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락의 채권을 부탁해]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에 대한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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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락의 채권을 부탁해]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에 대한 셈법
  •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애널리스트
  • 승인 2020.09.1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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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2% 상회해도 금리 안올리겠다는 연준의 속셈은?
통화정책 카드 소진에 따른 '페인팅' 아닐까
선언직후 장기금리 가파르게 상승...자산시장에 '우호적' 아닐수도
공동락 대신증권 애널리스트
공동락 대신증권 애널리스트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 애널리스트 겸 이코노미스트]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 선언으로 이른바 인플레이션 자경단(vigilance)을 자임해 온 채권시장의 셈법이 분주해졌다. 물론 그 셈법에는 AIT를 실시하기로 한 미 연준(Fed)의 의도와 함께, 왜 현 시점에서 해당 조치가 나왔을까에 대한 추측도 함께 포함될 것이다.

우선 이번에 미 연준이 도입하기로 한 ‘평균물가목표제(AIT: flexible form of average inflation targeting)'의 내용을 살펴보자.

연준은 1)통화정책 결정은 (노동시장에서) 완전고용 대비 하회 여부를 반영할 것이며, 2) 평균적인 개인소비지출물가(PCE)가 전년동기대비 기준으로 2%에 도달하기 위해 물가가 2%를 상당기간 하회한 이후에는 물가상승률이 2%를 완만하게 상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금융시장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물가로, 이를 정리하면 “현재 물가가 2%를 상회하더라도 앞선 기간에 걸쳐 물가가 2%를 하회했다면, 중앙은행이 기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연준, 당분간 기준금리 안올린다?

주식시장이 AIT에 환호를 보낸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항상 중앙은행을 ‘파티의 흥을 깨는 사람(Party Pooper)’이란 인식이 컸던 증시 입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가 물가에서 고용이나 성장으로 선회했고, 심지어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까지 바뀌었다는 평가할 정도다.

이에 대해 필자는 물가가 2%를 넘는 상황에 대해 중앙은행이 당장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대목도 중요하나, 앞서 전제로 내세운 언급한 “물가가 상당기간 2%를 하회한 상황”에 대한 점검이 더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즉 물가가 추후 목표보다 상승하는 것을 평균적으로 상쇄할 만큼 낮게 유지되는 상황에 대한 진단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주지하다시피 물가가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하회하는 국면은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다. 실제 금융위기를 거치며 지난 수년간 연준을 비롯한 상당수 중앙은행들은 물가가 과거 통상적인 목표로 간주된 2%를 하회하는 상황에 대해 적잖은 연구와 분석을 거쳤다. 그 결과 물가는 2%를 당분간 하회하는 수준이 지속될 것이며, 그 배경에는 경제,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변화가 반영됐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이번 AIT 도입을 연준의 의도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면 당장 기준금리를 변경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정립하는 과정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 연합뉴스

AIT 도입을 선언할 수 밖에 없는 연준

그 다음은 연준은 왜 지금 AIT 도입을 선언했느냐에 대한 문제다. 필자는 AIT 도입으로 마이너스금리정책(NIRP), 수익률곡선통제(YCC) 등 통화당국이 직접적인 언급을 꺼리거나 실효성 면에서 굳이 실시하지 않고 싶어하는 조치들에 주장이 한동안 잠잠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AIT 도입으로 연준이 피하고 싶은 일련의 조치들에 대한 요구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전략적인 대응 카드란 의미다.

AIT 도입은 연준이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인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소진한 후 내놓은 비전통적 수단들 가운데 분류 면에서 ‘포워드 가이던스’ 강화에 해당한다. 직접적인 수단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추후 진행될 정책에 대한 사전 전제(물가가 상당기간 2%를 하회한 이후 2%를 상회하면, 당장 대응하지 않겠다)의 제시다.

기준금리와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들이 사실상 소진됨에 따라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본인들이 향후에 어떤 정책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금융시장에 어떻게 알려 정책 옵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알릴 수 있을 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시장이나 경제 주체들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단 자체가 많지 않다는 의미인데 반해 정책 당국은 그 덕목 상 자신들이 대응책이 없다고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AIT는 당장 특별한 정책 변화를 수반하지 않으면서도 중앙은행이 충분히 정책 옵션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리는 카드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채권시장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다. 최근 AIT 선언 직후 장기금리가 비교적 가파르게 상승하고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을 보인 것은 채권시장 측면에서 이번 조치를 자칫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냐에 대한 반응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채권시장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움직임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은 항상 장기와 단기금리 간의 분주한 계산을 동반한다. 당장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단기채권에는 우호적이나, 이를 통해 추후 물가가 상승한다면 장기채권은 전혀 다른 동향을 나타내는 것이 채권시장의 통화정책에 대한 프라이싱이다.

물론 연준은 AIT 도입으로 당장 장기금리가 크게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며, 물가 역시 당분간 크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라는 정도의 계산은 벌써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연준의 시장금리에 대한 장악력은 장기영역까지 일괄적으로 작동하는 강력한 힘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 금리 변동성 분출을 통해 다시금 입증됐다.

또한 미국 장기금리의 움직임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외환시장 여건의 변화까지 생각한다면 AIT 도입이 마냥 주식이나 자산시장에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조치는 아닐 수 있다는 견해다.

● 공동락은 대신증권 Research & Strategy 본부에서 이코노미스트 겸 채권 애널리스트로 재직중이다. 이데일리 채권전문기자로 출발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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