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인포르메] 스페인 최초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마저 '역사 속으로'
상태바
[스페인 인포르메] 스페인 최초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마저 '역사 속으로'
  • 최지윤 스페인 마드리드 통신원
  • 승인 2020.11.11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7년 스페인 최초 3스타 식당 '살라카인' 폐업키로
코로나 사태로 식당 찾는 관광객 없어...코로나 두차례 대유행에 '폐쇄'조치
'꽃보다 할배' 찍은 새끼돼지요리 전문 '메손 데 칸디도'도 어려움
스페인 식당관련 GDP, 3880억 유로로 전체 GDP의 33% 달해..경제난 가중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신선하고 다양한 종류의 식자재가 많은 스페인은 미식의 나라로 유명하다.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현지인들도 많지만, 목요일 저녁부터는 유명 식당에 예약 없이는 가기 힘들 정도로 외식을 즐긴다.

스페인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로 인해 유명해진 식당이 많아지다보니, 소위 진정한 ‘맛집’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식당 중에 오랜 명성과 맛을 유지하는 곳도 많이 남아있지 않게 됐다.

스페인 최고의 식당 '살라카인'

사람마다 선호하는 맛과 음식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맛집을 선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프랑스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쉐린’에서 발행하는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에 오른 식당이 소위 ‘맛집’, 혹은 ‘좋은 식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 기준, 스페인에는 '미쉐린 스타(1~3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이 무려 214곳이나 되며, 특히 ‘요리가 매우 훌륭해서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할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고 칭해지는 별 세 개를 지닌 레스토랑은 11곳이나 있다.

스페인 유명인들이 즐겨 방문했던 '살라카인'. 단골이었던 스페인 언론인 마릴로 몬테로, 국민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의 전 부인인 이사벨 프라이슬러, 후안 카를로스 1세 내외, 엘레나 공주. 사진=elespanol.com
스페인 유명인들이 즐겨 방문했던 '살라카인'. 단골이었던 스페인 언론인 마릴로 몬테로, 국민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의 전 부인인 이사벨 프라이슬러, 후안 카를로스 1세 내외, 엘레나 공주. 사진=elespanol.com

지난주 스페인 언론은 1987년 스페인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한 마드리드의 ‘살라카인(Zalacain)’의 폐업 소식을 전했다. 살라카인은 1973년에 개업해 47년의 역사를 지닌 레스토랑으로, 단순히 미쉐린에 이름을 올린 것뿐만 아니라 스페인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의미 있는 장소이다.

시민들의 각종 기념일을 축하하는 곳이었던 것은 물론, 스페인 왕을 비롯한 많은 정·재계의 인물, 노벨상 수상자, 운동선수 및 연예인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식사하면서 옆 테이블에서 유명인을 마주치게 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코 정권이 막을 내린 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 최초 민주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은행 합병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 위치한 곳이었다.

때문에 스페인 '파인 다이닝'의 시초였던 이 레스토랑의 폐업은 수많은 음식 평론가와 미식가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다 주었다. 살라카인 관계자는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한 후 매우 신중하게 고려한 결정이었고, 식당을 폐쇄한 채 유지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이겨낼 수 없었음을 피력했다.

살라카인은 어떻게든 식당을 살려보기 위해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이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분위기, 직원들의 서비스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다이닝 서비스를 한낱 배달 음식으로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레스토랑에 방문하길 원했지만, 전쟁과 흡사한 현재 상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들 불안감 가중...요식업계 전무후무한 위기

스페인의 상징적인 장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시민들은 더욱 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체감할 정도로 현재 스페인 경제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특히 요식업계는 전무후무한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스페인 요식업 협회장인 호세 루이스는 "스페인은 레스토랑과 바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여서 요식업의 피해가 크다"며 "첫 국가 봉쇄 이후 약 5만개 이상의 식당과 바가 코로나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올 연말까지 9만여 개의 영업장이 폐업할 것으로 예측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스페인 정부는 최근 경제재건계획을 발표했지만, 정부 지원대상중 요식업계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계자들이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스페인 미식 사이트인 Gastroeconomy에 따르면, 2019년 스페인 농산물의 생산, 유통, 식당에서의 접대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3880억 유로(약 516조원)의 수입이 발생하며, 이는 GDP의 3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순수하게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인구는 120만 명이 넘으며, 스페인 관광객의 15%는 오로지 ‘미식 여행’을 위한 방문객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은 고사하고, 거의 재봉쇄 수준에 이른 스페인의 요식업계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들 지경이다.

3대째 식당을 운영 중인 칸디도 로페즈가 새끼 돼지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최지윤 통신원
3대째 식당을 운영 중인 칸디도 로페즈가 새끼 돼지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최지윤 통신원

새끼돼지요리로 유명한 식당 "100년동안 문닫은 적 없었는데..."

현재 코로나 사태의 경중에 따라 각 지역마다 식당 영업시간이 다르지만, 수도인 마드리드 지역은 밤 11시까지 영업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비교적 늦고, 식사 시간이 긴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구수에 대비해 확진자 수가 많은 카스티야이레온 지역은 지난주 금요일부터 아예 모든 레스토랑과 바가 폐쇄되었다. 1895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세고비아의 새끼돼지요리(코치니요) 전문점인 ‘메손 데 칸디도(Mesón de Cándido)’의 경영진 역시 역시 유례없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식당은 tvN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출연진이 방문해서 더욱 유명해진 곳으로, 많은 한국인이 방문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 식당을 운영하는 칸디도는 “지난 100년간 문을 닫은 적이 없는데 올해에는 벌써 두 차례에 걸쳐 오랜 기간 문을 닫았다”면서 새끼 돼지요리의 수요 역시 90% 감소했다고 전했다.

잠시 스페인의 봉쇄가 풀렸던 여름, 이 식당에 방문한 적이 있다. 모든 직원들은 한 동작이 끝날 때마다 수시로 손을 소독하고, 손님들이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도록 최상의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위생적인 식당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식당 관계자들이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카스티야이레온 지역에 속한 이 식당 역시 두 번째 코로나 유행에 또 한 번 식당 문을 강제로 닫게 됐다.

카스티야이레온 지역내 외식 업소에 대한 폐쇄조치가 내려지지 전에 테라스에서 식사 및 음료를 즐기는 시민들. 사진=최지윤 통신원
카스티야이레온 지역내 외식 업소에 대한 폐쇄조치가 내려지기 직전, 테라스에서 식사 및 음료를 즐기는 시민들. 사진=최지윤 통신원

스페인의 중심인 카스티야이레온 지역은 레스토랑, 카페, 바가 폐쇄된 첫 번째 주말을 보냈다. 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으나, 옷이나 물건을 파는 상점에는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식당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쇼핑몰, 직장, 학교 등은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기 때문에 외식 업소의 폐쇄가 확진자 감소에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스페인 정부의 규제 강화에 스페인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요식업 종사자들은 이제 한계에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