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이경미 감독이 창조한 괴랄한 세계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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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이경미 감독이 창조한 괴랄한 세계 ‘보건교사 안은영’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4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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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은 원작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
충분한 시간과 자본을 투여하고 개방적인 제작 환경을 제공한 넷플릭스여서 가능했을 것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난 지난 주말부터 넷플릭스 이용자가 되었다. 소설로 재미있게 읽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기 위해서였다. 넷플릭스는 소설가 정세랑의 동명 소설을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었다.

이 소설이 6부작 시리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난 반가운 한편 아쉬운 점도 있었다. TV가 아닌 넷플릭스로 방영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난 넷플릭스 같은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혹은 플랫폼을 이용해 콘텐츠를 즐기는 것에 거리감이 있었다. 뭔가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영화는 극장에서, 드라마는 TV로, 음악은 음반으로 즐겨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반면 OTT는 불법 다운로드 같은 어둠의 경로를 연상하게 해서 멀리한 것이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플랫폼도 왠지 그 연장선으로 보였다.

나의 소신은 한때 콘텐츠 관련 일을 하던 사람으로의 자존심이었지만 세상이 바뀌는 지금으로서는 보수적인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가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어가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 연결하게 된 사연이다.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만든 ‘보건교사 안은영’은 몇 가지 원작 소설과 다른 설정이 있었다. 원작자인 정세랑 소설가가 직접 참여해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에 함께 했다”고 밝혔듯이 우선 캐릭터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물론 주인공인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과 한문 교사 홍인표(남주혁 분)는 그대로다.

그런데 ‘화수’라는 의문의 여인으로 분한 ‘문소리’는 소설에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소설과 달리 남학생이 여학생으로, 여학생이 남학생으로 수정된 캐릭터도 그리고 새로 만든 캐릭터도 있었다. 학교 이름도 M고등학교에서 목련고등학교로 바뀌었다.

캐릭터뿐 아니라 소설 속 세계관이 영상으로 넘어오면서 갈등 구조가 조금은 구체적으로 되었다. 소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이한 존재와 묵묵히 싸우는 보건교사였다면 드라마에서는 괴이한 존재는 물론 갈등을 불러오는 보이지 않는 적과도 싸우며 전사 혹은 영웅으로 성장해 가는 ‘인간 안은영’으로 나온다.

여기서 갈등을 불러오는 존재는 ‘안전한 행복, H.S.P.(Happiness. Safety. Protect)’다. 아마도 안은영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단체인 듯한데 시즌 2가 만들어진다면 그 실체가 드러날 듯하다.

 

 

 

이경미 감독이 창조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

“보건,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OST 가사다. 이 노래가 BGM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아, 이경미 스타일이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미쓰 홍당무’나 ‘비밀은 없다’ 혹은 이지은(아이유)을 주연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를 보고 이경미 감독이 만든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이경미 감독의 색깔이 짙다.

혹시 ‘괴랄’이라는 단어 들어보았는가. ‘괴상하고 기상천외하다’라는 뜻을 가진 인터넷 유행어다. 물론 표준어는 아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소소하게 유행한 ‘괴랄’은 어원이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딱 맞게 쓰인 곳이 있었다. 바로 이경미 감독의 영화다. 그녀가 2008년에 만든 ‘미쓰 홍당무’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괴랄하다’라는 관람평이 나왔었다. 몇 년 전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를 낸 출판사도 ‘괴랄발랄솔직’이라는 키워드로 홍보했다.

그 연장선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도 괴랄하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평범한 내러티브가 아니라는 말이다. 배우들의 표정부터 그렇다. 다음은 시리즈 1회를 시작하는 첫 장면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한데 모여 “내 몸이 좋아진다. 좋아진다”를 반복해 외치며 겨드랑이를 때리는 체조를 하고 있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멀리서 잡으면 아이들은 웃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카메라가 다가갈수록 그 표정이 점점 괴이하게 보인다. 학생들은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은 경계의 표정이다.

이경미 감독은 드라마 시작부터 앞으로 할 이야기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경미 감독답게.

평범하지 않음의 또 다른 사례는 오리들이 지나가는 장면들이다. 어떤 사건이 완료되거나 다른 사건으로 넘어갈 때 하얗고 예쁜 오리들이 지나간다. 학교와 어울리지 않게도. 혹시 소설을 읽었다면 이해할 장면인데 뜬금없으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텔레비전이었으면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만약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했으면 가능했을까. 아마도 지상파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는 제작사와 방송국이 타협점을 찾아가며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경미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한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같은 기획을 영화화해서 투자자를 찾아갔으면 어땠을까. 모를 일이지만 영화 투자자들은 이경미 감독의 과거 성적표를 먼저 들춰보지 않았을까.

이경미 감독과 정세랑 작가, 그리고 제작사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든 게 가능했던 것은 아마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자기 망을 통해 송출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한 마디로 넷플릭스여서 가능했던 거였다.

넷플릭스는 청소년 성범죄를 다룬 ‘인간수업’, 한국형 좀비를 창조한 ‘킹덤’과 같은 한국에서 만든 오리지널 시리즈에 투자하고 제작해서 전 세계로 송출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평범하지 않은 세계관의 ‘보건교사 안은영’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자체 플랫폼을 가진 넷플릭스가 방송이나 영화에 비해 심의 규정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넷플릭스의 가장 큰 장점은 충분한 시간과 자본을 투여하고, 개방적인 제작 환경을 제공해서 창작자가 작품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넷플릭스가 콘텐츠 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건 아닐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요 캐릭터인 2학년 6반 아이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박혜은, 현우석, 심달기, 이석형, 송희준, 박세진, 권영찬, 그리고 오경화. 아직은 신인 배우들일 그들은 좋은 재능을 지녔다. 연기력은 물론 쉽게 잊히지 않을 그들의 얼굴이 좋은 배우로 성장할 큰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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