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칼럼] 공공재에 대한 성적인 비약
상태바
[지예칼럼] 공공재에 대한 성적인 비약
  • 지예
  • 승인 2016.01.06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와인잔 같은 사람이고 싶다…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그 느낌이 좋다

 

단골 술집이 있다. 그 술집 구석에는 휴대폰 기종별로 충전 케이블이 구비 되어 있다. 늦은 시간 술집을 찾은 손님들 중에서 충전기 신세를 잠깐이라도 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나? 나는 거의 그 앞에 매달려서 술을 마시는 편이다. (흐흐)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여느 때처럼 곧 죽어버릴 것 같은 휴대폰을 간신히 끼워 맞추고 서있는데 순간! 내 손이 참으로 민망해져 버렸다.

맙소사, 이 행위 자체가 너무 강압적이지 않은가!

이 날 술을 마시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대충 살아난 휴대폰을 들고 온 뒤로도 계속 충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새 그 충전기는 순서를 기다린 다른 누군가의 휴대폰 아랫도리에 꽂혀져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꽂히는 쪽은 휴대폰이다만 왠지 모르게 수동적으로 당하는 입장이니 충전기에 마음이 쓰였다.

휴대폰의,

휴대폰에 의한,

휴대폰을 위한 충전기인 것이다!

 

충전기가 우울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휴대폰(정확히는 스마트폰)이 어떤 존재인지 입 아프게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요즘은 그 수많은 기능을 넘어서서 이젠 지갑까지 대신하고 있다. 그러니 섹스보다 스마트폰이 좋다는 응답이 많은 설문을 봐도 별로 놀랍지 않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하듯 스마트폰도 충전이 되어야 일을 한다. 휴대폰이 중요하니 충전기도 중요하다, 물론 배터리가 많지 않을 때 특히, 아니 혹은 그럴 때에만. 정작 사랑은 스마트폰만 받는다. 충전기 역시 휴대폰을 사용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그 존재가 발생한 것인데도!

우린 이렇게 충전된 휴대폰으로 함께 식사할 사람을 찾고, 맛집을 검색하고,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또는 밤에 '뭐해?'라고 물어볼 사람을 찾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게임을 하며 시간을 떼우기도 한다. 당신의 멋진 저녁 식사를 위해, 설레는 만남을 위해, 황홀한 섹스를 위하여 일하는 휴대폰은 금방 허기를 금방 느끼기 마련. 그러하므로 공공장소에 설치된 수많은 충전기들은 휴대폰을 가리지 않고 꽂혀버린다. 불쌍한 충전기!

휴대폰 충전기 이외에도 불쌍하다고 같다고 느낀 물건이 있었다. 카페에서 남자 둘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평범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담배를 빨고는, 힘없이 식은 재를 재떨이에 떨구어 냈다. 담배를 적당히 피운 그들은 젖은 재떨이에 담배를 짓이겨 끈 후, 테이블 모서리로 재떨이를 밀쳐냈다. 그들의 대화에 끼기에 재떨이는 무언가 우중충한 느낌이었나보다. 그리고 잠시 후, 담배가 당긴 그들은 다시 재떨이를 가지고 와서는 타들어간 재를 떨어냈다.

흡연자들은 알겠지만, 재떨이가 없으면 무엇이라도 재떨이로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소중하지 않은 물건들이다. 흔하게는 종이컵, 다 마시고 난 캔, 병뚜껑까지..... 그저 담뱃재를 잘 받아내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저 '비워내기' 위한 물건. 카페에 오는 수많은 손님들이 커피 맛을 돋구게 하기 위해, 오래된 그들의 습관을 위해, 스트레스를 이완시키기 위해, 혹은 소화를 도우려고 피우는 담배의 재를 그저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재를 잘 끄기 위해 늘 젖어있는 채로. 재떨이는 그런

담뱃재의,

담뱃재에 의한,

담뱃재를 위한 '받이'인 것이다.

 

섹스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섹스도 있거니와, 배설 같은 행위가 될 때도 있다. 물론 서로 애정을 확인하는 행위가 일반적이지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섹스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신이 그만 두라고 조를 때까지 (구사나기 유) - 중에서>

충전기가, 그리고 재떨이가 하는 행동이 만일 섹스라면, 그들은 배설과 같은 행위의 상대가 아닐까. 어떤 충전기로, 어디에 떨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설이 필요한 사람 혹은 그런 물건이 없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그래서 불쌍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공공장소에서 쓰이는 공공재가 다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식당에서 쓰이는 포크들, 물컵, 변기, 의자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일도, 아니 이런 물건도 있었다.

평소 와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은 좀 땡겼었다. 집 앞 카페에서 하우스 와인 한 잔을 시켰을 때 였다. 그저 평범한 유리 와인잔에 와인이 담겨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만, 그 찬란한 와인 잔을 보게 된 것이다! 검은 유리 재질의 매끈한 몸. 나는 반이나 담긴 그 와인의 색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저 향으로만 유추할 뿐이었다. 와인 잔은 깊었고 그 붉은 속내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어두웠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진 듯 했다. 와인 잔의 스템(손잡이)은 길쭉하게 뻗고 단단했으며 그 위로 와인을 담고 있는 보울 부분은 시크하게 각을 이루고 있었다. 보통의 와인 잔은 보울에서부터 림(입구)부분이 좁아져서 향을 머금을 수 있게 만들어져있다. 그러나 이 불친절한 와인 잔은 그런 최소한의 배려 따위도 없었다. 보울 부분과 거의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아찔하지만 당당한 태는 검은 스틸레토 힐을 연상시켰다.

‘사람이 이렇게 매력적이어야지!’

겨우 처음 만난 와인잔에게 반하여 이런 생각을 해버렸다! 그리고 와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잔을 위해서라면 와인을 마시고 싶어졌다. 다른 걸 담아달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안타깝게도 그 와인 잔에는 와인의 향이 가장 잘 어울린다. 와인 잔을 위해 나는 와인 값을 내고 와인을 감내하는 것이다.

나에게 와인은,

이 와인잔의,

이 와인잔에 의한,

이 와인잔을 위한 것이다.

 

내가 이 와인잔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낀 이유는, 재떨이나 충전기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그 느낌이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나와 함께라면 어느 식당에 가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싶고,

술을 좋아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라면 얼큰하게 취하고 싶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라면 춤을 출 수 있고,

변화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라면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고,

성적인 욕구가 크지 않아도 나를 보면 몇 번이고 안고 싶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와인 맛을 부르게 하는 그 와인잔처럼!

술을 마시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고, 세상 모든 것들에게 깊은 관심이 생긴다. 나의 이런 생각이 비약이 심한 것을 알고 있다. (사실 그 때 충전기를 보고 속으로 정확하게, ‘걸레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맙소사.)

그러나 그것을 비로소 무언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니 술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들 역시 모두 나의 ‘글 쓰고 싶은 욕구’를 충족을 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그렇다. 읽는 이가 없다면 난 과연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까?

끊임없이 자극받고, 끊임없이 자극 주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고 싶다.

와인이나 마시러 나갈까.......

 

 

 

Tag
#N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