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사상가 이건희 ③ 그의 마지막 당부는 "마음껏 도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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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상가 이건희 ③ 그의 마지막 당부는 "마음껏 도전하십시오"
  •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전 서울경제신문 산업부장)
  • 승인 2020.10.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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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말, 말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끌어내
18만 삼성임직원들을 세계 초일류 기업' 한 방향으로
2014년 마지막 신년사 "자유롭게 마음껏 도전하고 품격과 가치를 높여라"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

[박원배 어린이경제신문 대표(전 서울경제 산업부장)]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삼성인의 용어’라는 책을 발행한 것은 신경영 선언 5개월이 지난 1993년 11월 중순이다.

이 책은 이 회장이 연초부터 강조한 여러 가지 말을 알기쉽게 정리한 것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을 실천하려면 삼성인이 ‘한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한 방향으로 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는게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이 회장의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상징과 비유가 강하다. 이 회장은 사장단과 임원회의에서조차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을 본다”는 말을 했다. 신경영의 핵심과 상징으로 자리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가 이에 해당한다. 이 회장이 말한 마누라와 자식은 실제 가족이 아니라 ‘핵심’, 이 회장 식 표현으로는 ‘업의 본질’이다.

삼성은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중요한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공감과 실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삼성에서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했다.
 
이 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 신년사나 굵직한 행사, 93년의 잇단 회의, 신경영 10주년 등 중요한 대목마다 내놓은 ‘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회장은 말은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말을 통해 삼성인을 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우리 역사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세계 일류’를 우리 눈앞에 현실화시켰다. 그 출발 지점인 신경영, 이것을 위해 쏟아낸 말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그의 말은 공감과 이해를 얻으면서 커다란 힘이 됐다.

이 회장은 신경영을 위해 ‘국내 일류’인 삼성이 얼마나 큰 위기에 빠져있는지 확인시켰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제시했다. 18만 임직원은 그의 뜻에 동조했고, 삼성은 아무도 누려보지 못한 ‘세계 초일류기업’의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의 리더십’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분열은 더 깊어지고 있다.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하며 ‘나부터 변하자’는 자각, 우리도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은 여전히 2, 3류를 맴돌고 있는 우리 정치, 사회에 시사하는 메시지가 크고, 무겁다.
 
멀리는 27년 전인 1993년부터, 그가 떠난 지금,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도 그의 말이 여전히 힘을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회장이 여러 경로로 쏟아낸 말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전하려는게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그의 타계에 대한 작은 헌사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항상 '업의 본질'을 보려했다. 쓰러지기 1년여전인 2013년 5월 삼성그룹사옥에 출근한 이 회장의 눈이 빛난다. 사진= 연합뉴스

■ 오그라질과 망쪼

원말은 ‘오그라지다’. 이 회장은 회의 때 마다 이 말을 자주썼다.

부정적, 방어적, 남의 뒷다리 잡는 태도를 뜻한다. 진취적이고 도전을 통해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라는 뜻. “이런 오그라질 일이 있는가”는 이 회장의 격한 감정 표현 법이었다. 비슷한 표현으로 자주 사용한 말이 ‘망쪼’다. 원말은 망조(亡兆 ), ‘망할 조짐’이다.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면 기업도 나라도 ‘망쪼’가 든다. 같은 실수를 되풀하면 ‘망쪼’다.”

■ 암

삼성의 현실을 강조할 때 가장 자주 쓴 용어다. 이 회장은 암에 걸려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가 좋아했던 형(이창희)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은 공포였다.

“삼성전자는 암 2기다. 수술해야 한다.”
“암은 진화한다.”
“불량은 기업의 암적 존재이며, 경영의 적이다.”

암은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다. 극복을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타이밍’.

“암에 걸려도 빨리 손 쓰면 정상인과 똑같이 생활 수 있다. 초기에 발견하면 95%의 완치율을 보인다.”

■ 뒷다리

사람은 양다리지만 뒷다리는 없다. 물론 앞다리도 없다.

그런데 이 회장은 “뒷다리 잡지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없는 뒷다리가 생길 때가 있다.
사람이 움직일 때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이 뭔가 하려고 나설 때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회장은 개인과 집단이기주의를 대표적인 뒷다리로 규정했다.

“뛸 사람은 뛰고, 걸을 사람은 걷고, 걷지도 못할 사람은 앉아 있으면 된다. 다만 개인의 능력과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잠시 앉아 쉬더라도 남이 뛰고 걷는 것을 방해하거나, 지나가는 길에 드러눕는 뒷다리 잡기는 하지 말자.”

