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것을 누가 정할 것인가...소통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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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것을 누가 정할 것인가...소통이 필요할 때
  • 김이나
  • 승인 2015.12.21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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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딸아이가 학원을 옮겨야겠다며 물어본다. 사실 여러 여건상 이미 결정은 난 거 같은데 물어보니 대답은 해줬다. 어제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는데 이걸 입을까 저걸 입을까 물어본다. 둘 다 좋다고 하면 안될 것 같고, 적어도 어떤 게 더 낫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같았다. 그래야 결정하기가 수월하다.

문득 질문이 많았던 어릴 때 모습이 떠오른다. 말도 일찍 배워서 얼마나 끊임없이 물어보던지.

하고 싶은 거 많고 사고 싶은 거 많고 보고 싶은 거 많고. 일일이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는 재빨리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위험하진 않은지 꼭 필요한 물건인지 해도 되는 일인지.

성인이 되면 질문이 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늘 고민하는 순간은 올 것이다. 아마도 평생.

개그콘서트에 “애정남”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라는 뜻이란다.

명절에 남편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명절에 처갓집에 가는 시간, 데이트 시 비용 분담 기준 등을 정해주는 남자가 나오는 코너다. 물론 코믹하게 다소 과장되게 풀어나갔지만 다들 ‘아…맞다’ 하고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법대로 하면 될 테지만 법대로 할 수 없는 이런 애매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 언제나 문제는 소통이다 / unsplash

 

그런데 이런 애정남이 부부 사이에도 있으면 좋겠다. 두 배우자 사이에 정해야 하는 것도 많고, 또 양가 부모님을 계속 챙겨야 하는 의무도 있다 보니 명절이나 대소사에 정해야 할 것도 많다. 물론 매사 의논하고 협의해야 하는 게 맞지만 매년 매번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결혼한 지 3년, 5년쯤 지나다 보면 슬슬 어느 한쪽이 정해서 알아서 해주길 바라게 된다. 이게 굳어지면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편의상 A씨,B씨를 남편으로 가정해서 얘기해보자)

 

첫번째는 자기가 알아보고 결정을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거나 의지가 없거나 아예 그럴 생각조차 없는 A씨 부부의 경우다. 아내는 여러 초이스를 제시하고 그 중에 결정을 해주거나 아님 의견을 내어주길 기다리지만 날짜가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아내가 결정하게 된다.

“거봐 당신이 잘 하잖아. 어머님도 만족하시고. 장소도 만족하시고. 당신 최고야. 앞으로도 당신이 하는 게 좋겠어.”

좀 다른 얘기지만 이런 경우가 그 유명한 ‘아빠의 무관심’이다. 왜 그런 얘기가 있지 않은가.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 아이의 학업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학원이나 진로를 선택하는 역할은 오직 엄마가 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실제로 이런 부모들의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이 아이들이 언제까지 우등생으로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번째는 일일이 의논하고 대답을 기다리자니, 시간도 걸리고 짜증도 나서 모든 걸 일사천리로 결정하는 B씨의 경우다.

2주 예정의 해외여행 정도는 배우자에게 날짜만 통보한다. 아무리 아내가 전업주부라 해도 본인 스케쥴이 있을텐데, 일방적인 통보다.

“당신 신경쓸 거 없어. 내가 다 알아봤어. 호텔, 렌트카 다 예약했어. 일정도 다 짜놨지.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에헴”

겉보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는 부부다. 남편이 책임감 있게 모든 걸 다 알아보고 가격도 비교해서 결정을 한다니 아내가 무슨 불만이 있으랴?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런 부부들의 경우, 그럼 배우자들은 불만이 없을까? 언뜻 보면 A씨의 배우자는 불만이 있겠지만 B의 경우는 크게 불만이 없으리라 생각될 수도 있다.

우선 A씨 배우자는 이런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모든 게 내 뜻대로 잘되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남편이 모든 걸 맡긴다고 해서 모든 권리도 다 주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리고 실패 할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한다.

아이의 교육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아버님 칠순 잔치를 할 식당을 예약하라는데, 잘못 고르면 어쩌나, 여유자금으로 주식을 좀 산 게 문제가 되면 어쩌나… 잘 돼야 본전, 안 되면 모든 게 내 탓이다.

B의 배우자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조차 남편이 결정을 내려버리니, 내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모든 걸 남편에게 미뤄버리는 공주병 환자로 보이진 않을지, 또는 무능력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막상 A씨도 모든 걸 알아서 하라고는 했지만 후에 아무런 불만이 없을 것인가? B씨처럼 모든 걸 다 결정하면 배우자 역시 행복해 할까? 그 결정은 결국 B씨의 기호에 따라 결정한 것 아닌가?

편의, 효율을 염두에 둔다면 좀 더 사정을 잘 아는 배우자, 결과를 책임 질 수 있는 배우자가 결정을 하면 되지만 다른 배우자라도 그 과정에는 참여해야 한다. 잘 알아야 잘 맡길 수 있는 것이고, 맡은 사람 역시 맡긴 사람과의 소통이 끝까지 필요하다.

애매한 것을 누가 정할 것인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정해 가는 그 과정을 함께 하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억하라고 하고 싶다.

망망대해. 지금은 파도도 잠잠하고 순항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순항을 할지 알 수 없다.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하고 키를 잡고 잘 이끌던 사람이 다치거나 병이 들지도 모른다.

그땐 미룰 수 없다. 발만 동동거리며 울고 있을 수도 없다. 내가 키를 잡아야 한다. 내가 나서야 한다. 우리 가족을 위해, 결국엔 나를 위해.

 

 

김이나 ▲디보싱 상담센터 양재점/ 이혼플래너  ▲서울대학교 대학원졸(불문학) jasmin_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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