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칼럼] 외로움을 위한 해장, 북엇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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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칼럼] 외로움을 위한 해장, 북엇국
  • 지예
  • 승인 2016.01.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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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위한 연애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뭐해?”

불은 미역처럼 침대에 늘러 붙어 있던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 투닥투닥 소리가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자기 어제 술 많이 마셨잖아, 그래서 북엇국 끓여주려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던 그가 싱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난 그제야 어떤 양념 냄새를 인식하고는 물었다.

“응! 더 쉬고 있어.”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다시 침대로 가서 쓰러졌다.

그랬다. 전날 과음하긴 했었다. 그와 함께 마신 건 아니었다. 그저 자주 가는 바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가 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난 그러라고 했다.

응, 그러라고 했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가 보고 싶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난 아주 오랜만에 연애를 하고 있었다. 거의 1년 반 만에 일이었다. 그동안은 외롭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그를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교제를 시작하게 됐었다. 나는 막 ‘연애’라는 것에 적응하고 있던 중이었다. 난 아직까지 혼자, 혹은 나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하긴 했다. 혹여나 나의 그런 모습들 때문에 그가 상처를 받았을까봐, 나는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하면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것이 그의 즐거움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곧, 그의 그런 챙김과 보살핌을 받는 것에 곧 익숙해지리라, 기대하면서.

 

“다 됐어. 먹어봐.”

그는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북엇국을 끓여가지고 왔다.

“나 북엇국 진짜 오랜만에 먹어봐.”

“정말?”

“응.”

그는 정말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긴 나 같아도, ‘이건 원래 자주 먹어.’ 하는 것보다야 기분 좋을 것 같긴 하다. 연인 사이에 서로, ‘처음’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내가 외국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북엇국을 처음 먹어보겠는가! 정말 오랜만은 맞았다. 왜냐하면 난 북엇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기대에 가득 찬-어떠한 찬사를 바라는- 눈빛으로 숟가락을 든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난 건더기와 국물이 적절히 배합되게 북엇국을 떠서 입 안에 넣었다. 고소하고 짭쪼름한 국물이 입 속에 감돌았다. 보기와는 달리 부드럽게 넘어가는 북어의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맛있네.”

그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 많이 먹어.”

라고 하며 그제야 본인도 밥술을 뜨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원래 국물로 해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북엇국에 있는 계란을 건져 올려 밥과 함께 넘겼다. 나는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북엇국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다 비웠다.

“자기 잘 먹네?”

“응.”

그는 다 먹은 밥상을 치우면서도 계속 싱글벙글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음에는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아무거나.”

“자기는 다 잘 먹어?”

“응.”

난 그렇게 대답한 뒤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제 몇 시간 더 푹 자면 완벽하게 해장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의 설거지 소리를 들으며 난 정말로 잠이 들었었다. 그가 이불을 잘 덮어준 덕분에 짧지만 달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우린 헤어졌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에게 만나자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게 나의 유일한 잘못이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운 것이다.

사실, 나는 그가 좋아서 만난 것이 아니었다. 난 정말로 외로웠던 것이다. 어쩌다 알게 된 그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 같았고, 자상한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연애해도 괜찮을 만한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었다. 손 편지를 써주고, 연락도 자주 하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려 하고, 조그만 것 하나하나 챙겨주고, 섬세하고...... 처음에는 그런 그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그가 그렇게 해주는 것이 별로 고맙거나 기쁘지 않았다. 어떨 때는 피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난 스스로를 자책했다. 왜 그가 나의 일상에 들어오는 것을 피곤하거나 귀찮게 여기는 것인가에 대해서. 그가 ‘자기’라는 호칭을 쓰자고 했을 때, 처음부터 적응이 되질 않았지만 조금 지나면 적응 되려니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예전처럼 나의 일상을 궁금해 했고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묻고, 나의 의견을 궁금해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에 거부반응이 느꼈다.

숙제를 하듯 그를 만났다. 먼저 만나자고 한 입장으로서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노력해보려도 했지만 잘되질 않았다. 난 그에게 헤어지자는 얘길 꺼냈었지만 그는 노력해보자며 나를 타일렀고, 오히려 자기가 더 잘하겠다고 까지 했다.

“난 너라고 부르기 싫어. 지예라고 부르기도 싫고. 앞으로 자기라고 할래!”

난 다시 그가 나를 ‘지예’라고 불러주길 바랬다. 제발 자기라고 하지 말아줘....!

 

그랬다. 난 불과 한 달 만에 연애에 질려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연애를 위한 연애’였기 때문이다. 정말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났더라면 연애에 질려했을까? 정말 그 사람이 좋았다면 굳이 ‘연애’라 불리지 않는 관계였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것을 ‘선거 유세’라 불렀을 지라도 난 그 선거 유세를 기꺼이 환영했을 것이다!

난 그 사람과 함께 일 수 있다면, 혹은 그 사람이 내 것이 되길 원하는 어떠한 소유욕도 아니라 그저 안정적인 관계의 정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외로움을 떠나있고 싶었던 거다. 나도 누군가에게 속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심지어 난 그가 나보다 훨씬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와 단 둘이 식사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그건 그를 믿어서라기보다도 그냥 정말 신경이 쓰이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 어차피 우리 관계는 정의가 되어 있으니까, 애인 사이. 그걸로 됐던 거다.

 

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랍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이 되니 난 더 이상 그에게 노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이미, 외로움에 대한 해장을 마친 것이다.

 

난 1년 반이나 연애를 하지 않았었지만 그 중 최소 6개월 정도는 누군가를 잊는데 시간을 썼었다. 그러니까 1년간은 철저하게 지독한 외로움에 취해 있었다. 그러던 중 2주 정도 그가 끓여준 ‘연애’라는 북엇국으로 난 완벽히 해장을 마친 것이다. 그 후에 내가 다시 북엇국을 먹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물려서 먹지 못한다. 그리고 진정한 술꾼들은 안다. 해장을 다 마치면 다시 술을 찾게 된다는 것을. (지난 1년간은 해장술에 해장술을 마시고 지낸 시간들이었다.) 난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잔인하게도 그와 헤어진 후, 난 심리적으로 아주 건강하며 형평성 있는 상태가 되었다. 예전처럼 외로움에 취해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장을 너무 배부르게 한 것도 아닌 아주 중립적인 상태가 된 것이다. 적당히 고독을 즐길 줄도 알며, 사람들에게 적당히 친절했으며 쓸데없이 기대감을 갖지 않았다. 분별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난 정말 행복한 연애를 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나빴다.)

 

연애를 위한 연애, 외로움의 해장을 위한 북엇국 같은 연애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그 과정 역시 그러하다.

‘난 이제 속이 다 풀렸는데. 다 먹지 못하겠어, 남기고 싶어.’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그가 북엇국을 끓여주었을 때 그가 날 지켜보고 있었기에 내가 밥 한 그릇을 뚝딱 다 비운 이유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에게는 날 위해 사다놓은 북어가 벌써 몇 마리나 있었을 텐데. 나 혼자만 그저 해장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적당한 음주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

 

그렇다. 고독은 좋다. 고독은 혼자임을 즐기는 것이고, 외로움은 혼자임이 괴로운 것이다. (개인 성향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고독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함이 좋다. 연인 사이에도 그 정도의 거리는 둘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 난 외롭고 싶지 않다. 대신 자주 고독하고 싶다. 그저, 외로움을 해장하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던 북엇국을 찾는 일이 다신 없길 바라며. 다시 누군가가 만취 상태의 나로 인하여 상처 받지 않길 바라며, 나 역시도 그런 북엇국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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