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우리 몸속 소우주를 탐구하는 나노로봇,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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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우리 몸속 소우주를 탐구하는 나노로봇,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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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내부 탐사하는 ‘트랜스포머’ 나노로봇 개발
.SF적 상상력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 보여주다
2016년부터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난독증 앓던 청년의 치열한 삶 담아
“작은 로봇이 인체 안에 주입되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을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책 '이너스페이스'.사진=저자 페이스북
“작은 로봇이 인체 안에 주입되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을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책 '이너 스페이스'.사진=저자 페이스북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이 책의 저자는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었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과 그가 다양한 인연으로 엮여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와 페이스북 친구가 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를 미국 어느 대학교에 재직하는 예술가나 인문학 교수로 알았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데는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과 글 때문이었다. 그의 집 정원이나 학교 혹은 길가에서 만나는 꽃들에 마치 연인을 대하듯 감정이입 하는 모습이 그랬고, 그의 일상을 적은 감성적인 글들이 그랬다.

나는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책을 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읽었다. ‘김민준의 이너 스페이스’가 그 책이다. 그런데 그는 공학자였다. 그것도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김민준은 현재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는 서던메소디스트 대학교(SMU,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석좌교수이다. 이 책은 그의 연구 분야인 나노로봇과 세계적 로봇공학자로 자리매김한 인간 김민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라는 책 제목은 1987년 미국에서 제작한 같은 제목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사람 몸속을 탐험하는 영화 말이다. 김민준 교수는 이 영화를 보고 “작은 로봇이 인체 안에 주입되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나노로봇 연구에 적용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 책은 단계마다 품었던 김민준 교수의 고민과 그 고민을 풀기 위한 무수한 실험들, 그 고민과 실험들을 함께한 스승과 동료이기도 한 제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동아시아 펴냄.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동아시아 펴냄.

나노로봇이란?

나노로봇은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수십~수백 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극초소형 로봇이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수십 분의 1 크기로, 혈액과 같은 인간의 체액 안에서 자기장을 이용한 자체 추진력으로 헤엄쳐 움직인다. (32쪽)

난 이렇게 극히 작은 로봇을 어떻게 만들까가 궁금했다. 하지만 로봇을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 금속으로 만든 모습으로 일반화시키고 각인한 나의 오해였다. “일반적인 로봇과 달리 나노로봇은 무기물뿐 아니라 생체재료들의 생화학적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거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를 모방해 만든 인공 박테리아 나노로봇은 박테리아처럼 세포체와 편모로” 이루어져 있다고.

김민준 교수는 인체의 체액 흐름에서도 힘차게 헤엄치는 박테리아의 능력을 모방해 1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유체 환경의 변화를 자동으로 인식해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변신하는 로봇을 개발한다. 트랜스포머 나노로봇인 ‘2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이다.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나오는 상황에 맞춰 변신하는 로봇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2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이 세포벽이라는 장애물을 뚫지 못해 버벅거리자, 3차원 나선형 구조로 회전하는 기능까지 추가 탑재한 ‘3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까지 개발한다. 현재 김민준 교수는 복잡한 인체 내부를 온전히 제어하기 위해 나노로봇에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능을 탑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1987년 개봉한 영화 '이너스페이스(Inner Space)'.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사람 몸을 탐험하는 영화로 김교수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네이버영화
1987년 개봉한 영화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사람 몸을 탐험하는 영화로 김교수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네이버영화

중요한 것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였다

학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학맥(學脈)에 의해 죽어서도 이어지는 맺음이다. 스승이 나무의 뿌리 같은 존재라면 제자는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가지다. 가지에 잎이 달리고 꽃이 필 수 있도록 뿌리는 끊임없이 물과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로부터 받은 물과 영양분으로 더 튼튼하게 뻗어나가야 하고 열심히 꽃을 피어야 한다. (290쪽)

김민준 교수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난 구절이다.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 덕분에 또 좋은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는 경험을 한다. 좋은 스승이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고 좋은 제자가 좋은 제자를 끌어들이는 그의 연구실 모습이 이 책에 여러 번 언급된다.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김민준 교수에게 학문 계보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에게 학문적 조상은 ‘코페르니쿠스’에까지 올라간다. 달랑 이 문장만 본 사람이라면 농담으로 생각하겠지만 과학 분야의 성취는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힘들다는 걸 설명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선배 혹은 조상 연구자들의 결과를 이어받아 발전시켜나가는 일관성과 확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다.

학문의 계보를 소중히 생각하는 김민준 교수는 그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여러 스승을 책에서 소개한다. 그의 현재 위치가 혼자만의 힘으로 올랐다는 게 아니라는 것. 또한, 그와 함께한 여러 제자도 소개한다. 그의 현재 성취가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 美 서던메소디스트대 김민준 석좌교수.사진=김민준 페이스북
저자 美 서던메소디스트대 김민준 석좌교수.사진=김민준 페이스북

김민준 교수가 한국에 있었다면?

혹자는 이런 인재가 왜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김민준 교수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그와 한국은 맞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가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이 책에 언급된 김민준 교수의 경험담이 아니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그들만의 리그인 대학교의 폐쇄성도 문제지만 ‘관료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자가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책연구 프로젝트는 (규모와 수준에 상관없이) 공무원이 만든 규격화된 틀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고 정해진 양식의 보고서도 남겨야 한다. 향후 감사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준 교수의 책은 혁신은 짜 맞춘 틀 안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과학적, 공학적, 수학적 사고뿐 아니라 인문학과 예술적 소양이 함께 있어야 촉발된다는 것도. 그런 융합적 사고(思考)가 세계적 나노로봇공학자 김민준 교수를 있게 했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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