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디지털금융, 기술보다 금융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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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디지털금융, 기술보다 금융이 먼저다
  •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 승인 2020.09.06 21: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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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의 핵심은 금융...기술은 '말단' 이야기
금융위 또 관련법 개정 추진...네이버 등에 특혜 주려 '안달'
한국은행마저 결제사업자로 전락시키려는가...금융의 기본원리 지켜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핀테크와 디지털금융은 둘 다 합성어다. 그런데 핀테크에서는 금융(finance)이 기술(technology)을 앞서지만, 디지털금융에서는 금융이 (디지털)기술보다 뒤에 놓인다. 어떤 쪽이 옳을까?

이 글에서는 금융이 기술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핀테크 시대에도 그 중심은 금융이지 기술이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 아래서 기술에 현혹되면, 디지털금융은 표류한다.

분산원장은 11세기부터 시작돼

핀테크 산업에 뛰어든 엔지니어들은 기존 금융시스템을 개혁의 대상이라고 본다. 그런 태도에는, 기술에 대한 과신 또는 과장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류의 가상화폐 개발자들은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이 엄청난 발명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분산원장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찍이 12세기 초 영국에서는 국채를 분산원장 방식으로 발행했었다. 당시 영국의 국채를 탤리스틱(tally stick)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양의 부절(符節)과 같다. 나무막대기를 둘로 쪼개서 발행자(왕실)과 투자자가 하나씩 나눠 갖고, 두 쪽을 하나로 맞춰 진품여부를 판단했다. 영국의 탤리스택과 동양의 부절. 두 개가 딱 맞아야 진품임이 증명된다.

영국이 탤리스틱을 발행한 이유는 헨리1세의 씀씀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재정이 궁핍한 헨리1세는 돈 많은 상인들에게 미리 세금을 거둔 뒤 탤리스틱을 지급했고, 미리 세금을 낸 상인들은 상거래에서 그것을 화폐처럼 사용했다. 언젠가 세금을 내야 하는 다른 상인은 그것을 받아 나중에 세금 낼 때 사용했다. 그러므로 탤리스틱은 국채이자 가상화폐(virtual currency)였다.

참고로 둘로 쪼갠 탤리스틱의 길이가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탤리스틱을 둘로 쪼갤 때 긴 쪽은 투자자(납세자)가 갖고, 짧은 쪽은 왕실(채무자)이 가졌다. 투자자가 가진 긴 쪽의 이름은 스톡(stock)이다. 오늘날 주주를 스톡홀더(stockholder)라고 하는 이유는, 주주는 탤리스틱의 긴 쪽을 가진 투자자라는 의미다. ‘상황이 불리하다’이라는 영어 표현인 ‘get short end of the stick’은 탤리스틱의 짧은 쪽을 가진 채무자라는 의미다.

기록의 관점에서 보면, 시중에 유통되던 스톡들은 하나하나 흩어진 원장이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세금을 미리 냈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오늘날의 은행권(한국은행권)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가 원장이라서 그것을 분실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예금통장이나 채권처럼 한국은행이 은행권을 재발행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가상화폐의 원리와 완전히 똑같다. 비트코인에는 과거의 기록들이 블록체인기술을 통해 응축되어 담겨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원장이다. 비트코인을 해킹당하여 분실하면, 찾을 길이 없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에 적용된 분산원장 방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900년 전에 등장했던 진부한 개념을 새롭다고 선전하는 것은 굉장한 허풍이다. 기술자들의 허풍에 속지 않으려면, 금융과 기술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핀테크 시대에서도 금융이 기술보다 중요하다.

디지털금융은 디지털과 금융의 구분에서 출발

디지털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든지 은행들의 송금과 추심 서비스는 ‘지급-청산-결제’의 과정을 거친다. 지급단계에서는 어음, 수표, 신용카드, 교통카드, 스마트폰, 컴퓨터 등 여러 가지 수단과 채널이 동원된다. 금융과 기술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단계에서도 기술보다는 금융이 중심하다. 왜냐하면, 어떤 지급수단이나 도구를 이용하건 일단 금융기관(은행)에 계좌와 잔액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잔액이 부족하다면, 신용을 제공받아야 한다. 고객의 자금을 계좌에 예치하고 신용을 제공하는 일은 금융기관의 몫이다.

지급단계에서 IT업체나 통신업체의 영역은 그야말로 말단지엽적이다. ATM이나 신용카드망, 스마트폰 앱 등으로 금융기관의 계좌에 접속하는 것을 담당한다. 그런 기술과 수단은 금융이 아니다. 은행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자동문을 통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지만 자동문과 엘리베이터가 금융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결제과정에 이르면 그야말로 금융의 세계다. 금융기관 중에서도 은행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어음, 수표, 신용카드, 교통카드, 스마트폰, 컴퓨터 등 다양한 지급수단과 채널을 통해 수집된 지급지시들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확인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한국은행에 예치된 상업은행들의 지급준비금 조정을 통해 완료된다. 증권사나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은 한국은행에 지급준비금이 없으므로 당연히 결제업무에 참여할 수 없다.

