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②디지털금융, 특정 기관의 독점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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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②디지털금융, 특정 기관의 독점물이 아니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12.15 11:3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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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과 결제', '이용자 보호' 등에 대한 오해와 허풍
한국은행, 개인간 소액 결제 문제를 확대 해석해
금융위, '이용자 보호' 명분으로 전자결제에도 감독권 내밀어
청산과 결제는 지급준비금 관리하는 한은의 영역
금융위는 각 전자지급수단의 지급 문제에만 초점 맞춰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금년 여름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금융이 재정정책의 집행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각국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살포할 때 국고수표 등 전통적 지급수단 대신 디지털금융에 의존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다.

디지털금융이 생활의 일부가 되다보니 앞으로는 국가경쟁력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손잡고 함께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 두 기관은 지금 힘겨루기에 바쁘다. 접근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생각은 거시적·원론적이다. 금융기관간 결제불이행 사태가 생기면,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일이 없도록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최종대부자인 중앙은행의 타고난 책무라고 주장한다.

금융위원회의 생각은 미시적·기술적이다. ‘청산’이라는 특별한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디지털금융의 이용자를 보호하려면 자본시장법의 ‘청산업’ 개념을 전자금융거래법에 이식하고, 금융위가 디지털금융을 포괄적으로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의 '헐리웃 액션'

둘 다 틀렸다. 양 기관의 결론은 서로 반대지만,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함정을 갖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스마트폰이나 PC로 처리되는 개인 간 소액결제다. 그런데 한은은 갑자기 금융기관간 결제불이행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태를 예로 든다. 전형적인 '헐리웃 액션'이다.

개인이나 회사의 어음과 수표가 부도났을 때 최종대부자인 한은이 하는 일도 없다. 한은의 주장은 결제불이행 뒤에 찾아오는 회사의 '청산(liquidation)'과 어음교환소가 수행하는 '청산(clearing)'이 동음이의어임을 이용한 허풍이다.

금융위의 주장도 허풍과 헐리웃 액션으로 점철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디지털금융과 관련한 청산업무에서는 '이용자 보호'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이용자 보호는 증권이나 금융파생상품 거래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증권이나 금융파생상품을 매매할 때는 그 매매계약을 체결시킨 한국거래소가 거래의 당사자(CCP)가 되어 청산을 보장한다. 그러나 기타 상거래로 어음과 수표, 영수증 등을 교환한 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음교환소가 부도사실을 해당 은행에 통보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음교환소가 청산 결과까지 보장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니까 디지털금융에서 이용자 보호를 이유로 감독권을 내미는 것은 헐리웃 액션이다. 금융위의 주장은, 거래당사자를 뜻하는 증권거래에서의 ‘청산(CCP)’과 디지털금융에서의 ‘청산(clearing)’이 동음이의어임을 이용한 허풍이다.

한은과 금융위 주장 모두 틀렸지만, 금융위 쪽 잘못이 훨씬 크다. 디지털금융에 관하여 금융위가 업무영역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다. 그런 성향이 생기는 것은 2007년 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전자적 장치를 통한 금융상품의 거래를 규율하는 것이 목적이다(제1조). 그런데 법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엉뚱하게도 일반 상거래까지 규율하고 있다. 즉 ‘전자지급거래(제2조)’라는 기괴한 용어로써 전자지급수단을 이용한 상거래 전반을 규율한다(증권, 외환, 부동산의 거래는 있지만, 지급거래라는 말은 없다. 모든 상거래에는 지급이 따른다). 공정위와 상의했는지 모르겠으나, 의욕과잉임에는 틀림없다.

금융위는 의욕과잉인 그 법을 통해 이제는 금융결제원이 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일까지 시키려고 한다. 금융결제원은 법무부장관이 지정한 유일한 어음교환소인데, 그 업무에서 벗어나 빅테크들이 운영하는 폐쇄시스템 내에서의 거래기록(예: 기프트카드를 통한 상품 구매나 교통카드 이용실적)까지 수집하는 일을 맡기려 한다. 금융결제원의 설립목적 이탈여부를 엄중히 감시해야 하는 행정관청이 오히려 설립목적에서 벗어난 업무를 강제하고 정관변경을 강요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그런 시도을 하면서 "여태까지 금융결제원이 하지 않던 일을 하니 업무영역이 커지지 않느냐"는 말로 호도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청산의 뜻조차 모른다고 보인다. 어음교환소를 경유하는 은행 간 자금이동이 아니라면, 청산이 아니다(예를 들어 한 은행의 지점들 사이에서 돈이 오가면 청산은 없다). 그러므로 금융위가 시도하는 것은 청산과 무관한, 핀테크들의 뒷조사다. 뒷조사라면, 금융결제원이 아닌 제3의 IT업체에게 맡길 수도 있다.

디지털금융이 확대되면서 이를 규율하기 위한 전자금융거래법에 대한 검토가 관계 기관간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디지털금융이 확대되면서 이를 규율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놓고 관계 기관간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급을 넘어 청산까지 감독하겠다고?

한편 모든 전자지급수단을 금융위가 관할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어음은 법무부가 관할한다. 전자어음의 유통액(일평균 1조3천억원)은 기프트카드나 교통카드 사용액보다 많다. 그러나 법무부는 전자어음의 청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발행과 유통(전자어음의 지급)에만 신경 쓴다. 금융위는 그런 법무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시장질서 유지와 이용자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에서는 법무부와 금융위가 똑같다. 그러나 청산이나 결제는 그런 것과 상관없기 때문에 법무부는 신경쓰지 않는다. 민법과 상법에서도 지급은 다루지만, 청산·결제는 다루지 않는다. 청산·결제는 상거래 질서유지와 계약자보호 등 법률이 지향하는 목표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청산과 결제는 은행이 예금원장을 정리하고 지급준비금을 조정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에는 효율성과 안전성이 관건이다. 효율성과 안전성은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한은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금융위는 신용카드, 전자화폐, 전자채권 등 각종 전자지급수단의 지급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당하다. 그것이 전자금융거래법의 바람직한 개정방향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한은-금융결제원-상업은행이 연계하여 진행되는 청산·결제 작업에서 금융위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기획재정부-한은-한국예탁결제원이 연계하여 진행되는 국채의 발행·상환 작업에서 금융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융위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려는 욕심을 버리면, 그런 사실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그러면, 지금 검토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에서 ‘청산’과 ‘결제’라는 단어가 얼마나 어색한지 깨달을 것이다. 한은과의 마찰은 그때부터 풀리게 된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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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2020-12-15 12:28:31
칼럼자의 지적 게으름에 탄식할뿐입니다. 꼰대논리에다 언제적 논리를 가지고 지급 변화하는 시대에 공부도 안하면서 게으른 엤날옛적 시대 이론이나 들먹이고 있고...참 한국은행 수준도 알만 합니다. 공부 안하고 옛날 고릿짝 뒷방 늙이 앞세워 뭐하는 지 모르겠네요. 부끄럽지도 않은지

dllete 2020-12-16 15:20:48
이빨빠진 호랑이가 금융위를 상대로..고생이 많네요. 한국은행이 2000년대 중반부터 신입직원을 무차별적으로 증가시켰는데 업무 영역은 줄어드니 애가 타긴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