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지식소매상 설민석, 인스턴트 인문학의 달콤함과 위험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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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지식소매상 설민석, 인스턴트 인문학의 달콤함과 위험함 사이에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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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얇은 지식을 찾는 대중 위한 '인스턴트 인문학'
이를 다루는 소매상과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
'교양의 탈'을 썼다고 해서 예능이 교양 프로그램 되는 걸까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인기 강사 설민석과 tvN이 야심차게 준비한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2회 만에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의 ‘클레오파트라’ 편을 접한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이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너무 많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곽소장은 몇몇 사례를 예로 들며 역사적 사실과 학계의 연구 결과와도 다른 설민석의 강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진은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진행자인 설민석 또한 유튜브를 통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내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이라면서 “제작진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포스터. 사진=tvN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포스터. 사진=tvN

설민석, 역사 강사와 연예인의 경계인

설민석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방송인이다. 부연하면 역사의 사건들을 방송 스타일에 맞게 만들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인포테이너(information + entertainer)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는 인기 강사 출신이다.

설민석은 2000년대 초반 어느 인터넷 교육 사이트에서 수능 한국사 강의를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의 방송 장인이 될 수 있었던 모든 노하우를 20년에 가까운 인터넷 강의에서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한국사 강의는 수험생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고 그만큼 설민석은 유명해졌다. 유명 인터넷 강의 사이트들을 오가며 수강생 몰이를 했고 EBS 강사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며 여러 방송에 출연하는 인기 방송인이 되었다.

방송가는 그런 설민석에게 그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다. 그만큼 ‘설민석’이라는 이름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장치가 되어왔다. 대중은 설민석과 ‘설민석’이 설명하는 역사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왜 그럴까.

이번에 쏟아진 언론 기사들 때문에 설민석의 이력이 많이 알려졌다. 그는 학부에서는 연극영화를 대학원에서는 역사교육을 전공했다. 포털이나 그의 저서에는 대학원 학력만 나와 있었는데 이번에 그의 배경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학력이 사실은 그의 강의 스타일을 잘 설명해주기도 한다. 연극영화 전공답게 극적인 스토리텔링 구조를 적용한 강의 흐름, 여기에 시험에 나올 부분을 콕 집어 예측하고 정리해 주는 일타 강사로의 능력, 이 모든 걸 몰입도 높은 강의로 연결하는 인간적 매력까지, 설민석은 어쩌면 설민석류라는 콘텐츠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설민석류와 같은 쉽고 대중적인 교양 프로그램은 방송사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을 인기 강사가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 프로그램들이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으니까. 하지만 전문성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공한 학문적 배경과 상관없는 분야를 강의한 결과 단편적인 해석이나 오류를 지적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또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강의를 몰고 가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스타 강사 최진기가 tvN ‘어쩌다 어른’에서 조선 시대 미술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tvN 방송 캡처
스타 강사 최진기가 tvN ‘어쩌다 어른’에서 조선 시대 미술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tvN 방송 캡처

방송에서 스타 강사를 내세워 논란을 일으킨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수능 ‘사회탐구영역’ 강사 출신 최진기는 지난 2016년 tvN ‘어쩌다 어른’에서 조선 시대 미술사를 강의하다가 화가 이름을 잘못 언급해 논란이 되었다. 설민석은 이번 논란 전에도 3·1 운동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선 때문은 아니었을까. 물론 세부 전공 학위가 없다고 해서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가르친다고 해서,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이 그 한계를 알았다면 더더욱 노력하고 논란이 없게 모든 것을 체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인스턴트 인문학, 편리함과 위험함의 경계선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니 설민석을 ‘세계사의 그랜드마스터’라 칭하고 있다. 그는 이 키워드를 들었을 때 자랑스러웠을까, 아니면 부끄러웠을까. 혹시 거의 요리된 제품을 데워놓고 유명 셰프 못지 않은 요리 솜씨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모습으로 비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마침 이런 방송 프로그램들을 ‘인스턴트 인문학’이라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인문학을 음식으로 비유하니 이해가 쉬운 것도 같다. 인스턴트 식품은 먹기 편한 데다 맛도 평균 이상이다. 그러나 매 끼니, 아니 그냥 자주 먹는다면 몸이 축날 수밖에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인스턴트 식품이 자기 몸에 끼친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방송에서 예능 문법으로 만든 인문학을 접하면 커다란 맥락과 흐름 파악에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학문이 지탱해온 오랜 시간과 그 시간 동안 연구자들이 고뇌했던 깊은 의미, 그리고 숨겨진 행간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일 게 분명하다. 인문학을 알아가는 묘미는 누군가 밑줄 쫙 그어준 것을 따라가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읽고, 묻고, 생각한 끝에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큰 성취감과 보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설민석이 2020년 12월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설민석 유튜브
설민석이 2020년 12월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설민석 유튜브

넓고 얇은 것만을 찾는 세상에서

서점에 가보면 ‘하루에 한 장’만 읽으면 어떤 분야를 '넓고 얇게' 다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인문학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독자들의 손이 그런 책들로 향하고 출판사는 그런 경향에 재빨리 적응한 현상이다. 쉽고 편한 접근은 아마도 대중이 선택한 기호일 것이다. 집 앞 편의점 맥주가 멀리 있는 슈퍼보다 비싸더라도 편리성과 접근성 때문에 이용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특정 분야를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주는 강사들은 어쩌면 ‘지식 소매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주민이 잘 찾는 것만 갖춰놓는 편의점과 같은 지식 소매상. 나아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지식 소매상과 그를 소비재로 활용하는 방송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체성 설정을 다시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중 또한 이들의 콘텐츠를 맹신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고.

넓고 얇은 지식을 찾는 세상에서 달콤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인스턴트 인문학을 다루는 소매상, 그런 쉽고 편한 지식을 재미있게 먹고는 교양인이 된 듯한 포만감에 빠지는 대중, 그런 지식 소매상과 대중의 욕망을 담아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탈을 씌우고 송출하는 방송사, 이들의 바람처럼 교양의 탈을 쓴다고 해서 예능이 교양 프로그램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인스턴트 인문학이 인문학 그 자체가 아닌 것처럼.

그리고 ‘세계사 그랜드마스터’와 같은 낯뜨거운 권위는 스스로 주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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