대출규모를 줄이지 않고, 가끔 국채까지 매입한다. 그런 와중에 3년물 통안증권 발행하여 유동성을 장기간 묶어두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한다.

3년물 통안증권 발행은 유례를 찾기도 어렵다. IMF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16개 중앙은행들이 채무증서를 발행하는데, 최장만기가 대부분 1년 이하다. 덴마크중앙은행은 명목 GDP의 6%가 되는 금액을 1주일만기 CD로만 발행한다. 미 연준도 초과유동성을 흡수할 때는 3개월 미만의 RP매도나 1주일 만기 정기예금 입찰(경쟁입찰로 자금을 흡수한다)을 활용한다. 그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출처= Simon Gray 등(2015), “Issuance of Central Bank Securities: International Experiences and Guidelines”, IMF Working Paper
출처= Simon Gray 등(2015), “Issuance of Central Bank Securities: International Experiences and Guidelines”, IMF Working Paper

다만, 중앙은행이 채권시장 발전이라는 별도의 목적을 추구할 때는 장기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칠레와 태국이 그렇다. 양국 중앙은행은 각각 5년과 3년짜리 채권을 발행한다. 1996년말 한은이 2년물 통안증권을 발행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채권시장은 외환위기 이전과 크게 다르다. 한은이 채권시장 발전을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3년물 통안증권 발행은 대단히 이상하다.

현 상황에서는 차라리 통안증권 최장만기를 단축시키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심지어 통안증권 발행을 아예 중단할 수도 있다. 덴마크나 미국처럼 만기 1주일~1개월의 통안계정으로 전환한 뒤 낮은 수준의 금리를 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금통위가 규정을 바꿀 필요도 없다. 오직 의지에 달린 문제다.

그 경우 채권시장에서는 우량채권 공급이 크게 줄어든다. 사상 최대 규모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바람직한 일이고, 한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채권시장에서 금리상승 압력이 낮아지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지 않더라도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부와 한은은 이상한 경쟁심과 근거 없는 걱정을 버리는 것이 좋다. 정부는 장기국채 발행에, 한은은 통안증권 평균만기의 단기화에 전념하는 것이 양 기관과 국민들을 위해 바람직하다. 양 기관이 대화는 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방법만 추구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통화안정증권의 최장만기를 단축시키거나 통안증권 발행을 아예 중단할 필요도 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연합뉴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통화안정증권의 최장만기를 단축시키거나 통안증권 발행을 아예 중단할 필요도 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연합뉴스

<덧붙이는 말>

일반적으로 수익률곡선 조절이나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효과는 전통적 통화정책인 금리조절이나 양적완화에 비해 약하다. 미국은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더 낮출 수 없자 오퍼레이션트위스트 즉, 수익률곡선(장단기 금리차)을 미조절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유로지역과 일본은 양적완화를 먼저 시도하고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나중에 채택했다.

한국은행은 그 순서를 바꿀 수 있다. 즉 기준금리 조절과 양적완화 전에 수익률곡선 조절을 먼저 취할 수 있다. 통안증권의 평균만기 조절이 바로 그 수단이다. 통안증권의 평균만기 조절은 금리인하나 양적완화에 비해 효과가 작은 만큼 한은의 리스크도 적다.

통안증권 발행을 중단하거나 2년물 발행을 축소하면, 일차적으로 채권시장에서 우량채권 공급이 줄어든다. 그만큼 시장금리는 하락압력을 받는다. 반면 단기금리의 상승압력은 크지 않다. 단기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 영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익률곡선이 평탄해지는, 오퍼레이션트위스트 효과가 나타난다.

통안증권 평균만기의 단축은 마이너스 금리정책과 비슷한 효과도 갖는다. 한은의 이자지급 총액이 줄어들고, 그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은행은 회사채 투자나 대출을 늘려야하기 때문이다.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한은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실행한다면,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것은 지급준비금이다. 현재 70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통안증권의 발행잔액은 그 두 배가 넘는 160조원이다. 통안증권의 평균만기 조절이 중요한 이유다.

통안증권 발행 잔액에만 신경 써온 지금까지의 통화정책은 전형적인 통화주의적 접근이다. 통화량이 아닌 금리가 중요한 시대라면, 통안증권으로 시장금리를 미조정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통안증권의 평균만기를 조절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을 필자는 ‘통화정책의 한류’라고 부른다. 나라마다 금융시장 여건이 다르다면, 통화정책에서도 한류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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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2021-01-15 15:48:28
결론적으로 정부(기재부)와 한은은 이상한 경쟁심과 근거 없는 걱정을 버리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금융위와 한은은 이상한 경쟁심과 근거 없는 걱정을 버리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