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양희’ 인터뷰집 ‘다큐하는 마음’...놓치고 싶지 않은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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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양희’ 인터뷰집 ‘다큐하는 마음’...놓치고 싶지 않은 얘기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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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명의’,‘노무현입니다’에 작가 양희 인터뷰집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는 이들...선한 힘에 관한 아홉 개의 기록
타인의 인생 통해 자신을 바라보면 못 본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연합뉴스 제작진들이 중국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연합뉴스 제작진들이 중국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논픽션이 주는 힘이 있다. 허구를 바탕으로 쓰인 문학작품은 읽는 이에게 새롭게 창조된 세상을 맛보게 하는 일종의 경험치를 올려준다. 반면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문학작품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데서 오는 감동이나 동조 혹은 아픔이나 슬픔 같은 감정들을 끌어낸다.

영화에도 논픽션이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드라마를 논픽션으로 볼 수 있고 실제 인물이나 역사 속의 사건 혹은 자연을 소재로 그린 다큐멘타리를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인물이나 지역에 얽힌 이야기 같은 논픽션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지금은 종영한 KBS의 ‘다큐3일’을 좋아한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히스토리 채널’처럼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오는 케이블에 채널을 고정하곤 한다. 이 채널들에서 세계대전의 이면을 다룬 역사물이나 동물이나 식물의 생태 혹은 환경을 다룬 자연물 다큐멘터리들을 즐겨 본다. 이런 나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하는 마음.제철소 펴냄.
다큐하는 마음. 제철소 펴냄.

‘다큐하는 마음’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는 각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각자의 부분에서 다큐를 바라보는 시각과 다큐를 대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 담긴 상징성이 매우 크다. 물론 다 읽고 난 다음에 든 생각이다.

제목을 보면 명사 ‘다큐’에 동사 ‘하다’를 붙여서 ‘다큐하는’이라는 새로운 동사를 만들었다. 그 뒤에 붙은 ‘마음’은 사람의 어떤 정신적 상태만 의미하지 않는다. 다큐와 관련된 다양한 행위 즉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 책을 낸 출판사는 ‘ㅇㅇ하는 마음’이라는 시리즈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출판하는 마음’, ‘문학하는 마음’, ‘미술하는 마음’ 등의 시리즈를 냈다. 이 책들은 모두 제목이 속한 장르의 내부자가 작가가 되어 다른 내부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인터뷰집이다.

‘다큐하는 마음’은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는 각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차례대로 프로듀서, 감독, 촬영감독, 편집감독, 비평가, 홍보마케터, 수입 배급자, 영화제 스태프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이들을 인터뷰하고 책으로 다듬은 사람은 다큐멘터리 작가 ‘양희’이다. 그녀는 나도 즐겨 보는 EBS의 의학 다큐멘터리 ‘명의’를 집필했고 영화관에서 눈물 쏟으며 봤던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에 작가로 참여했다.

작가 양희는 프로듀서, 감독, 편집감독, 비평가, 홍보마케터, 영화제 스태프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묻고 듣고 기록했다.사진=제철소
작가 양희는 프로듀서, 감독, 편집감독, 비평가, 홍보마케터, 영화제 스태프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묻고 듣고 기록했다.사진=제철소

여기서 난 잠시 의문에 빠졌다. 다큐멘터리에 왜 작가가 있지 하는. 다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아닌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하는데 왜 작가가 필요할까.

사실 다큐멘터리는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촬영되고 편집, 재구성된” 영화이다. 다시 말해서 다큐는 공동의 작업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다큐하는 마음’은 그런 과정들을 내부자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담은 책이다.

‘다큐하는 마음’을 읽으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다양한 정의(definition)를 알 수 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는 사실 “만들어지는” 것,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창조적 처리”라는 것, 그리고 “공동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극장에서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을 닦느라 영화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객석에 머문 경험이 있다. 그때 든 느낌은 다큐에도 참여하는 스태프들이 많구나 하는 거였다.

‘다큐하는 마음’은 보통 감독의 작품으로 알려지는 다큐멘터리가 사실은 많은 부분에 스태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 때문에 감독 혼자 여러 스태프 몫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다.

저자 양희가 작가로 참여했던 영화 '노무현입니다'.사진=네이버영화
저자 양희가 작가로 참여했던 영화 '노무현입니다'.사진=네이버영화

이 책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감독은 물론 프로듀서, 촬영감독, 편집감독 그리고 비평가, 홍보마케터, 배급업자, 영화제 스태프 등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세상에 선보이는 다방면의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 분야와 관련한 장비나 트렌드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다큐를 대하는 마음들이 흘러나온다.

그러한 마음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그들의 세상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그런 관심과 애정이 2020년 제29회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과도 같은 작품을 만들게 했다. 혹은 ‘노무현입니다’와 같은 작품도. 그들은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배워 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궁금했어요. 한국에 대해. 그러다 보니 이렇게 알아가는 세상이 굉장히 좋고 고마워요. (중략) 다큐를 보면 내가 겪는 현실 너머를 보게 돼서 좋아요. 다큐를 보면 주어진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자기가 본 것을 자기 방식대로 보여주거든요. 그것을 보면서 현실을 배우고 호기심을 채우게 되죠. (181쪽)

때로 우리는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곤 한다. 머물 던 곳을 떠나면 그곳의 현상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타인의 인생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면 더 큰 세상 혹은 못 본 세상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듯도 싶었다. ‘다큐하는 마음’을 본 후에 든 생각이다.

각 인터뷰 말미에는 그 사람이 추천하는 다큐멘터리도 소개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주옥같은 다큐멘터리가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다큐가 많이 제작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개하거나 상영해주는 프로그램이나 극장이 부족한 현실도 꼬집는다.

‘다큐하는 마음’을 읽다가 아는 얼굴이 나와서 반가웠다. 오래전 일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이다. 당시 첫인상은 전문가답다는 거였는데 실제 업무 진행도 완전 그랬다. 진행 과정이 매끄러웠고 그 시작과 끝이 확실했다. 인터뷰로 만난 그는 그때도 전문가였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다양성 영화의 한 부분을 대표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마침내 붙잡고야 마는 다큐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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