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㉒美 영화 퍼스트레이디 '릴리안 기시'– 스타시스템의 탄생 (중)
상태바
[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㉒美 영화 퍼스트레이디 '릴리안 기시'– 스타시스템의 탄생 (중)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12.27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성영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배우
D.W 그리피스 감독의 뮤즈였던 릴리안 기시
클로즈 업을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배우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오피니언뉴스=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영국의 영화감독 린제이 고든 앤더슨은 1978년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그의 가족을 방문하는 동안 두 노인 자매에 대한 연극을 보았다.

‘8월의 고래’라는 이름의 이 연극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을 때 그는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릴리안 기시 (Lillian Gish)에게 이 작품의 영화화 버전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미 그녀의 나이는 92세. 난청과 거동이 불편한 이 여배우를 데리고 촬영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었지만 분투 끝에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비평가들의 찬사를 들은 이 작품은 위대한 여배우 중 한 명인 릴리안 기시의 유작이 되었다.

린제이 앤더슨 감독이 후에 밝힌 바에 따르면 하루는 촬영이 막 끝난 릴리안 기시에게 “미스 기시, 방금 완벽한 클로즈업을 해내셨습니다”라 하자, 옆에서 그걸 들은 기시의 상대역이자 본인 역시 74세의 과거 흑백영화 스타였던 베티 데이비스 (Bette Davis)는 “당연하지, 그녀가 클로즈업을 발명했으니까 말이야.”고 말했다 한다. 그녀가 ‘클로즈업을 발명한 여자로 불리게’된 사연이다.

클로즈업을 발명한 여자?

현대 영화사에서 클로즈 업은 중요한 영화 촬영기법 중 하나이다. 영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연극과 다르게 스크린 내에서 한 인물에 촛점을 맞출 수 있고, 이를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 잡아낼 수 있는 이 기법이 도입된 건 영화 산업과 이후 탄생하는 모든 영상 콘텐츠에까지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화의 계기였다.

많은 이들은 이 클로즈업이 그전까지 연극의 요소가 많이 섞여 있었던 초기 영화계에 있어 연극이 ‘영화’로 발전해간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런 릴리안 기시의 클로즈업 ‘움짤’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미국 무성영화시대 클로즈업이라는 촬영기법의 발명가로 불린 릴리안 기시.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무성영화시대 클로즈업이라는 촬영기법의 발명가이자 허리우드 퍼스트레이디로 불린 릴리안 기시.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많은 이들이 베티 데이비스의 말로 인해 정말로 릴리안 기시가 영화의 ‘클로즈업’ 기법을 만든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그건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정확히 ‘누가’ 이 기법을 영화에 도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90년대 후반의 극초기 영화들에서도 클로즈업 컷들은 가끔씩 보이며 1900년 초반의 영화들에서도 클로즈 업이 그렇게 찾기 힘든  기법은 아니다.

클로즈업이 엄청 기술적인 기교를 요하는 기법이 아니기에 1920년대 이전의 초기 영화에서 클로즈업의 사용이 드물었던 이유는 기술적 이유가 있기보다는 단지 클로즈업이 제작자나 감독들에게 인기가 없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 관객들이 배우의 머리나 팔, 어깨를 보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 입장권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들에게 클로즈업은 영화의 흥행과 직결되는 영화의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기법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현대 영화의 기법들을 시도해 현대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D.W 그리피스 감독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 연극적인 관점에서 무대를 관망하는 것이 아닌, 감독의 눈이 사물을 들여다보는 감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관객이 마치 배우를 들여다 보는 듯한 관음증적 화면 구성과 카메라 워킹을 통해 영화의 화면 구성을 다양화 시켰다.

주로 여배우 릴리안 기시를 대상으로 한 이런 그리피스 감독의 연출로 인해 많은 이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릴리안 기시를 바로 앞에서 보는 듯이 가까이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워낙 그녀의 클로즈업이 아름다웠고 인상깊었기에 많은 이들이 클로즈업이라는 새로운 기법에 환호했고 이는 클로즈 업이 영화계 전반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베티 데이비스는 릴리안 기시가 클로즈 업을 발명했다고 말한 것이다.

허리우드 최초의 상업영화로 불리는 국가의 탄생에 출연한 릴리안 기시.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허리우드 최초의 상업영화로 불리는 국가의 탄생에 출연한 릴리안 기시.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리피스 감독의 뮤즈

1912년 그리피스 감독의 ‘보이지 않는 적’을 통해 데뷔한 릴리안 기시는 그리피스 감독의 대부분의 필모그래피를 함께했다. 클로즈 업 에피소드에서 보듯 그리피스 감독은 그녀의 미모를 아주 잘 활용했다.

소녀같은 청순함 속에 엿보이는 성숙한 여인의 매력을 같이 지닌 그녀는 그리피스 감독 영화들이 흥행할 수 있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피스 감독의 영화에서 그녀는 늘 여 주인공의 역할을 도맡았고, 사람들은 기시를 ‘그리피스의 뮤즈’라 불렀다. 기시는 첫 데뷔 후 2년 동안 25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그 안에는 기시의 대표작인 ‘국가의 탄생’같은 작품이 있었다. 1920년대 초반 기시는 ‘미국 영화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며 헐리우드 여자 배우의 최고봉에 올랐다.

릴리안 기시는 배우로서도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당시 영화 감독이라는 일이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인식되던 시절에 ‘남편 리모델링’이라는 코미디 영화 하나를 연출하기도 했다.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볼 수는 없지만, 카메라 맨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탭을 여성들이 맡았던 영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기시의 경력은 무성 영화 시대가 끝나고 유성 영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끝이 난다. 영화계에서 여성 배우들의 인지도 상승과 함께 돈이 되기 시작하자, 많은 제작자들이 여성 배우들을 우후죽순 데뷔시키며 급기야 성 상품화까지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 앞에서 기시는 이런 작품들의 출연을 거부하는 것으로 기품을 지켰다. 하지만 점점 저속해지는 영화계의 현실 앞에서 기시는 ‘구식’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그녀는 결국 영화계를 떠나 연극 무대로 돌아간다.

다른 무성 영화 여자 배우들이 유성 영화 이후에도 계속 영화에서 연기 생활을 한 것에 비해 기시는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했고 다른 여배우들의 등장과 함께 대중들은 점점 그녀를 잊어갔다. 

1973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한 허리우드 1세대 스타 릴리안 기시. 사진출처=위키피디아.
1973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한 허리우드 1세대 스타 릴리안 기시.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녀가 영화사에 여배우로서 의미를 가지는 점은 먼저 대중들에게 ‘여배우’라는 존재감에 대해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이전까지의 초기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은 존재감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남자 배우들을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이었고, 대부분의 감독들은 여자 배우에 크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리피스 감독은 릴리안 기시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성에 주목했다. 그는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쌓은 감정 표현 능력이나 풍부한 몸짓 등의 연기력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클로즈 업이라는 기법을 통해 기시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그녀가 연기한 여 주인공들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지만 강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라 베른하르트가 만들기 시작한 스타 시스템이 릴리안 기시에 크게 꽃을 피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아름다웠기에 그녀의 얼굴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어했던 그리피스 감독이나 그녀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마다 경탄을 했던 관객들. 릴리안 기시는 영화사에 있어 배우로서 많은 작품을 하지는 못했지만, 초기 영화사 특히 현대 스타 시스템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음편에서는 무성영화의 여신 마지막편으로 미국의 연인으로 불렸던 메리 픽포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