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④: 선거불복과 선거범죄소송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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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④: 선거불복과 선거범죄소송의 역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11.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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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㉜: 공화제와 사법(4)
트럼프의 선거불복 위험성...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 확산시켜
민주공화제의 근간인 선거, 유권자의 선택을 최고가치로 삼아야
일반 형사소송으로 당선무효 남발하는 선거법...선거불복 제도화 위험있어
검찰과 법원의 의사로 유권자의 선택 대체...'예외적 상황'에만 정당화 가능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연방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의 관심사가 적지 않지만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우편투표의 문제점등을 들어 선거에 불복할 것인지도 그 중 하나이다. 선거불복은 정치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를 자처해온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권위주의의 유산인 '선거불복'

사실 선거불복을 잘 용납하지 않는 것은 한국민주화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관권선거와 금권선거로 얼룩진 현대정치사는 선거불복을 일상화하였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국민대표의 선출을 가로 막는 선거제도와 정치현실 때문에 선거는 장식으로 전락하고 국민의 마음속에 선거는 불복의 대상이 되기가 일쑤였다.

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한 민주화는 바로 장식이 되어버린 국민의 대표선택권을 바로잡는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핵심과제로 하였다. 이후 30여년이 흐르면서 선거의 공정성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자 이제 국민의 선택은 최고의 가치로 확고히 자리잡고 그 결정에 불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철칙이 정립되어 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매번 선거부정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지난 총선을 두고서도 불복절차가 진행 중에 있지만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헌법적 의의를 소홀히 하는 제도나 문화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가 깊다. 대표적인 것인 선거범죄를 빌미로 선거불복을 모든 선거마다 반복하는 선거법과 선거풍토이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범죄로 '당선무효' 가능한 선거법

공직선거법 제264조는 “당선인이 당해 선거에 있어 이 법에 규정된 죄 또는 「정치자금법」 제49조의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는 그 당선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공직선거법상 당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를 저질렀다는 사유로 지사직을 박탈당할 수 있는 굴레를 벗어났지만 지난 제21대 총선 때의 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국회의원 27명이 기소되었다. 전체 국회의원의 10분의 1에 육박하는 숫자다. 이들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제20대 총선의 경우 33명의 당선자가 기소되어 7명이 최종적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런 현실은 단순논리로 보면 뭐가 문제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고 당연해 보인다. 선거는 공정해야 하고 불공정을 초래할 수 있는 선거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 대가로 선거의 목적이자 결과인 당선의 효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상식에 부합한다. 오히려 부정을 저지른 당선인을 국민대표로 계속 두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정서가 만연해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2심 선고 공판이 이달6일 서울고검에서 열린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지사직을 잃게 된다. 사진=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댓글사건'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이달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다. 공직선거법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지사직을 잃게 되고 도정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사진= 연합뉴스

사법적 당선무효제도의 '반민주적 위험성'

그러나 선거의 목적과 기능을 한 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종류의 선거법을 위반했는지에 따라 당선무효형의 정당성이 그렇게 자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이재명지사 사건처럼 허위사실공표죄로 당선무효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선거과정에서의 공방이 당선무효형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의사소통을 억압하여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끊임없이 오류투성이 통계나 사실관계를 남발하여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선후보라면 유권자의 실제 선택과는 무관하게 사소한 허위사실 공표만으로도 당선이 무효가 될 수 있다면 쉽게 납득이 가겠는가?

무엇보다 법정 기준인 벌금 100만원에 해당하는 죄질의 범죄에 작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천만명의 정치적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과연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선거의 목적과 기능에 부합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이재명 지사건의 경우에 백억원이 넘게 소요되는 선거에서 천만명을 훌쩍 넘는 유권자의 결정이 번복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는데 그 원인이 된 범죄행위의 죄질은 불과 벌금 몇백만원 수준이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야 미국의 사안이니까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별론으로 치더라도, 2022년 대통령 선거도 벌금 100만원으로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데도 선뜻 공감할 수 있을까?

벌금이 아무리 적더라도 범죄를 저질러 당선되었으면 그 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접근은 과도한 근본주의적 사고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흠결, 아무리 작은 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접근은 원리적으로 선명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1차원적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선거에서의 투표과정은 여러 후보를 대상으로 유권자 국민이 무수히 많은 변수들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리는 과정이다. 여러 고려대상 중에 후보자가 거짓말을 했는지 여부도 포함될 것이다. 거짓말을 한 후보를 선택했다고 그 유권자의 결정이 부도덕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이러한 복합적 결단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거짓말 여부도 경우에 따라서는 분명히 가부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고 이번 이재명 지사 사건의 경우도 그런 류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나 법원이 자의적으로 선거결과에 개입하여 당선무효 여부를 일일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 선거의 민주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인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실제로 거짓말을 한 것이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의 내용이란 것이 어느 정도로 죄질이 나쁜 것인지 천차만별일 것이다. 거짓말을 하기만 하면 어떤 경우라도 당선이 무효가 되어야 하는가? 거짓말의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은 상대후보들이 그 보다 더 못마땅한 경력과 자질을 가졌다고 판단하면 투표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혈연, 학연, 지연 등 개인적 친소관계에 구애받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할 심부름꾼을 뽑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결정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어서는 안된다. 선거범죄를 저질렀다고 함부로 당선무효를 선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유권자의 선택을 검사나 판사의 선택으로 갈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선거쟁송 대신 '일반 형사소송'으로 당선무효? 법치주의 정신 '일탈'하는 것

사실 민주공화체제에서는 선거불복이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횡행하지 못하도록 선거의 효력과 관련하여서는 특별한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선거쟁송을 특별절차로 둔다. 그 정치적, 헌법적 무게를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제1심이자 최종심이 되는 단심제를 택한다. 또한 선거결과의 번복은 민주공화체제의 민주적 정당성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선거쟁송은 선거후 적절한 시간 범위 안에 신속히 종결되도록 한다. 공직선거법도 그런 취지를 담아 선거쟁송을 입법화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당선무효의 효과를 가지는 소송은 이러한 특별절차인 선거쟁송이 아니라 일반적인 형사범죄절차에 따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심급제를 다 거쳐야 하고, 소송기간도 1~2년을 끌게 되는 것은 보통이다. 그러다보니 당선자는 상당 기간 공직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실제로 선거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운이 좋으면 공직 임기를 상당기간 채운 후 당선무효의 징벌을 맞게 된다. 운이 좋아 벌금 100만원을 넘기지 않으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된다. 이처럼 공무가 온전히 수행되지 못하는 조건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민주공화체제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유권자가 정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표현상의 공방을 이유로 이런 절차를 선거 때마다 반복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특별절차에 따른 선거쟁송이 아니라 일반 형사소송에서 선거의 효력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맡기는 것은 ‘정치의 사법화’에 따른 폐해를 낳은 대표적 경우다. 이 절차를 악용하면 국민대표들이 검찰이나 법원의 눈치를 보는 일이 생긴다. 예컨대 선거가 생명인 국회의원들이 섣부르게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에 나섰다가는 재수 없으면 다음 선거 때 '괘씸죄'를 피해가기 힘들 수 있다.

정치인들이 마음껏 거짓말할 수 있게 하고 공직도 누리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의심스러울 때 검찰이나 법원의 판단이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을 검찰이나 법원의 판단이 대신할 수 있는 경우는 오로지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너무도 명백하고도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는 예외적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벌금 100만원을 기준으로 당선무효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현행 선거법은 일반 형사소송으로 선거쟁송을 대신하게 하고 유권자의 '주권적 결단'을 검찰과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 반민주적 역설을 구조화하고 있다. 선거법은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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