종합해 보건대, 지급과 결제의 시작과 끝은 금융이요, 기술은 백댄서이자 양념에 불과하다.

핀테크의 중심은 금융이어야 하며, 기술의 가치가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핀테크의 중심은 금융이어야 하며, 기술의 가치가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금융위원회는 금융보다 기술을 더 사랑해

그런데 디지털금융을 다루는 금융위원회는 금융보다 기술에 기울어져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트코인 개발자들처럼 기존의 금융시스템은 죄다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현 전자금융업 체계는 혁신적인 결제서비스의 제도권 수용을 어렵게 하고 진입비용과 규제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자아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급지시전달업자’와 ‘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새로이 지정·인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엉뚱하다.

지급지시전달업자는 이용자의 지급지시를 받아 금융기관에 전달하는 ‘심부름꾼’이다. 현실에서는 스타트업 IT업체들이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스타트업 IT업체들은 고객의 자금을 한 푼도 만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최소자본금을 3억 원으로 정하는 등 그 자격을 심사하려고 한다. 과도하다. 금융기관 앞으로 우편물을 배달한다는 이유로 우편배달부의 자격을 금융위원회가 심사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지급지시전달업은 부가서비스(overlay service)에 해당한다. 금융에 기생하거나 곁불을 쬐는 정도의 서비스라는 뜻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금융감독당국이 인·허가 하지 않는다. 여느 회사처럼 지자체에 등록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급지시전달업자는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고객의 금융계좌 정보에 대해 ‘접근권’을 보유한다. 그것도 크게 잘못된 시각이다. 심부름꾼이 금융계좌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권리(right)가 아니라 특혜(privilege)다. 금융기관과 고객 간의 계약은 채권(債權)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나 차량, 선박 등 물건에 대한 권리(물권)는 등기를 통해 제3자에게도 공개할 의무가 있지만, 채권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라서 제3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이 심부름꾼에게 계좌정보를 일부 제공한다면, 그것은 일방적인 시혜다. 그것을 심부름꾼의 권리라고 보면 곤란하다.

왼쪽부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왼쪽부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금융의 핵심을 바로 보는 지혜가 있어야

금융위원회가 신설하여 감독하겠다는 종합지급결제업도 문제가 많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종합지급결제업자가 다루는 시스템은 폐쇄루프시스템(closed-loop system)이라고 한다. 한 시스템 안에서 지급-청산-결제의 전 과정이 전부 처리되어 완결성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는 선불카드·직불카드·전자화폐업자의 시스템이 여기에 해당한다. 선불카드·직불카드·전자화폐업자는 미리 계좌를 개설하고 자금을 입금한 고객들을 상대로 지급-청산-결제의 전 과정을 한 시스템 안에서 처리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사업은 이미 법적 근거가 있다는 점이다.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을 위해 굳이 법률을 개정할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금융위원회가 법률을 개정하는 이유는 네이버, 카카오 등 IT산업 안에서도 소수의 빅테크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데 있다. 금융기관 계좌 접속을 돕던 IT업자에게 금융업을 인가하는 것은, 금융기관 출입에 필요한 자동문과 엘리베이터의 생산업자에게 금융업을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설득력이 아주 낮다. 정부가 빅테크에게 특혜를 주려고 용을 쓴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그렇게 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금융업과 아무 상관도 없던 빅테크를 금융결제원의 특별회원으로 참가시켜서 은행과 대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데 있다. 금융위는 10년 전에도 자본시장법을 통해서 일부 대형 증권회사에게 똑같은 일을 했다. 은행법을 우회하면서 은행업 허가를 넓힌 것이다. 정공법이 아닌 그런 방법은, 떳떳하지 못하다.

금융위의 구상에 따르면, 한국은행도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한은금융망(BOK-wire)은 상업은행의 지급준비금을 통해 지급-청산-결제의 전 과정을 다루는 폐쇄루프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국은행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에 해당한다. 논리적으로 한국은행도 장차 금융위의 감독대상이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코미디다.

종합해 보건대, 금융위원회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은 지나치게 기술에 경도되었다. 그 결과 금융의 기본원리가 흔들리고 있다. 금융은 금융이고, 기술은 기술이다.

지급결제에 관해서는 금융위원회가 한국은행과 상의하여야 한다.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급지시를 상업은행 간 지급준비금 조정을 통해 완결시키는, 지급결제망의 정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없는 지급결제는, 책 없는 도서관이요 비행기 없는 공군이다. 금융위원회가 신기술에 정신이 팔려 그런 기본을 망각하는 순간 디지털금융은 표류한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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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용 2020-09-07 10:37:26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은행의 역활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약간 뒤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김장현 2020-09-11 15:00:44
오늘은 한은금요강좌가 있는 금요일 이네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