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인포르메] ‘콜럼버스 데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국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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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인포르메] ‘콜럼버스 데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국경일
  • 최지윤 스페인 마드리드 통신원
  • 승인 2020.10.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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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기념하는 10월12일 국경일
스페인에게는 영광의 3백년을, 중남미국민에겐 '치욕과 수난'을
스페인 스포츠 영웅 '라파엘 나달' 우승, 코로나로 고전하는 스페인 국민에 위안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일반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은 태양이 뜨는 곳부터 지는 곳까지 거대한 영토를 지니고 있던 대영 제국을 일컫는 표현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이전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끝없는 식민지를 개척한 스페인 제국을 뜻하는 말이었다.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스페인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현지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

1492년 세계사를 바꾼 발견

10월 12일은 스페인 국경일(Fiesta Nacional de España)로, 아메리카 대륙에는 ‘콜럼버스 데이’라고 알려져 있는, 스페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다. 바로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스페인에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를 안겨 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탈리나 제노바에서 태어난 '항해가' 콜럼버스는 먼저 포르투갈의 주앙 2세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탐험을 해 보겠다고 나섰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이에 굴복하지 않은 콜럼버스는 스페인에 가서 아라곤의 왕인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에게 후원을 요청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사진=위키피디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사진=위키피디아

스페인 입장에서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했던 콜럼버스를 거절하지만, 당시 이웃 나라들과 선교에 대한 경쟁이 있었던 스페인 성직자들은 콜럼버스의 항해가 성사될 수 있도록 두 왕을 설득하기에 나선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포르투갈에 대한 스페인의 견제, 정복의 희망, 향신료의 안정적인 확보 등 신대륙 개척에 대한 필요성이 높았던 시기라 콜럼버스는 새로운 대륙으로의 탐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첫 항해에서 콜럼버스와 그의 원정대는 바하마에 있는 산살바도르에 도착했고, 이를 시작으로 스페인 제국은 당시 가장 위대한 나라로 자리 잡으며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 있어 의미 있는 해다.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스페인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결혼함에 따라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800 여년 동안 스페인 사람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무어인들을 스페인 군대가 물리치며 그들의 마지막 요새였던 그라나다를 되찾기도 했다. 따라서 스페인 국경일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뿐만 아니라 이들 사건들도 함께 축하한다.

이 스페인 국경일에는 오랜 역사가 있지만, 공식적으로 축하하기 시작한 것은 1935년 마드리드에서다. 처음에 지어졌던 이름은 ‘Día de la Hispanidad’로, 직역하면 '스페인어 및 스페인 문화권의 날'이다.  1981년에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2014년 UN은 스페인 국가 및 스페인어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경일 행사에 참석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사진=madrid-shops.com
국경일 행사에 참석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사진=madrid-shops.com

이날 열리는 가장 큰 행사는 서울 광화문 거리와 같은 마드리드의 '파세오 데 라 카스테야나(Paseo de la Castellana)'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다. 스페인 육군, 해군, 공군 등 군인들의 행진이 이어지며, 국군 수장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를 비롯한 왕실 인물, 총리, 정치인, 고위 인사들이 참석하는 중요한 행사다. 가장 큰 볼거리는 스페인 공군이 하늘에서 스페인 국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는 TV로도 생중계된다.

라틴 아메리카국가엔 '치욕의 날'이기도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을 축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는 이로 인해 원주민 학살이 자행됐고 노예 제도가 생기고 그들의 고유한 문화가 파괴되는 등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으며, 뉴멕시코주를 비롯한 몇몇 도시들이 명칭을 바꾸기 시작했다.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3일 첫 항해를 시작으로 1502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으로 총 네 번의 항해를 하게 된다. 사진=www.travelinghaiti.com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3일 첫 항해를 시작으로 1502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으로 총 네 번의 항해를 하게 된다. 사진=www.travelinghaiti.com

1521년부터 1821년까지 정확히 300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은 멕시코 역시 이에 대해 감정이 좋을 리 없다. 멕시코 당국은 올해 콜럼버스 데이에 수도인 멕시코 시티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거리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가장 수치스러운 잔혹한 행위"에 대해 원주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바티칸의 교황, 스페인 왕실, 스페인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스페인 내부도 축하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 역시 지난 2019년 “콜럼버스의 날을 축하하는 것은 그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의 원주민 학살을 축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이 잔인한 식민 통치를 펼쳤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사실이라는 입장도 있는데,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1500년, 이사벨 1세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노예들을 데려오자 자신의 국민은 노예가 될 수 없다고 하며 노예 제도를 금지했다고 한다. 또 그녀는 서로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합법이라고 발표했고, 그들의 후손들은 스페인 현지인과 다르지 않은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며 메스티소와 같은 혼혈인을 존중했다. 학계는 또 대량 학살에 대해 스페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인디언의 수는 1200만 명이었지만, 이후에는 1600만 명으로 인구가 늘어난 것으로 보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스페인과 멕시코의 역사를 되짚어볼수록 서로 다른 관점에서 쓰인 역사가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특히 오늘은 스페인과 멕시코 지인들 사이에서 필자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하루가 아닐 수 없다. 스페인 국경일을 축하하는 동시에 멕시코의 비극적인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의 독립을 축하하는 필자의 모습이 아이러니하지만 어쩌겠는가. 역사는 객관적으로 쓰이지 않으며, 어떤 단 하나의 이유로 역사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여러 복합적인 상황으로 인해 영원할 것만 같던 스페인의 전성기는 18세기에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2020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우승 트로피에 키스를 하고 있다.  사진=independent.co.uk
2020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우승 트로피에 키스를 하고 있다. 사진=independent.co.uk

영욕의 스페인 근현대사...금융위기와 코로나사태

근현대를 거쳐오며 스페인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금융 위기를 겪었고, 최근에는 유럽 내 코로나 피해가 가장 심한 나라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수도 마드리드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최대 국경일 3일 전에 다시 봉쇄되었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국경일 퍼레이드를 비롯한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간소화되어 예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스페인의 스포츠 영웅으로 잘 알려진 ‘라파엘 나달’이 세 시간의 혈투 끝에 우승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나달은 통상 20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을 기록하며, 프랑스 오픈에서만 13번째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이제 테니스의 황제라고 불리는 로저 페더러와 같은 20번의 그랜드 슬램 우승 횟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프랑스에 울려 퍼진 스페인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나달. 그의 우승 소식은 스페인 국민들에게도 가슴 뭉클한 국경일 최고의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 최지윤 통신원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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