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인간의 근원적 저항심 들여다보는 화가·조각가 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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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 인간의 근원적 저항심 들여다보는 화가·조각가 서용선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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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역사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세월호의 비극 휘어진 육송 14장 위에 그려
민중미술과 궤를 달리해...인간의 저항심 작품으로 승화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현실을 재단하는 수단으로 접하는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는 핵심적인 기제인 언어(기록된 문자)는 한계가 있고, 역사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는 게 서용선의 인식이다. 

30여년간 천착하고 있는 조선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 단종 관련 이미지 자료는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는데 의구심을 가졌다.

모든걸 문자 기록물에만 의지해야하는 역사가들과는 달리 화가인 서용선은 그걸 신뢰할 수 없었다.

그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고 믿는 ‘역사’에 대한 이해는 2014년 일어난 세월호의 비극을 표현하는 데도 남다르다.

휘어진 육송 14장을 연결해 캔버스 삼아 그린 '2014 뉴스와 사건'(2015) 작품에는 빗살모양 칼자국이 패인 나무판에 푸른빛 선체, 누런 만장 들고 행진하는 유족들, 가로막는 전투경찰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얼굴들, 임명장을 받는 관료가 군복 차림 박정희와 함께 선 대통령 모습과 나란하다. 육송을 캔버스 삼은 이유는 동시대 사건으로는 너무 충격적이라 일반적 재료로는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용선 작가. 사진=이승은.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용선 작가. 사진=이승은.

그의 현실 참여는 70~80년 잠깐 유행했던 '민중 미술'과는 궤를 달리한다. 작가(writer)들은 권력에 대한 저항을 묘사하지만 서용선은 인간의 근원적 저항심을 들여다 본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화가는 뻔히 보는 앞에서 항상 막 출발한, 어차피 붙잡을 수 없는 ‘현실’을 대상(對象)으로 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화단에서 같이 활동한 작가들은 서용선에 대해 ’잘 그리고, 대상을 재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언젠가부터 골격(骨格)만 그려내려 한다. 

한편으로는 평면인데도 금속에 들러붙은 피 같은 붉은색은 입체적으로 와 닿고, 상징적 풍경과 장소로 적시된 단순·직선적 표현은 스스로가 이야기를 품어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경향은 정확하고 사실적 묘사가 될수록 제한적 이미지와 결론에 이르는 위험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서용선 작 '뉴스와 사건' 272 x585cm, 나무위 아크릴릭(2015).
서용선作 '뉴스와 사건' 272 x585cm, 나무위 아크릴릭(2015).

평면은 움직일 수 없는 조건이나 화폭 속 현실에서의 대상인 풍경과 인물을 평면으로 가져와야 한다. 회화 작가에게 평면은 운명이고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평면을 더 평면화시켜 화면에서 탈출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현실에서의 대상을 ‘골격’만 그리게 되었다. 

추상 회화 작가 칸딘스키는 음악적 개념을 담은 ‘인상(Impression)’, ‘즉흥(Improvisation)’, ‘구성(Composition)’을 작품 제목으로 사용했다. 이는 추상화에 이르는 3단계이기도 하다. ‘인상(Impression)’은 외부 세계와 직접 관계하며, 이를 표현한다. 재현의 흔적이 남아있다.

‘즉흥(Improvisation)’은 내적 경험으로 걸러진 외부 세계를 표현한다. ‘구성(Composition)’은 내면의 이성에 의해 표출되는 추상회화의 정점이다.

서용선作 성삼재1. 100*80cm acrylic on canvas 2011.
서용선作 성삼재1. 100*80cm acrylic on canvas 2011.

회화를 구상(具象. figurative. figuratif)과 비구상(非具象. non-figurative. non-figuratif)으로 나눈다. 추상화(抽象畫. abstract painting)는 구상과 비구상에서 각각 도출된다. 서용선 회화의 ‘골격’은 구상을 바탕으로 한 추상화이기도 하다. 의식과 의도, 목적이 명확한 회화이다.  

그가 평면에서 탈출한 게 조각이다. 2016년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가진 '색과 공, 서용선'전에서는 불교와 한글 서예를 소재로 한 조각과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회화 작가의 장르 확장’이라고 말하지 않고 미술의 본질을 찾는 과정으로 본다. 현대 이전 시대에는 화가가 조각가, 장인의 역할을 도맡아했음을 강조한다. 불교 조각은 전형과 양식의 예술이다. 작가는 망치와 끌, 대패 등을 들고서 장작을 패듯이 윤곽만 다듬어낸 무위의 불상들을 드러냈다. 

서용선作 '붓다1' 170 x49x41cm,삼나무(2015).
서용선作 '붓다1' 170 x49x41cm,삼나무(2015).

‘개인 서용선’은 미묘하게 거대한 세상의 깊이와 밀도를 감당할 수 없으나 ’작가 서용선‘은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골격 미술‘의 세계로 이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서용선 회화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려는 회화의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의식으로 경험한 만큼을, 비약하지도 소홀히 다루지도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며 그 과정 자체이다. ”(여주미술관 공동 관장 김형남)

1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회고전 성격의 전시 “만첩산중(萬疊山中) 서용선 회화”는 경기도 여주미술관에서 오는 9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잠정연기됐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미술계 입문 12년차의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쌍용자동차 기획팀, 삼성자동차 기획팀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를 거쳤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 전시를 가졌고, 국내외 300여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하였다.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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