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산책] 소통·체계화에 실패한 한국 미술 비평
상태바
[미술 산책] 소통·체계화에 실패한 한국 미술 비평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9 1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오피니언뉴스=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부끄럽지만 10여년 전 갤러리 사업하면서 전시 서문(preface)과 평론(critic)을 구분하지 못했다. 

미술 평론가나 글 쓰는 이들에게 명확하게 구분해주지 않았다. 평론가는 전시 서문에 쓰이는 평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미술 현장에서는 전시 서문과 평론은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평론가들은 작가의 이미지를 몇 점 보내라고 한다. 필자가 경험한 상당수는 작가와 전화 통화도, 만나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에 펼쳐진 이미지만으로 글을 보내고 글 값을 챙겨갔다.

서양화가 한규남(Kyunam Han. 1945~ )은 197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오하이오에서 7년을 공부한 뒤 1979년 뉴욕으로 옮겼다. 80년대 후반 시골집을 개조한 뉴저지 한규남 스튜디오를 또래의 비평가 엘리너 하트니(Eleanor Heartney)는 다섯 번을 방문한다.

동·서 문화의 차이 비교를 작가와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한규남의 회화 세계를 “Bridging Worlds”로 규정한다. 명저 ‘포스트모더니즘’을 저술했으며 미국 미술 평론가 협회 회장을 지낸 엘리너 하트니는 30여년 전 쓴 평론에서 한규남 작품의 근간이 되는 퀀텀(quantum)의 등장을 예견한다. 작가에게 퀀텀은 동서 문화의 공통적 요소, 단위이다. 

평론가가 지식이 방대하고 미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로 보인다. 생존 작가의 작품을 평하는 핵심적 역량은 소통 능력이다. 능력 이전에 태도가 더 문제된다. 한규남은 ‘한국에는 미술평론이 없다’고 말한다. 

한규남 , 뉴욕 59번가 고엽(Autumn Leaves 59st. Newyork)  2010 , 70cm x 169cm  아크릴(acryl).
한규남 , 뉴욕 59번가 고엽(Autumn Leaves 59st. Newyork) 2010 , 70cm x 169cm 아크릴(acryl).

세계 미술 시장에서 중국 현대 미술을 ‘정치적 팝(political pop)과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로 특징 지운 이는 중국 미술 비평가 리시엔팅(栗宪庭,, 1949~ )이다. 중국 전위 미술이 1989년 이후 반(反)80년대적인 새로운 경향의 미술 현상을 이루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중국 현대 미술은 1979년 미국과의 수교를 기점으로 개혁·개방 시대에 본격화 되나 역설적으로 1989년 천안문 사태이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황용핑·왕두 등 중국 공산당에 저항했던 작가들이 외국으로 망명해 활동하면서부터 이다.

장샤오강, 왕광이, 웨민쥔, 팡리쥔 등 국내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무력감을 냉소와 허무, 정치적 풍자라는 코드로 녹여냈다. 이들 해외파와 국내에 남아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계속한 작가를 합쳐서 ‘차이나 아방가르드’ 작가라고 부른다. 

가오밍루(高名潞·Gao Minglu, 1949~)는 개방 이후의 국가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서 자아표현에 대한 욕구를 반체제적이고 저항적인 측면으로 발현하는 중국 미술을 아방가르드 예술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가오밍루는 "중국 제도권의 아카데믹하고 상업적인 체제에 반하는 저항적인 공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로 ‘아파트먼트 예술(apartment art)’을 든다. 
 
가오밍루는 1980년대 추상미술 운동을 이끌었으며, 1989년 '중국현대예술전'을 총기획하였다.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피츠버그대학 미술사-건축사학과 교수와 사천미술학원 초빙교수를 겸하였다.

미국에 체류하며 괄목할 만한 전시를 기획했다.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중국 현대미술의 체계적 이론화에 공헌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위 "미술사의 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중국계 우홍(巫鸿, 1945~ )은 자신의 저서 ‘작품과 전시’에서 중국 현대미술을 정확한 시선과 논리로 해석했다.

시카고대 교수를 지낸 우홍은 “90년대와 2000년대 20년간의 중국 정치경제 개혁이 없었다면 이 예술은 근본적으로 생겨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정치체제로서의 사회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는 특이한 이종 결합은 다른 나라는 가질 수 없었던 독특한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왔다.

현대 중국 미술은 이러한 자국의 역사적 경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오면서도 중국전통에 묶여 있다. 이로인해 서구 미술계가 뚜렷한 예술적 화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쯤 등장한 중국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정치적 팝과 냉소적 현실주의에 먼저 열광한 것은 서구의 화랑과 미술계였다.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했다는 시장 논리와 함께, 사회주의 국가 안에서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미술을 발견하고 열광한 것이다. 

우홍은 이를 “냉전 논리에 입각한 오독”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 내에서 벌어진 전위예술 운동은 시작부터 글로벌 현대미술의 한 분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것은 강력한 중국 중심적인 사고다.

중국 미술 붐은 단순한 경제력,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 핵심에는 작가, 평론가, 컬렉터들을 하나로 만드는 문화적 중화주의가 놓여 있다.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현대 미술에 대한 수용이 중국보다 빨랐다. 세계 미술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한국 미술은 경제 규모, 제한된 컬렉터 등 시장 논리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평론가를 중심으로한 미술 글쟁이들의 역량 부족이 근본적 원인이다. 회화, 조각, 사진 등 미술 관련 글은 작가와 작품을 일반 대중, 미술 애호가, 컬렉터들에게 알기쉽게 전달 또는 통역해 주는 역할에서부터 기본기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미술계 입문 12년차의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쌍용자동차 기획팀, 삼성자동차 기획팀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를 거쳤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 전시를 가졌고, 국내외 300여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하였다.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