■ 보잉 747론

이 회장의 말이 한 방송국의 특집 프로그램으로 전파를 탄 적이 있다. 그 때 화제가 됐던 용어가 ‘보잉 747론’이다.

보잉 747은 출발부터 몇 분안에 1만m 이상의 높이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결정되는 위기 상황이다.

안전과 생존을 위해 짧은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위기를 넘기면 아주 평안한 가운데 빨리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목표를 향해 초기의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은 용어다.  

■ 골프와 럭비 그리고 야구

이 회장는 스포츠 덕후다. 일부에서는 고등학교 때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면서 레슬링과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레슬링 팀에 소속은 됐었지만 가끔 나가는 정도였다고. 어쨌든 삼성은 이 회장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다수의 스포츠팀을 운영했고, 주요 경기단체장을 맡았다. 이 회장은 스포츠에 경영철학을 담아서 표출했다.

그는 골프, 럭비, 야구를 삼성의 비전을 달성하는 ’삼성 3대 스포츠’로 표현했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다. 자율경영과 맥을 같이한다. 골프는 에티켓의 집합체다. 이 회장은 “골프의 룰북은 500개가 넘는다”며 에티켓과 연관지었다.

럭비는 눈과 비가 오고, 반 홍수가 나도 중지하지 않는 경기다. 강력한 투지, 단결력,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는 럭비는 삼성인에게 필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럭비와 야구는 전략전술을 쓰면서 팀플레이도 하고, 스타플레이어도 있어야 한다. 여기에 감독과 전문화된 코치가 붙고, 단체운동이면서 개인플레이를 해야 하고, 명령을 받으면서,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기업 경영과 비슷하다.”

■ 명동론

이 회장에게 있어 명동은 ‘이상적인 복합화의 공간’이다.

이 회장의 경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인 복합화는 한마디로 ‘한 곳으로 모아라’다. 모으면 효율이 높아지고,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병원이다. 그때 까지 병원은 환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환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는 곳이 병원이다. 문병 오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게 바로 복합화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문병 오는 사람도 한번 오면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병문안 뿐 아니라 쇼핑도 하게 하면 서로 좋다. 이게 명동땅의 원리다.”

삼성물산이 시공한 두바이 칼라피 버즈. 사진= 삼성
삼성물산이 지난 2009년12월 완공했던 당시 세계 최고높이 163층의 두바이 부르자 칼리파. 이 회장이 시공중 건설현장을 방문해 임직원들과 환호를 올리고 있다. 사진= 삼성

 

■ 흑백론

흰색의 반대는 검은색이다. 흰색이 아닌 것에는 검은색 뿐 아니라 노란색, 빨간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회장은 흑백론을 통해 극단적 사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흰색이 아니라고 해서 검은색으로만 생각하는 사고, 모든 것을 극과 극으로 대비해서 보려는 흑백론에서 벗어나야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국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이렇듯, 그는 회장 취임(1987년 12월 1일) 이후 삼성과 우리 사회, 국가를 위해 많은 ‘말’을 쏟아냈다. 워낙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 말로 주목을 끈 적은 많지 않다.

그러다 1993년 신경영을 계기로 그의 말은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삼성이 세계 시장에 영향을 주는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그의 말에는 무게가 더해졌다. 되돌아 보면 매년 신년사에서, 개인과 기업의 위기와 축제 마다 그는 ‘주목할 말’을 했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끝으로 회장 취임식(1987년)과 마지막 신년사(2014년)로 그가 우리에게 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 1987년 취임사

“나는 ‘삼성 제2의 창업’의 선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소임을 수행할 것입니다.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첨단 기술산업 분야를 더욱 넓히고, 해외사업의 활성화로 그룹의 국제화를 가속시킬 것이며,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교육시키며 그들에게 최선의 인간관계와 최고의 능률이 보장되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의 제2 창업에 찬란한 영광을 위해 힘차게 전진합시다.“

■ 2014년 1월 2일 마지막 신년사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립시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 냅시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합니다.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 신년사를 내놓은지 4개월 지난 2014년 5월, 이 회장은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6년5개월만인 2020년 10월 25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공식적인 ‘최후의 말’이 된 2014년 신년사는 삼성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외침으로 다가온다.

“여러분,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도전하십시오. 지난 20년간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루었듯이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나갑시다. 우리의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펼치고 있을 고인의 명복을 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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