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한약 급여화를 위한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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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한약 급여화를 위한 조건들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09.10 16: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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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이용한 약제의 역사, 기원전 2천년전부터
미국, 1900년대초부터 약물에 대한 규제 시스템화
'할아버지 약물' 유효성 입증 작업해야...그 이후 급여화 순서 밟아야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B.C. 1640년 경 제작된 앗시리아 쐐기문자를 보면, '병든 담낭은 환자의 심장을 침범한다. 삼나무 추출물, 염소 젖/ 야자 와인, 보리, 황소와 곰고기와 저장고의 와인'을 물에 넣어서 불에 잘 달여서 약을 준비하도록 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치료를 위해 식물의 뿌리를 이용하는 전문가 집단들이 있었고, 이들을 리조토마이(rhizotomoi; 식물의 뿌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리조마(Rizoma)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불렀다. 중국의 염제 신농은 자신이 직접 독초를 먹고 그 독성을 기록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세에도 약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1194~1250)가 만든 멜피헌법에는 약업(pharmacy)에 관한 규정에 “집에서 잘못된(bad) 약 또는 해로운(harmful) 약 또는 독물(poisons)을 팔거나 팔고자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약물을 정부가 품목별로 허가하면서, 제약사의 생산 시설을 규제하는 현대적인 약물 규제는 비교적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제도다.

약물의 안정성과 질에 대한 최초의 규제 법률은 1880년대 중반 미 의회가 외국으로부터 불량 약물이 수입되는 것을 감시하도록 약물 수입법을 제정한 것이었다. 1901년 미국에 디프테리아가 확산되는데, 당시 표준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던 디프테리아 항독소를 제조해 소아 환자들에게 투여했는데, 항독소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였던 말 중 한 마리가 파상풍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로 인하여 주사 맞은 107명의 소아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 연방의회는 1902년부터 1912년까지 연방 정부가 약물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기 위한 식약청법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미국은 주와 연방의 권한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연방 정부가 약물에 대한 구체적 규제 권한을 가지지는 못한 상태였던, 1937년 설파닐라마이드(sulfanilamde) 사건이 발생했다.

설파제 항생제로서 당시 최신 약물이었는데 맛이 써서 소아용으로 쓰기가 어려웠다. 한 제약사가 복용을 쉽게하기 위해 시럽 제재를 만들었는데, 이 약은 물에 녹지 않았기 때문에 용매로서 에틸렌 글리콜(ethylene glycol)을 썼다. 이 용매는 자동차 부동액에 사용되는 것으로 달콤한 맛이 있지만, 마시면 대사성 산증으로 사망하는 독극물이었다. 이 시럽 제재를 복용한 아이 107명이 사망하였다.

1938년 기존 식약청법이 개정돼 규제대상이 식품, 약물 외에 화장품, 의료기기까지 넓어졌고, 시장 판매 전에 해당 물품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통해 품목허가를 했다. 규제 대상을 생산하는 공장에 대한 기준과 공식적인 실태조사제도 이때 도입됐다.

이에 반해 유럽은 입법이 미루어졌다. 1950년대 독일 그뤼넨탈 제약사가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물을 개발, 콘터간(Contergan)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처음에 이 약물은 수면제, 진정제로 사용되었는데, 점점 더 처방 적응증이 넓어지면서 구토 산모들의 입덧 방지용에도 쓰이게 되었다. 동물 실험에서 치사량 측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성이 높았다는 회사 연구 결과에 소개될 정도여서, 이 약은 약국에서 의사 처방없이 살 수 있었다. 14개 제약사들이 면허 생산을 해 46개국에서 37개의 이름으로 판매됐다. 영국에서 1958년 디스타발(Distaval) 이름으로 판매되는데, 당시 약 설명서에 ‘임산부에 사용해도, 산모와 아이에게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기술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유럽에는 손발이 짧아진 기형아들의 출생이 늘어났다. 물개사지증(Phocomelia라고 함)이라고 하는데, 당시 의학계는 태반을 통해 약물이 태아에게 전달되는데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에 유전 질환의 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했다. 결국 약의 복용과 사지가 짧아지는 기형 발생과의 인과 관계를 알아내는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임신 초기 20~37일 사이에 그 약을 복용한 산모의 태아 대부분에서 기형이 발생했다. 1만 명이 넘는 아기가 기형으로 태어났고, 절반 이상이 출산 또는 수개월 내에 사망했다.

탈리도마이드 복용 후 물개사지증을 앓게 된 약물 사고 사진.
탈리도마이드 복용 후 물개사지증을 앓게 된 약물 사고 사진.

반면에 미국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식약청법에 의해 식약청장이 약물 장기 복용자에게 나타나는 신경 손상에 대한 보고서 미제출을 이유로 수입 허가를 내주지 않아 미국내에서는 약물이 판매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민들은 식약청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냈고, 그 결과 수정 법안에 의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약물들에 대해 판매 전 유효성 입증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한약산업협회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열린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찬성 기자회견에서 첩약 급여화를 촉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한약산업협회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열린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찬성 기자회견에서 첩약 급여화를 촉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약물에 대한 시장 판매전 품목 허가제가 도입되고, 허가를 위해 해당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 자료를 식약청에 제출하는 제도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게 된다. 미국은 1962년 유효성 증명 입법을 통해 법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약물, 그래서 비교적 안전하다고 인정되었던 약물(소위 grandfathered drug)에 대한 품목 허가 기준을 제시했다. 신약과 달리 안전성 입증자료를 면제해주고, 일정 기간내에 유효성을 입증해 품목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법 시행 이후 기간 내에 유효성 입증 받지 못한 약물은 시장에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한약 첩약 급여화가 의료계 파업의 한 주제가 됐다. 한약 처방의 표준화와 생산 과정의 품질 관리라는 전제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3개 증상에 대한 한약 첩약의 유효성 평가를 해 국민 건강보험으로 이를 급여화하겠다는 게 정부 정책이다. OECD 기준으로 다른 선진국들은 '할아버지 약'들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한번 살펴봤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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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 2020-09-10 17:57:57
이번 기회에 한약도 약효의 유효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요

모바일큰손 2020-09-10 17:11:24
얼마전 중지에 상처를 입었는데 덕분에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요즘 계속 부딪히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네요...부주의에 결과겠죠. 글 잘 읽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