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시아 전면 대결…신흥국 시장 불안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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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시아 전면 대결…신흥국 시장 불안요인
  • 김인영
  • 승인 2016.01.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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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이란과 단교 선언…양국 갈등 극한으로

 

새해벽두부터 중동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두 나라의 대립은 국제유가 하락을 부추겨 신흥국 위기를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중동의 양대 강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대치가 최고조에 달해 중동 정세 전체가 경색 국면을 맞게 됐다. 또 양국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인 만큼 중동의 종파 간 갈등도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전망이다.

알주바이르 장관은 사우디에 주재하는 모든 이란 외교관은 48시간 안에 본국으로 떠나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이 사우디의 안보를 해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2일 사우디가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 등 반정부 시아파 유력인사 4명을 테러 혐의로 사형을 집행한 뒤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한 데 따른 조치다.

사우디 정부 소유의 알아라비야 방송은 이란 시위대의 사우디 외교공관 공격 뒤 사우디 외교관들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피신했다고 4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차관은 4일 "사우디는 단교 조치로 그들의 큰 실수를 만회할 수 없다"며 "이란에 주재하는 사우디 외교관 중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불타는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 / AFP=연합뉴스
사우디의 시아파 사형이 단초

사우디는 지난 2일 테러혐의 사형수 47명의 형을 집행하면서 반정부 시아파 유력인사 4명을 포함했다. 국제사회의 만류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수차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형집행이었다. 사우디는 이들 시아파 사형수에 외부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보를 해하려 했다는 테러 혐의를 적용해 이란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시아파의 맹주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사형 집행 발표가 난 당일 밤 성난 이란 시위대는 테헤란과 제2도시 마슈하드에 주재하는 사우디 외교공관으로 몰려가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

마치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1979년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공격이 재현되는 듯한 장면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에 맞서 중동 수니파 진영의 사우디 지지 선언으로 결속을 확인한 사우디는 3일 밤 외무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을 전격 선언한 것이다.

 

사우디의 내부 불만 해소용

사우디의 신속하면서도 예상보다 수위가 높은 강공에 나선 것은 사우디가 직면한 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군사 개입한 예멘 내전이 10개월째 접어들면서 장기화하는 데다 시리아 내전 역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사우디의 역내 정치적 리더십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화수분 같았던 사우디의 오일머니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요소다. 유가 급락과 내전 개입 비용으로 사우디는 국민에게 지급하던 보조금을 축소할 만큼 정부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란의 핵협상 타결도 사우디의 입지를 좁혔다. 이란은 사우디의 전통적 우방 미국, 유럽과 핵협상을 성사시키면서 중동의 무게중심이 사우디에서 이란으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다.

더는 이란의 위협을 지렛대로 사우디가 서방과 특수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외부상황과 맞물린 왕가 내부의 불안정도 사우디가 강수를 둔 배경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즉위한 살만 사우디 국왕의 건강이상설이 끊이지 않는데다 아들인 '실세'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제2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이 주도한 예멘 내전은 수렁에 빠졌다.

서방 언론에선 살만 국왕 즉위 1년 동안 쿠데타설까지 종종 제기됐다. 사우디 정부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가 필요했고, 군사적 방법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시아파 처형과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해석된다.

사우디와 이란은 종종 갈등을 겪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였다.

이란의 국가 체제가 왕정에서 신정일치의 이슬람 국가로 전환된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사우디에 비판적이었으나 당시 칼리드 사우디 국왕은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양국은 그러나 1987년 호메이니가 사우디의 건국이념인 보수적 수니사상 와하비즘을 이단이라고 비난하면서 1988년부터 약 3년간 국교가 단절됐다.

당시 두 나라의 관계가 틀어진 데는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사우디가 같은 수니파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원해 구원이 쌓인데다 1987년 7월 사우디 메카 성지순례에서 벌어진 이란 순례객과 사우디 경찰과 충돌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러나 양국 지도자가 외교관계 복원에 힘쓰고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데 대해 이란이 이라크를 비판하면서 사우디의 편에 선 것을 계기로 1991년 외교관계가 회복됐다.

 

국제유가 하락 부채질…신흥국 위기 확대요인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 격화는 글로벌 경제 불안에도 기름을 붓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두 나라의 대립이 전쟁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두 나라가 산유국 회의인 OPEC의 맹주라는 점에서 국제유가 하락을 부채질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4일 OPEC 회원국들 사이에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감산을 합의하지 못한 바 있다. 그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대로 급락했다.

그 이유는 OPEC의 주도권을 가진 사우디 아라비아가 원유 증산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첫 번째 타깃은 미국의 셰일가스를 비롯해 비(非) OPEC 유전을 완전히 파산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 타깃은 시아파의 경쟁 산유국 이란과 이라크를 견제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셰일가스 회사들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사우디가 치킨 게임을 접을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판단이 나오는 가운데, 이란과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사우디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타깃이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즉 사우디가 미국 세일가스가 무너지더라도 시아파 산유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국제유가를 더 하락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진단이다. 누가 저유가에 오래 버티냐를 시험하는 치킨 게임에서 사우디는 1차 타깃을 벗어나 2차 타깃까지 게임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시아파 국가들도 기름 생산을 늘리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로 수출 규제가 풀릴 것에 대비해 그동안 사우디에 뺏겼던 쿼터를 되찾으려는 속셈이다. 시아파가 집권하고 있는 이라크는 사우디가 지원하는 수니파 IS와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돈이 필요한데, 돈이 나올 구멍은 석유밖에 없다. 아무리 싸더라도 많이 생산해야 나라를 뺏기지 않는다.

문제는 수니와 시아파의 전면 대결 양상에서 에너지 생산국 가운데 기초체력이 약한 나라에서 부도사태가 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올해 신흥국 위기가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은 그 위기를 확대시키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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