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중견화랑이 살아야 한국미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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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 중견화랑이 살아야 한국미술이 산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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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대형화랑 중심, 경매장으로 전락
젊음작가, '전시기회박탈→작품생산저조' 악순환 구조
중견화랑 상생방안 마련으로 돌파구 찾아야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메이저 화랑에서 초대받기 힘든 저평가 작가들은 국내 아트페어나 영업력 좋기로 소문난 서울 부심 화랑 전시를 통해 활동했으나 코로나19로 내방객 감소, 시장 양극화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방에 기반을 갖고 활동하는 작가들의 상황은 차라리 참상(慘狀)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 하다.

KTX가 개설되면서 점차 지방 대도시 컬렉터들이 서울에서 직접 작품을 구입하는 행태는 일반화되었다. 지방 화랑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작가들 또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작업을 접는 작가들이 속출한다. 

작가들의 작업 특성상, 작품 보관, 생활 공간과 별도의 적절한 작업 공간은 필수적이다. 젊은 시절부터 인기가 있었던 60대 이상 작가들은 일찍이 부동산 가격이 낮을 때 서울 근교로 이주했다.

작업은 공간이 좋은 서울 근교, 전시는 서울에서 갖는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레지던시’라 불리우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창작 기회도 실력이 바탕이 된 초대가 아니라 부동산 임대 사업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젊은 작가들은 전시 기회의 박탈, 경제난 가중, 작업 환경의 열악성으로 인한 창작 의욕 저하, 작품생산성 저조 등 악순환에 처해있다. 

경매 회사는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게 시장 참여를 권유하고 있지만, 작가에게 한창 창의력이 좋은 시절에 창작한 작품들이 작가에게 많은 수익을 남기지 못하고 재고량만 소진되고 만다. 작품 판매로 얻은 이익을 작품 활동에 재투자하지 못하는 악순환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화랑협회가 지난 3월 개최한 '한국화랑제'의 텅빈 모습. 코로나로 인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긴 중소형 화랑들의 피해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홈페이지 캡쳐.
한국화랑협회가 지난 3월 개최한 '한국화랑제'의 텅빈 모습. 코로나로 인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긴 중소형 화랑들의 피해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홈페이지 캡쳐.

1차 시장인 화랑 전시를 꾸준히 하면서도 2차 시장인 경매 시장에 작가 자신이 직접 매도자가 되어 참여한 경우, 시장의 왜곡으로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나아트가 대주주인 서울옥션, 갤러리현대가 실질적인 대주주인 K옥션은, 젊은 유망 작가들을 직접 프로모션하면서 시장의 왜곡을 가져온지 오래되었다. 메이저 경매 회사와 사실상 겸업하는 대형 화랑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역기능이 만만치 않은데도 실상을 잘모르는 일부 언론은 이들 오너에게 ‘거물 화상’과 같은 오도된 타이틀을 붙인다. 

코스닥 상장 기업인 서울옥션(대표 이옥경)의 모기업은 1983년에 설립한 가나아트 이다. 서울옥션은 1998년 설립되었고, 2008년 아시아 미술 시장 거점인 홍콩에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서울옥션 자회사인 서울옥션블루는 지난 2016년 설립되어 해외경매 대행, 온라인 스토어 사업을 한다. 2005년 설립된 K옥션(대표 도현순)의 대주주는 갤러리현대 계열 및 관계자들이다. 

시장의 왜곡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들은 경매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경매사를 갖지 않은 전통의 중견 화랑들이다. 이들은 서울 도심의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으로 호당 단가가 낮은 젊은 작가들을 초대하는데 한계를 느낀다.

그나마 자체 건물과 전시장 및 부대 시설을 갖춘 서울 인사동 소재 통인화랑, 선화랑, 노화랑 등 몇몇이 버티고 있는 정도이다. 이들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이유로 점점 높아가는 부동산 보유 관련 세금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들 중견 화랑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하여 한국미술 전체를 견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소극적 경영으로 인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인사동에서 서울 부심으로 자리를 옮긴 L갤러리는 인건비 부담으로 큐레이터를 두지 못하고, 화랑 대표의 부인이 큐레이터의 역할을 겸하면서 공간 한쪽에서 다실을 운영한다. 고급 중국 차들을 팔아 이익을 보전하나 자신들의 인건비는 커녕 임대료 및 관리비 부담에도 허덕인다.    

화랑 사업은 철저하게 선점자 우위(first mover advantage)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다.

70~80년대에 진출한 화랑들은 부동산 평가이익, 막대한 컬렉션으로 계속 선점의 이익을 누려 왔다. 게다가 이들이 경매 사업에 추가 진출할 90년대말~2000년대 중반,  미술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낮은 사회 분위기 탓에 제대로 된 진입장벽 조차 없었다.

이들은 자체 경쟁력보다는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상대적 기회 이익을 계속 누리고 있다. 경매 회사들이 주요 경매를 앞두고 발간하는 고급 작품 도록의 내용은 10여년 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BTS, 블랙핑크를 중심으로한 K팝의 확장은 K아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작가군의 등장은 선진화된 갤러리 시스템을 갖춘 화랑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수에만 치중하고, 선점의 효과에만 기대는 화랑들만 갖고는 K아트의 시대는 오지 않는다. 대형 화랑들과 시장에서 유효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중견 화랑들을 지원하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젊은 작가군을 대상으로 참신한 기획력을 갖춘 신생 화랑들의 미술 시장 참여 또한 자유로워져야 한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미술계 입문 12년차의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쌍용자동차 기획팀, 삼성자동차 기획팀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를 거쳤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 전시를 가졌고, 국내외 300여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하였다.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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