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한반도는 3세 경영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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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한반도는 3세 경영의 시대
  •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
  • 승인 2020.11.09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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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에 비유하면 김정은 위원장도 3세대 후계자
경제구조 혁신+새 국가 비전+신산업 개발 '핵심과제'
새 美대통령과 협상해야 하는 도전 '눈앞'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조선의 임금 세종대왕, 그리고 대부의 마이클 클레오네(알 파치노 役),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모두 셋째 아들이다. 그 업(業)의 종류는 다르지만 부모로부터 그 대업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요즘 한반도 전체가 3세 경영의 시대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세종대왕도 이성계 이방원에 이은 3세 경영인이었지만, 최근 들어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많은 대기업에서 3세 경영자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또한 3세대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이다.

3세 경영의 시대가 열리다

한반도에서 3세 경영인들이 대거 등장하기까지 하나의 역사적 흐름이 보인다. 해방 전후 시기에 창업의 확고한 기반을 다진 1세대에 이어, 2세 경영인들이 2000년대 초반까지의 산업고도화 시기에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세계적인 대기업의 면모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에는 3세대 젊은 후계자들이, 글로벌하게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경영 과제들을 이어받게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등장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방 전후 할아버지의 확고한 창업 기반과 1990년대 후반의 대경제 위기 및 체제 불안정을 무사히 넘긴 아버지의 성과와 함께, 2010년대 초에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취약한 경제 및 안보 상황이라는 유산을 3세대 후계자로서 그대로 물려 받았다. 

3세대 경영인들의 승계에 대한 논란과 비판도 많다.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유사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고 중세 봉건왕조에서 본 듯하다고 하여 세습이라고 비판되기도 하며, 승계 과정의 불법 내지 탈법이 지적되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역량과 성과의 결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다.

다른 한편, 이들 3세 경영인들은 고도성장기의 2세들 보다 훨씬 예측과 대응이 어려운 시대, 즉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전개되는 무한경쟁의 거대한 파도에 직면하고 있다.

3세 경영의 관점에서 북한의 최근 변화를 보면

제3세대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끌어가는 북한의 변화를 살펴 보면, 그 내용이 쉽게 설명되어 이해하기 수월해지는 측면이 많다.

일반적으로 재벌그룹 총수 경영인들은 절대적 권한을 가지며 그 지위가 20년에서 3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유지된다. 이들은 자신만의 경영 성과와 전략으로 확연히 평가받기 때문에, 성과 결과에 대한 부담 또한 절대적으로 크다. 결과적으로 핵심적인 것은 기존의 사업과 조직이 가진 강점을 유지 강화하되,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합한 신사업 포트폴리오와 혁신적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승계 절차를 원만히 마무리하고 인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기존 체제의 강점을 최대한 유지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20~30년에 걸친 장기적 전망을 고려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적 과제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혁신함과 동시에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국가 비전과 신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12년에 3세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 전략들을 아래와 같이 추구하여 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적 세대교체와 리더십 체계의 변화

첫째, 인적 세대교체 및 쇄신이다. 우리에게는 잦은 숙청으로도 비추어지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인적 교체는 아버지 세대의 구시대 인물들을 새로운 젊은 엘리트로 대폭 교체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2세 및 3세 경영의 등장 초기에 나타나는 주요 핵심 경영층 교체와 새로운 리더십 체계의 수립 등 인적 세대교체 조치의 일환이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통치 체계와 소통 방식의 변화다.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체제위기 하에 이루어진 ‘선군정치’에 입각한 ‘군(軍)’ 중심의 체계를,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 원칙에 부합하는 ‘당(黨)’ 중심의 체계로 되돌려 놓았다. 또한 자신이 우상화를 통한 무오류의 신격화된 모습이 아니라 인민 생활의 어려움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지도자의 모습으로 인민들에게 인식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잘못도 인정하고 눈물도 보일 줄 아는 진정성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경제구조 혁신과 과학기술 중시 정책

셋째, 경제 정책의 혁신이다. 이미 확산된 경제 전반의 시장화를 용인하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한편, 201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 기업의 경영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대폭 보장하는 개혁적 경제활성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강력한 경제 제재 속에서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혁신들은, 향후 경제 개방과 투자 유치가 본격화될 경우, 북한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과학기술과 인재양성 정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민과학인재화’라는 구호 하에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과학기술과 경제의 일체화’라고 하여 과학기술을 산업 현장에 접목 및 확산시키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및 디지털화 등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그 성과에 따라서 향후 경제발전의 속도와 성패가 좌우된다는 절박한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부인 리설주와 김정은 위원장
2014년 5월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 사진=노동신문/연합뉴스

대외관계 정상화라는 도전적 사활적 과제

한편, 3세 경영인 김정은 위원장이 당면한 과제로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대외 관계의 정상화와 이를 통한 경제개발 동력의 확보다. 이미 핵무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비핵화 내지 단계적 군축과 동시에, 체제 안정과 경제 제재 해제를 달성하기 위한 협상은 상당히 어렵고 도전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2018년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 지도자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매우 적극적인 대외관계 개선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2018년부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으로 직접 이동하여 협상하였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중국에서 4회 평양에서 1회 만났고, 러시아, 베트남, 싱가포르의 정상들과도 상대 국가를 직접 방문하여 정상회담하는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가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경제 제재, 코로나 위기,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의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네 번째 어려움, 즉 인권과 동맹을 중시하고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을 구사하는 또 다른 스타일의 미국 대통령과 협상하게 될 것이다. 그는 새로운 방식의 협상에서 체제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앞당기는 창의적인 협상 결과를 과연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 2021년 한반도에 다시 전세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젊은 3세 경영인 김정은 위원장의 도전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 필자인 박기찬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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