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트로트, 부캐, 그리고...키워드로 본 2020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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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트로트, 부캐, 그리고...키워드로 본 2020 대중문화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3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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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중문화계에 나타난 현상, 키워드로 정리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오래도록 기억될 2020년이 저문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희망차게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2020이라는 새해의 숫자가 입에 채 익기도 전에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역사책에서나 봤을 감염병의 창궐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온 사회에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다.

사람들은 적응해야 했다. 마스크를 쓰면서,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면서, 이러한 불편이 일상이 되어가는 것에 적응해야 했다. 감염병은 사람뿐 아니라 많은 산업 분야를 변화에 적응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시절 덕분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방송이 그런 카테고리에 속한다. 텔레비전 혹은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견뎌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2020년 대중에게 사랑받은 콘텐츠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눈에 띈다. 그 현상들에서 2020년 대중문화를 되돌아본다.

KBS2 ‘트로트 전국체전’. 사진=KBS
KBS2 ‘트로트 전국체전’. 사진=KBS

트로트 음악, 주류 문화로 편입된 걸까

만약 외계에서 대한민국에 친선의 메시지를 전해온다면 배경음악으로 트로트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트로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2020년 텔레비전을 틀면 온통 트로트 프로그램뿐이니까.

우리나라에서 트로트가 눈에 띄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건 2019년 TV조선의 ‘미스트롯’ 덕분이었다. 오디션 혹은 경연 방식에 트로트를 접목한 미스트롯은 처음에는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과 큰 차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다른 것이 보였을까. 종편 방송으로는 유례가 없는 시청률을 올리는 방송이 되었고, 우승자인 송가인뿐 아니라 다른 출연자들에 대한 팬덤이 크게 일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트로트 열풍은 2020년 같은 방송국의 ‘미스터트롯’ 덕분에 더욱 크게 폭발했다. 우승자 임영웅은 진짜 ‘영웅’이 되었고, 트로트 소재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은 다른 종편과 케이블을 넘어 지상파 방송까지 장악했다. 2020년 연말 현재 모든 지상파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트로트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렇듯 트로트가 방송가 전반을 뒤덮은 것에는 팬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송가인 등 미스트롯 출신 가수들로부터 시작된 팬덤은 2020년 임영웅과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들에도 이어졌다. 그들은 젊은 층의 아이돌 팬덤에 못지않은 조직력과 기획력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고 있다. 이러한 팬덤은 구매력 있고 충성도 높은 중장년이 다수를 차지한다. 덕분에 트로트가 예년에 없던 호황을 맞게 되었고 방송사들은 그에 호응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트로트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올라온 것일까. 물론 사람들의 선택이 많고 적음이 주류 혹은 비주류를 정하는 유일한 항목은 아닐 것이다. 고착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식상해지는 것과 경쟁도 벌여야 한다. 트로트가 방송가를 장악한 만큼 유사하고 중복되는 콘셉트가 반복된다는, 그래서 식상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

2020 M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 사진=MBC
2020 M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 사진=MBC

부캐, 당신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요

유재석이 ‘2020 MBC 방송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라 긴장감 없는 발표였다. 유재석에게 이번에 대상을 안겨준 이유는 아마도 2020년 내내 보여준 그의 여러 부캐 덕분일 것이다.

유재석의 부캐는 2019년 여름 MBC ‘놀면 뭐하니’에서 시작되었다. 어쩌다 드럼을 배우게 되더니 어느새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 되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 라면을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라섹남’도 되었다. 왕년의 인기 연예인들과 ‘싹쓰리’ 활동을 하는가 했더니 센 언니들로 구성한 걸그룹 ‘환불원정대’의 제작자 겸 매니저로도 활동했다. 지금도 유재석의 부캐와 그 세계관은 확대되는 중이다.

부캐는 유재석만의 것은 아니었다. 유재석과 함께 활동한 ‘싹쓰리’와 ‘환불원정대’는 모두 부캐를 설정한 멤버로 구성됐고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로 반짝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 외 여러 연예인이 부캐 설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대중이 부캐라는 콘텐츠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부캐에 열광했을까. 유재석이 방송에서 비친 평소 모습과 부캐가 된 모습을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유재석은 항상 부정했지만 그가 연기한 부캐는 그에게 전혀 없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재석 안에 내재 된 욕망 혹은 재능이 부캐라는 가면을 쓰고 표출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하면 PD가 유재석의 옆구리를 찌르자(혹은 조력자의 도움을 받자) 숨겨져 있던 유재석의 본능이 부캐라는 탈을 쓰고 만개한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모습이 내면의 욕망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대중을 자극한 건 아닐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에서나 일터에서 혹은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처럼 보이도록 연기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착한 자녀, 복종하는 직원, 모범 시민처럼. 그렇다면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사실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부캐의 모습이고, 진짜 자기의 모습은 가면 속 깊은 내면에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잠재의식이 부캐(라고 쓰고 사실은 내재된 욕망)를 마음껏 표현하는 연예인을 향한 환호로 연결된 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부캐라고 할지 모르는 자기의 진짜 모습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다는 욕망을 담아서.

세상의 가치 그리고 그 무게감

올 한해 무너지는 연예인과 셀럽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재능이 없어서 무너진 건 아니었다. 다만 세상의 그 어떤 잣대보다 엄격하게 적용한 가치 기준 때문에 무너졌다. 인성이나 갑질 때문에, 때로는 거짓말이나 과신한 자기애 때문에. 만약 대중에게 찍히면 과거가 탈탈 털리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가물거리는 실수는 물론 논문까지.

대중은 그들을 사랑한 만큼 깨끗하고 완전한 존재이길 바란다. 그만큼 연예인들은 긴장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산다. 인기도 쌓아야 하지만 인격도 그에 못지않게 쌓아야 하는 것이다. 대중은 그들이 그만큼의 대가를 누리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감염병이 창궐한 지금은 사진도 사회 분위기에 맞춰 찍어야 한다. 어떤 곳에 갔는지, 얼마나 모였는지 잘 살펴야 한다. 물론 마스크는 썼는지도. 언택트 세상은 그들이 일반인이라고 칭하는 대중과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연예인들이 실은 같은 세상에 사는, 감염병에 약하기만 한, 그저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걸 알려준다.

일 년 후 이맘때, 2021년 연말 시상식에서는 참석자들이 마스크 쓰지 않고 카메라를 향해 웃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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