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남성들이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봐야 할 이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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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남성들이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봐야 할 이유 몇 가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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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시청자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는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남성 관점에서 감정 이입하며 본 지점들...보이는것이 전부는 아닐터
'페니미즘' 드라마 그 이상의 무엇...과감한 '작가 정신'이 후반부에 빛 발하길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혹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중 지금 떠오르는 게 있습니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남성인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런데, 흠. 잠시 생각해 보니 뭔가 떠오르긴 한다.

어느 여인이 임신 소식을 듣고 기뻐하거나 혹은 당혹스러워하는 장면이, 배가 불러가는 장면이, 분만실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 갓 태어난 아기를 보고 감동하는 장면이, 그리고 육아 때문에 생활 리듬이 깨진 장면 등이 파편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영화나 드라마의 제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제목이 왜 생각나지 않을까. 혹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중 내게 인상적인 작품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런 작품들이 있었어도 남성인 내가 감정 이입할 수 없어서였을까.

그런 면에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제목처럼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해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소재로 버무린 드라마다. 계획된 8부작 중 4회가 끝난 현재 여성 시청자층을 중심으로 큰 반향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남성들이 봐도 좋을, 아니 남성들이 꼭 봐야 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사진=tvN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사진=tvN

남성들이 봐야 할 이유들

남성들이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를 봐야할 이유중 첫째는 여성들이 임신 후 겪는 변화와 희생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주인공 오현진(엄지원 분)은 대기업 계열 드럭스토어의 임원이다. 임원 중 가장 어리다지만 임산부로서는 나이가 좀 많다. 불혹의 그녀는 아이를 가졌다는 게 기쁘면서도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생기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임산부는 커피를 멀리해야 한다는 철칙이었다.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는 루틴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안 후 커피를 멀리한다. 임신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자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하게라도 마셔보고 싶다. 하지만 카페에서 주문을 시도할 때마다 주변의 염려 혹은 오지랖이 그녀의 주문을 가로막는다. 세상이 임산부에게 커피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코믹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커피를 그 씬의 소재로 썼지만 우리 사회에는 임산부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높다는 것을 풍자한다. 게다가 출산을 위해 곧 회사를 쉬어야 하는 ‘최연소 여성 임원’ 현진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표현하지 못할 불안이 있다. 나라의 법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이지만 자신의 공백을 타인에게 메꾸게 할까 봐 그녀는 더 열심히 뛴다. 해외 바이어 앞에서 양수가 터질 때까지.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노린 장면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많은 여성의 현실, 지금 어디에선가 분명 벌어질 법한 것을 보여준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출산과 출산을 전후해서 벌어지는 남성들은 잘 모를 사실적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보통 여성들의 진통과 출산을 연결되는 짧은 씬으로 만들고 곧장 아기와 가족이 나오는 일상 장면으로 전환하곤 한다. 그러나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출산과 출산을 전후해 벌어지는 일들을 거의 한 회에 걸쳐 묘사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저승사자’가 나오고 ‘삼도천’이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물론 아기가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의 고통을 묘사한 장면이었지만 그 고통의 척도를 적나라하게 이해시켜 준다. 그 순간의 엄마는 그 어떤 극강의 빌런도 이겨내는 강한 히어로였다.

그렇지만 출산의 고통을 견뎌낸 산모에게 닥친 신체의 변화는 영웅이었던 여성을 참담함에 빠지게 한다. 그 사례로 출산 후 산모들이 겪는 배뇨의 어려움을 묘사한다. 육체의 고통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는, 어쩌면 남성들은 모를 여성들의 지워버리고 싶은 지점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모성애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전에 나온 설명으로 모성애를 딱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숭고한 것이고 몇 개의 단어와 문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도 하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는 모성애를 ‘젖’으로 풍자한다. 모유냐 혹은 분유냐. 이렇게 아기에게 어떤 젖을 먹이느냐로 갈리는 것은 아기 엄마의 포지션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업 엄마냐 혹은 일하는 엄마냐.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드라마에서는 통렬히 지적한다. 밖에서 일하면 일하는 것이고 집에서 일하면 노는 것이냐고. 물론 이 드라마가 그런 질문의 답은 이런 것이야 라고 결론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선택은 항상 본인이 하는 것이기에.

이 드라마는 모성애를 은유하는 다른 방법으로 ‘태명’을 이용하기도 한다. 태명을 아기 엄마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딱풀이 엄마’ 혹은 ‘쑥쑥이 엄마’처럼. 누군가가 붙여주었을 이름으로 불리던 여인이 아기를 낳는 순간 그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갈 삶을 은유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 ‘산후조리원’에는 자기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엄마들도 나온다. 하지만 서울대 교수였든 대기업 임원이었든 여성의 몸에만 아기가 생기고 육아의 많은 부분을 여성이 짊어지는 지금의 한국 현실을 풍자한다. 그렇다면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페미니즘만을 담은 드라마일까.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장면. 사진=tvN 캡처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장면. 사진=tvN 캡처

아기와 엄마의 세계만을 다루지 않는 ‘산후조리원’

아마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넋 놓고 보다가는 매회 마지막 장면에서 흠칫할 것이다. 뭔가 사건의 냄새가 스멀스멀 풍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심각한 범죄로 옮겨가든, 해프닝 혹은 낚시로 끝나든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되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산모 간에 벌어지는 갈등은 물론 새로운 등장인물로 인한 갈등의 서막이 서서히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인공인 불혹의 산모에게는 그녀보다 일곱 살 어린 남편이 있는데 그에게도 어떤 비밀이 생긴 듯하다. ‘격정 출산 느와르’로 시작한 드라마가 점점 스릴러로 넘어가고 있다.

아마도 여성 서사만으로는 드라마 한 편을 끌고 가기 어려운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현실을 고려한 작가의 타협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동안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다룬 클리셰를 안전하게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과감하게 녹여낸 작가 정신이 드라마 후반부에 빛을 발하기를 응원한다.

위에서 질문한 페미니즘에 대한 답은 내가 알지 못한다. 잘 모르기도 하지만 ‘여기서 저기까지가 페미니즘입니다’라고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드라마 ‘산후조리원’으로 알 수 있었던 건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여성과 엄마의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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