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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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황헌
  • 승인 2015.12.31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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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경쾌하게, 보다 철없이, 보다 덜 심각하게 살겠다”

(황헌 mbc 앵커의 글입니다. /편집자주)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은 미국 어느 시골의 한 할머니가 85세 되던 해에 쓴 한 편의 시 제목입니다. 보다 경쾌하게, 보다 철없이, 보다 덜 심각하게 살 거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행도 많이 하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질 거라고도 했습니다. 이 시는 마흔 살에 파킨슨병 진단 받고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의사이자 작가인 김혜남씨의 번역으로 예쁜 책이 돼서 나왔습니다.
2015년은 이제 오늘 하루가 지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더 많은 데이지꽃을 따겠다”는 마지막 시구처럼 지금이 가장 소중함을 공유하면서 올해 마지막 날 뉴스의 광장을 닫겠습니다. 저는 앵커 황헌이었습니다. 새해 새아침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by Nadine Stair)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I’d dare to make more mistakes next time. I'd relax, I’d limber up. I would be sillier than I have been on this trip. I would take fewer things seriously. I would take more chances. I would take more trips. I would climb more mountains and swim more rivers. I would eat more ice cream and less beans. I would perhaps have more actual troubles, but I’d have fewer imaginary ones.

You see, I’m one of those people who live sensibly and anely hour after hour, day after day. Oh, I’ve had my moments, and if I had it to do over again, I’d more of them. In fact, I’d try to have nothing else. Just moments, one after another, instead of living so many years ahead of each day. I’ve been one of those persons who never goes anywhere without a thermometer, a hotwater bottle, a raincoat and a parachute. If I had it to do again, I would travel lighter than I have.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I would start barefoot earlier in the spring and stay that way later in the fall. I would go to more dances. I would ride more merry-go-rounds. I wold pick more daisies.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음번엔 과감한 실수를 더 많이 해볼 거야.

긴장을 풀고 경쾌하게 살며

이번 여행에서보다 더 철없이 굴고,

이젠 모든 것에 덜 심각해질 거야.

좀 더 많은 기회를 만들겠어.

좀 더 많은 여행을 하겠어.

좀 더 많은 산에 오르고

좀 더 많은 강에서 수영도 하겠어.

콩을 덜 먹고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먹을 거야.

아마도 현실적 문제들이 더 많이 생기겠지.

그러나 상상의 문제로 인한 괴로움은 훨씬 적을 거야.

 

난 매일 매순간을 바르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지.

물론 좋을 때도 있었어.

그러나 나보고 다시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거야.

단지 그것뿐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겠어.

각각의 날들을 앞당겨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며 살아온 날들 대신

매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나가겠어.

난 레인코트나 체온계나 보온 물통과 낙하산 없이는

어디에도 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 중 하나였지.

만약 나보고 다시 해보라 한다면

난 이전에 그랬던 것보다 더 가볍게 여행을 할 거야.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는 봄이 오면 일찍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가을 늦게까지 맨발로 지낼 거야.

춤추러 더 많이 가고

회전목마도 더 많이 타며,

더 많은 데이지 꽃을 따겠어.

만약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 한 편의 詩가 내 나이 50대 중후반에 내게 다가온 건 그 자체로 선물이요 행운이다. 아마도 70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평범한 언어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詩語가 되어 다가온다. 그랬다. 늘 긴장하고 무겁고 실수 안 저지르려고 애쓰며 살았다. 무엇을 위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무조건 그렇게 살게 만드는 이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들 그랬다. 이제는 장성한 두 아들에게도 그렇게 사는 것만이 성실하고 성공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 압박했다. 왜 나 스스로 철없이 굴면 안 된다고 여겼던가.

 

아름다운 산과 멋진 강을 유유자적하는 여유는 왜 내 것은 아니었던가. 건강에 좋다는 콩으로 만든 음식에 무엇 때문에 그리 집착했던가. 아이스크림은 고지방이고 성인병 부른다며 피했던 부자유와 부자연스러움에서 왜 그리 헤어나지 못하는 경직된 삶을 살았던가.

 

아직 닥치지도 않은 오지도 않을 걱정을 왜 그리도 조바심 내며 당겨서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며 살아야만 했던가. 준비가 좀 부족하면 또 어떤가. 그런데도 늘 준비 부족한 사람을 못 마땅히 여겼고 그것에 얽매여 넓은 보폭조차 스스로 줄여가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은 내게 대체 뭘 가져다 준 걸까. 맨발로 꽃이 뒤덮인 들판에 나가는 일은 왜 내 게 아닌 어리석은 자들의 것이라 여겼는가. 회전목마 타는 마음, 곧 순수의 세계를 난 왜 그리도 일찌감치 벗어던지고 여전히 회전목마 타는 순수한 타인을 가벼이 보며 웃었던가.

 

나딘 스테어 할머니는 이렇게 내가 어쩌면 80대 중반이 될 30년 후에 깨우칠 삶의 가치를 가슴 저리게 와 닿게 만들었을까. 할머니는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가치를 지키겠다는 시로 우리에게 울림을 주셨다. 어차피 삶은 고난과 고통, 문제로 점철된다. 그 누가 그런 데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그것을 하고 있느냐이다.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생을 즐기고 있는가 하는 거다. 무엇을 소유하느냐 보다 얼마나 즐거운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스테어 할머니는 수줍은 어린아이들도 쓰는 언어들로 이렇게 힘줘 전한 셈이다.

회전목마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맨발로 상징되는 순수와 자연의 그 소중한 가치는 내게서 멀어져갔었다. 아니 나 스스로 포기하고 외면하고 망각하고 살아왔다. 앞으로라고 뭐 그리 확 달라질지는 모른다. 다만 오늘 2015년의 마지막에 나딘 스테어 할머니의 깨우침을 고리삼아 그간 잊고 지내온 그리고 스스로 버려두었던 삶의 반딧불 같은 반짝이는 가치를 되살려보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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