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산책] 미술대학 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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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산책] 미술대학 개혁이 절실하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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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술대학, 커리큘럼 조정 급선무
젊은 작가 미술시장 진출 많지 않아
미대 졸업 후 진로 보장 안돼
실기와 이론 분리한 미대 개혁 시급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서울 인사동을 비롯한 화랑가에서는 ‘작가가 너무 많다’는 소리가 들린지 오래되었다.

부동산과 금융은 버블로 치닫는 반면 실물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미술 대학 졸업생들의 진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수년전부터 미대 입학생 숫자가 줄어들면서 교수진 채용도 축소하고 있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교수 스펙 또한 문제다.

미술 이론, 미술사 또는 작업 중심의 실기 교육중 어디에 비중을 둘지 방향 정립도 중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미술 대학의 향후 역할과도 관련 있다.

국내 미술 시장은 여러 요인으로 왜곡되어 젊은 작가들의 시장 진출이 사실상 봉쇄돼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초과돼 미대 졸업생 조절론이 나온지 오래됐다.

유럽의 미술 교육은 이론과 실기가 엄격히 구분된다. 작가를 양성하는 과정은 학위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미술 이론이나 미술사 전공은 학위 과정을 둔다.

프랑스 파리 국립 에콜드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를 비롯한 각 지방의 보자르 교육 시스템은 학교 밖 도제(徒弟)를 허용, 견습생 자격으로 기량을 연마할 수 있다. 프랑스 국적의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잇는 장 누벨 (Jean Nouvel. 1945~ ) 등이 보자르 출신이다.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꼴데보자르 실기 수업 모습. 실기위주 프로그램으로 전문 화가와 건축가 등을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학교로 꼽힌다. 사진=에꼴데보자르 드 파리 홈페이지 캡쳐.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꼴데보자르 실기 수업 모습. 실기위주 프로그램으로 전문 화가와 건축가 등을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학교로 꼽힌다. 사진=에꼴데보자르 드 파리 홈페이지 캡쳐.

바우하우스의 전통을 잇는 독일의 미술 및 디자인 학교는 학제, 또는 동일 캠퍼스에 순수 미술 및 건축 등을 같이 가르친다. 독일 신표현주의를 주도한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와 같은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가 배출될 수 있는 배경이다.

한국의 미술 대학은 1945년 해방직후 조선대, 서울대, 이화여대 등이 잇달아 설립되면서 실기와 이론 혼용의 교과 과정을 택했다. 한 때 화실이라는게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70년대~ 80년대초 베이비 붐 세대가 대학 입학하면서 화실은 부잣집 자녀들의 진학 수단으로 전락했다. 수개월만에 실기 고액 과외를 시켜 입학한 사례들이 있다. 2000년대 부정 입학으로 유명 미술 대학이 입시에서 실기 과목을 폐지하자 타 대학들도 이에 동참하였다. 대형 화실들도 대거 문을 닫았다.

사회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지만 대학 졸업자가 전공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평생 한 길을 가는 것은 극히 드물다. 미술 전공자의 상당 수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집중한다. 예술고와 미대를 졸업한 후 관련 직업에서 벗어나면 사회 생활 자체가 힘들다.

주변으로부터 ‘잘한다, 잘한다’면서 키워 온 능력이 제 자리를 찾지못할 때는 재능이 재앙이 된다. 매해 수천명의 미술대학 졸업생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등의 창의적 작업을 하는 소위 ‘전업 작가’로 사는건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고 지나는 것 보다 어렵다.

예술가인 전업 작가는 ‘예술가’가 되는 면허도 존재하지 않고 실력을 검증하는 과정과 기준이 모호할 때도 있다. 자격증을 요구하는 의사나 변호사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운 직업이다.

상업 갤러리들은 높은 임대료 및 인건비 부담으로 경영이 쉽지 않다. 젊은 작가들은 작품 가격이 낮아 수익이 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 미술관은 미술 은행을 운영, 작품을 구매하고 있으나 수량이 절대적으로 적다.

이들 미술관들은 검증된 작가 위주의 전시 정책을 편다. 상업적 거래는 금지된다. 경매 시장은 매우 복잡하다. 조금 이름이 알려진 젊은 작가들이 자칫 참여했다가 낮은 가격에 작품은 소진되고 창의력은 고갈된다.

미술 시장은 일반 공산품 시장과는 원리, 구조 자체가 판이하다.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은 수요를 창출한다. 없던 시장도 생긴다. 물론, 홍보나 프로모션의 제도적 장치가 따라야 한다. 문제는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재능도 계속 투자가 돼야 발굴이 된다. 이런 그림도 그려보고 저런 그림도 그려보고. 작업하기 좋은 환경도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창작 작업실 입주)은 2~3개월 정도로 기간이 짧고 입주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유명 상업 갤러리 레지던시는 사실상 부동산 임대 사업이다.

동시대 미술이라고 일컫는 현대 미술은 동·서양화의 구분이 없다. 미디어아트가 교과목으로도 편성된다. 그럼에도 미술 대학은 여전히 동양화과 서양화과를 구분하며 교수들은 각각의 전공대로 채용하며, 신입생 역시 구분해서 뽑는다.

미술 대학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미술 대학을 줄이고 커리큘럼은 이론과 미술사 위주로 개편해야 된다. 재능있는 작가 지망생들은 유럽처럼 실기 전문 학교로 모아야 한다. 한류는 K팝으로 전이되었다. K팝이 K아트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미술 대학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미술계 입문 12년차의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쌍용자동차 기획팀, 삼성자동차 기획팀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를 거쳤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 전시를 가졌고, 국내외 300여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하였다.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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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영 2021-09-17 22:28:00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우리나라 미술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편협하누교육환경을 가지고 있죠. 이젠 우리나라 미술도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