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①디지털금융, 특정 기관의 독점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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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①디지털금융, 특정 기관의 독점물이 아니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12.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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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금융, 한국은행·금융위원회·법무부·공정위 모두 '연관'
'전유물'이란 착각과 자만, 다른 기관들과 마찰 부른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지급준비금은 유통이다.”

지급준비금은 법원 공탁금이나 정기예금처럼 묶인 돈(stock)이 아니다. 언제든지 들락날락 하는 돈(flow)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은행들은 하루 평균 370조원의 지급준비금을 입출금한다(일평균 회전율 5.6회). 엄청나다.

그런데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통화주의자들은 지급준비금을 오해했다. 지급준비금의 양 즉, 잔액(stock)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예금자보호를 위한 규제이자 통화정책의 도구로만 이해했다. 지금도 경제학교과서는 그렇게 소개하지만, 그것은 역사를 잊은 실수이자 편견이다.

지급준비금은 17세기 초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 발명되었다. 전쟁 중에도 은행들의 지급결제업무를 편리하게 만들려고 세상에 나왔다.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다.

지급준비금은 규제가 아닌 편의시설이다. 지급준비금이 없다면, 은행은 물론 국민 모두가 엄청 불편하다. 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오토바이나 택배회사를 이용해야 한다. 요즈음의 디지털금융도 택배금융이라는 말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디지털금융은 소통이다”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지급준비금에서 은행들의 지급결제업무가 시작되고, 지급결제업무에서 디지털금융이 파생되었다. 중앙은행과 지급준비금이 없으면,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네이버 등 국내외 테크핀들의 디지털금융도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중앙은행이 디지털금융의 알파(시작)지만, 오메가(끝)는 아니다. 중앙은행은 지급결제제도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뿐이다. 디지털금융에는 중앙은행과 지급준비금(그리고 은행) 이외에 통신망, 기술, 그리고 법규 제도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된다.

최근 한국은행이 밝힌 것처럼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은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적 관리’다. 안정적 관리는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한은이 쏟아야 할 ‘기여’이지, 뽑아야 할 ‘권한’은 아니다. 한은이 이를 과잉해석하면 다른 기관과 마찰을 빚게 된다.

디지털금융은 공공기관 어느 한부서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진= 연합뉴스
디지털금융에 대한 행정권한을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다투는 모습은 금융의 역사를 비쳐보건대 큰 의미가 없다. 사진= 연합뉴스

예를 들어 현행 한은법상 한은의 행정권한은 매우 미미하다. 한은이 지급결제망 운영기관과 참가기관을 향해 개선이나 자료를 요구하지만, 그것은 행정기관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급준비금의 관리자로서 하는 것이다. 수영장 주인이 입장객에게 샤워를 요구하는 정도다. 그 점을 착각하고 완장 두른 ‘동네 이장’ 노릇을 하면 한은이 설 땅은 좁아진다.

행정관청인 금융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금융은 금융위 업무와 깊이 관계되지만, 금융위의 전유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금융의 상당 부분은 스마트폰이나 PC를 경유한 전자상거래와 관련된다. 전자상거래는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다. 증권과 금융파생상품 거래의 청산이 금융위의 업무라면, 전자상거래의 청산은 공정위 업무가 되어야 한다.

증권거래든 상거래든 자금의 청산은 어음교환소가 담당한다(어음교환소는 수표, 각종 대금청구서와 영수증도 교환한다). 청산은 어음교환소의 기능(거래증표의 수집, 확인, 청산, 통보)중 하나이며, 어음교환소를 지정하는 것은 법무부장관이다.

현재는 금융결제원이라는 기관이 유일한 어음교환소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결제원의 주무관청은 법무부가 되어야 하고, 청산업무도 법무부 소관사항이 되어야 자연스럽다.

한편, 현실 속의 금융결제원은 지급지시를 전달하는 통신망도 운영한다. 그 통신망은 글로벌 지급통신망인 SWIFT망과 기능적으로 똑같다. 무릇 통신망과 통신사는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이다. 금융위가 SWIFT사를 감독하지 않는다면, 금융결제원도 감독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결국 디지털금융에서 금융위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그래서 관련 기관과 소통이 필요하다. 그런데 금융위는 소통하지 않는다. 은행들이 지급결제업무를 수행하므로 지급결제업무에 관한 모든 권한이 당연히 금융위에게 있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그 착각은, 대기업 백화점에서 우유를 파니까 낙농업의 감독권한이 공정위에게 있다는 착각과 다르지 않다. 그 착각과 자만은 다른 기관들과 마찰을 부른다.

지금까지 한은과 금융위가 각자 내세우는 주장은 편협하다. 도토리 키 재기다. 무엇이 잘못인가? 그것이 다음 이야기의 주제다. 내일까지 조금만 기다리시기를 바라면서 이 말로 마무리한다.

“경제정책은 소통이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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