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오악도, 십장생 모티브 '호연지경' 시리즈 선봬
세월 속 사라져버릴 이미지...멈추게한 '감금과 정지'의 미학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회화, 영상 등 전 방위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양화가 정진용은 주로 흑백의 강렬한 대비나 골드와 레드 그리고 블루 등 원색을 사용하여 작업해 왔으나, 최근에는 자신의 주조색인 검정을 거의 쓰지 않은 그림들을 선보인다.
2년전 전북 전주 팔복 예술 공장 레지던시 전시 때 그가 사용한 검정은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천장 낮은 전시장의 황금색 조명아래서는 강렬했다.
정진용의 작품은 전시 조건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인다. 2년전 중국 베이징 798 예술특구. 전시 벽면이 전형적인 화이트 보드인 화이트큐브 공간에서 마주한 그의 작품들은 특유의 아우라를 잃고 있었다.
작품은 화려하게 그려진 이미지 위에 0.2 미리미터 크기의 미세한 인조 크리스탈 비즈가 표면에 덮여 있다. 역사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마는 이미지를 현재에 멈추어 가둬놓는 ‘감금과 정지’를 말하고자 한다.
작가의 상상이나 감성으로부터 파생된 형태와 색은 무수하게 도포되어 점착된 크리스탈 비즈의 투명막 속에서 마치 수정 속에 갇혀 화석이 된 고생대 동식물 마냥 영롱하고 생생하게 빛난다.
작가는 동양 전통의 산수화와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또는 日月五峰圖) 및 십장생(十長生)을 모티브로 판타지적 경관을 구현한 ‘호연지경’(浩然之景) 시리즈를 계속 선보여 왔다.

정진용은 한 때 서양 문화와 화려한 상류 사회 사교의 정점인 춤과 음악이 어울어진 파티장의 상징인 샹드리에를 색채와 점묘로 재현한 ‘hangover’시리즈를 새롭게 작업해 오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권력과 물질의 최고 상징을 초광속으로 퇴색시켜 메가시티 주변 소도시의 허름하고 초라한 행사장의 기물(棄物)로 전락시켜 버린다.

작품의 구도와 색은 장중하며 묵직한 레드 와인같다. 선은 호방하고 대륙적이다. 중국 미술 시장에서 자국 작가와 흐름을 같이하는 정진용에 대한 관심이 크다. 서양화가인 장희진과는 삶을 꾸려나가는 부부이면서 동료 작가로서, 꾸준히 응원하고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서로를 성장시키는 촉매의 역할도 한다.

정진용의 개인전 ‘크리스털 가든 Crystal Garden’이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갤러리 써포먼트’에서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작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무대로, 신작 중심의 전시이다.
관객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슬프도록 화려하고 독창적인 작품들 마주할 수 있다. 작가는 우아하고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낙양(落陽)의 호숫가에 뜬 낡은 배와 같은 전통, 정치적 격동기에 매몰되는 고색창연하기만 한 인간의 삶을 비춘 근대, 새로운 어떤 것도 내놓을 수 없는 작가들에게는 비극적인 현대를 동양 미학과 서양 미감을 넘나들며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정체된 일상의 삶을 기록한 연필 드로잉 작품들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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