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한국 사회의 민낯은..소설가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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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한국 사회의 민낯은..소설가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8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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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논픽션
문학공모전 수상자 출신 저자, 직접 취재한 문학공모전과 한국 공채 문화의 현실과 대안
공모전, 공채, 대입, 시험 결과가 사회적 신분 되는 그런 현실,,,시험만 통과하면 끝일까
어제(17일) 치르진 2020년도 지방공무원 7급 필기시험에서 응시생들이 서대문구 모 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 들어가고 있다. 이번 7급 공개·경력경쟁 시험에는 3만9397명이 지원, 평균 경쟁률이 69.73대 1 였다고 행정안전부가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어제(17일) 치른 2020년도 지방공무원 7급 필기시험에서 응시생들이 서대문구 모 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 들어가고 있다. 이번 7급 공개·경력경쟁 시험에는 3만9397명이 지원, 평균 경쟁률이 69.73대 1 였다고 행정안전부가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그 어느 때보다 공정이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공정한 게 당연해야 할 사회에서 공정을 키워드로 한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험에 목을 매는 걸까. 우리나라는 한날한시에 사람들을 한데 모아 같은 문제를 풀게 해서 점수 높은 순으로 뽑는 시험이 많다. 그런 절차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청소년부터 청년들은 시험에 익숙하다. 202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가 49만 3천 명이 넘는다.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관심을 두는 국가직 9급 공무원 선발시험에 2020년에만 18만 5천 명이 넘게 응시했다. 이 두 시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응시하는 시험 순위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그럼 3위는 어떤 시험일까. 소설가 장강명의 르포 ‘당선, 합격, 계급’에 의하면 “2015년까지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Global Samsung Aptitude Test)는 응시자 기준으로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시험”이었다고 한다. 약 10만 명이 넘었다고.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은 문학공모전이라는 제도와 공개채용이라는 제도를 밀착 취재해서 사회가 사람을 발탁하는 입시와 공채 시스템의 기원과 한계를 분석한 책이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발하는 논픽션이기도 하다.

'당선,합격,계급' 민음사 펴냄.
'당선,합격,계급' 민음사 펴냄.

저자 장강명은 기자 출신 소설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사회성 짙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티프로 한 ‘댓글부대’, 언론에서 지칭한 헬조선 세대의 탈출기 ‘한국이 싫어서’, 통일 이후 한국 사회를 그린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시의성 높고 현실 감각 짙은 작품들로 장강명은 한국 소설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장강명은 또한 ‘합격의 신’이다. 동아일보 기자가 되기 전에 그는 대기업 건설회사와 삼성에 공채로 합격한 이력이 있다. 또한 ‘당선의 신’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가로서 4대 문학상을 연이어 받았다. 이렇게 공채 시험과 문학공모전을 섭렵하며 저자는 ‘당선’과 ‘합격’이라는 제도가 사회적 신분으로 굳어지며 ‘계급화’되는 메커니즘을 발견한다.

내가 이 취재를 통해 보려 하는 것은 한국 사회였다. 공채라는 특이한 제도, ‘간판’에 대한 집착, 서열 문화, 그리고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시스템이 어떻게 새로운 좌절을 낳게 됐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 (22쪽)

장강명은 문학공모전이나 각종 공채 시험이나 메커니즘은 같다고 본다. 공모전도 공채의 일종이고 등단도 발탁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모전’이라는 단어를 ‘공채’로 바꾸어 보면 그 공통점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소설가 지망생뿐 아니라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소설가들은 출판사나 문예지가 주는 문학상 공모에 목을 맨다. 몇천만 원에서 때로는 억대를 상금으로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선작은 바로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점이 소설가들에게는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소설가들에게는 출판된 책이 그 사람의 평판 혹은 명함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문학상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분석한다. 연일 ‘당선자 없음’이 발표되는가 하면 통폐합된 문학상도 적지 않다고. 문학공모전이 어쩌다 이렇게 위축되었을까.

장강명은 우리나라 창작 시장이 창작자 수준과 비교해 상이 많았다고 분석한다. 한해에 문제작이 여러 편 나올 수 있는 기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출판사나 문예지 때로는 언론사까지 나서서 고액을 상금으로 주는 공모전을 운영하고 있다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공모전을 통해 등단하더라도 그 이후 발전이 없는 소설가가 많다고 장강명은 지적한다. 공모전 수상으로 문학계 ‘내부자’ 신분증만 얻는 것에 만족하고 마는 작가가 많다는 것이다.

경찰 채용시험을 앞두고 열공중인 노량진 수험생들.사진=연합뉴스
경찰 채용시험을 앞두고 열공중인 노량진 수험생들.사진=연합뉴스

저자는 또한 문학공모전이 문학계 발전과 큰 관련 없다고 본다. 이 점은 선발시험으로 뽑는 대기업이든 공무원이든 공채도 마찬가지라고. 시험이 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사람을 뽑아 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직무에 적합한지는 들어와 봐야 알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만약 젊은 게이츠, 잡스, 저커버그가 삼성전자 면접장에 와서 저런 (노조와 노동운동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들을 받았다면 분명히 떨어졌을 것이다. (154쪽)

장강명은 외국 사례도 알아보았지만 공채를 운영하는 나라가 거의 없었다. 대신 실무자들이 검증하는 경력자 위주 선발이 자리 잡았다고. 어느 한국 방송국 기자가 미국 기자에게 우리나라는 기자를 공채로 뽑는다고 하니까 “어떻게 기자를 시험으로 뽑지”라며 놀라워했단다. 외국에서 기자는 작은 언론사부터 경험을 쌓아서 차츰 큰 곳으로 옮겨가는 게 채용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 저자의 경험에서도 입사 성적 좋은 후배가 취재를 잘 하지는 못했다고.

장강명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한국의 공채 문화였다. 공모전, 공채, 대학입시 모두 시험 결과가 사회적 신분이 되는 그런 현실. 그러나 시험만 통과하면 그것으로 끝인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아무도 입학이나 입사 이후 혹은 등단 이후 그들은 발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사회가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기준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나 모험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상속, 혼인, 시험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신분을 바꾸기 어려운. (429~430쪽)

어제(17일)는 7급 공무원 시험이 있은 날이다. 집 근처 고등학교가 새벽부터 북적였다. 응시자는 물론 부모님까지 응원하러 온 모양도 흔했다. 저들 중 일부만 합격 관문을 통과할 테고 대부분은 또 다른 기회를 노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도전 끝에도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흠. 떠오르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우리나라 청년들이 시험에 목맬 수밖에. 모두 어른들의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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