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①: 산재사망자 자녀 특별채용의 경우
상태바
[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①: 산재사망자 자녀 특별채용의 경우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8.31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㉙: 공화제와 사법(1)
법의 기계적 중립성에 대한 도그마...법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 따른 것
헌법...노사관계에서 '근로자 우대' 원칙 결단하고 있어
대법원의 산재사망자 자녀 특별채용 무효 판결 '파기'... 헌법에 따른 재판의 '시금석'되어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가뜩이나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위축된 가운데, 홍수와 태풍에 의한 자연재해도 겹쳐 사회가 더욱 어수선하다.

그 와중에 의사들의 집단휴진이나 직무거부로 국민의 보건과 의료체계가 위협받고 있다. 집단감염의 주요 진원지가 된 교회의 예배활동이나 집회에 대한 규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부동산을 둘러싼 사회갈등도 사회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이처럼 사회에서의 갈등이나 분쟁이 늘어나면서 법에 호소하는 일도 덩달아 늘어만 간다. 그런데 정작 법에 의한 결정이 내려지고 나면 불리한 결과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꼭 나오기 마련이다. 모두에게 정의로운 일이라면 애당초 분쟁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니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모두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오해 또한 이러한 '아전인수'격 법인식의 원인이 된다.

법이 꼭 중립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법은 중립적이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곰곰히 따져보면 법에도 편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이 분쟁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조건 한쪽 편을 들지 않는 절대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구체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 이외의 다른 조건을 들어 당사자를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법관이나 법집행자가 사사로이 법을 잘못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공정(fairness)'의 의미가 투영된 것일 뿐이다.

사실 법이란 것이 신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받는 신탁(神託)의 산물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만 염두에 두더라도 법에 편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수가 원하는 것이 법으로 채택되고 소수의 이익은 소홀히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정치과정이 특정 기득권 세력에 의해 포획되어 있다면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이 소홀히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민눈높이 판결론이 원님재판을 부추긴다'는 보수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 이런 대응도 법과 사법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현안이 된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법에도 편이 있는 경우가 있고 또 그것이 오히려 헌법정신에 부합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3월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산재사망 유가족 우선·특별채용 단체협약 합법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산재사망 유가족 우선·특별채용 단체협약 합법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용계약에 관련한 법의 양면성

8월 27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산재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1심과 2심에서 특별채용은 사용자의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해 사회질서를 위반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판단한 결정을 파기한 것이다.

여기서 법에도 편이 있느냐는 우리의 쟁점을 고려할 때 검토대상이 되는 것은 두 가지 법이다. '고용계약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자유로이 체결되어야 한다'는 법과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법이다.

계약의 자유라는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될 '고용계약의 자유'는 계약당사자인 사용자와 근로자가 법적인 차별없이 누리는 자유권이다. 그런데 실제는 사용자가 고용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는 소위 ‘갑’이고 근로자는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현실에서 볼 때 영락없이 ‘을’이다. 고용계약과 관련해 법은 사용자와 근로자에 모두 평등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법은 사용자 편일 수밖에 없다. 계약의 교섭력에서 일자리를 주는 사용자는 우위에 있고 수많은 후보들과 경쟁해야 하는 근로자는 열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법은 개인인 당사자 사이에 자유롭게 정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처럼 개인주의에 입각한 계약자유의 허구성 때문에 우리 헌법은 제33조에서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고 법률로도 함부로 박탈하지 못하도록 결단한 것이다.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노사관계에 관한 입법을 통해 근로자는 단체로서 고용계약을 할 수 있도록을 만들어야 하고 이들의 단체교섭의 결과 단체협약이 만들어지면 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결국 헌법은 고용계약의 자유와 관련하여 근로자의 편을 들어 근로자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이 아니라 단체로서 계약당사자가 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정작 1심과 2심은 고용관계에서의 헌법적 결단이 가지는 의미를 소홀히 보고 개인 사이의 계약이라는 사용자에 유리한 법을 고집한 셈이다. 사실 이런 하급심의 태도가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닌 것이, 이 사안이 특별채용절차에 관한 것이고 이것이 사회질서와 관련해 논란이 생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우리가 검토해야 할 두 번째 법에 관한 것이다.

산재사망자 가족 특별채용의 '양면성'

민법의 기본원리는 사적 자치의 원칙 혹은 계약자유의 원칙이다. 그러나 민법은 공공복리에 저해되는 사적 자치나 계약의 자유에 대한 제한 또한 명확히 했다.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자유는 보장하지 않는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하급심에서 적용된 민법 제103조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하급심은 청년실업이 심각한 현실에서 아무리 산재사망자 자녀라고 하더라도 특별채용하는 것은 일자리 대물림의 결과가 되어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볼 때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용계약으로 단지 근로가 제공되고 그 대가로 임금이 주어지는 단선적 관계만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단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달리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회사가 사용자와 근로자가 고용계약을 토대로 공동으로 형성하는 경제공동체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면, '산재로 인한 특별채용'은 공동체 구성원의 공존을 위한 유용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노동이사제를 통한 근로자의 경영참여가 허용되고 가족 사이의 근로승계가 법적 보호를 받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법으로 강제한다면 모르겠으나 노사합의로 고용승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 자체가 반사회적인 것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고용환경이 원인이 되는 산업재해라는 특별원인으로 발생하는 채용관계라는 점이나 산재사망 근로자의 특별희생으로 생계의 어려움에 처하게 될 가족의 생존보호라는 특별한 사정을 전제로 한 이번 대법판결의 경우 특별채용 자체를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단정할 수만은 없다.

법 해석·적용에 필수적인 법익교량과 헌법정신에 투철한 사법의 필요성

결국 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법률행위의 구체적 내용은 명확히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형량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급심과 대법원의 2인 반대의견은 청년실업의 위기 속에 특별채용으로 일자리 접근이 제한된 제3자의 근로 기회를 보호하는 것이 법적 정의라고 본 반면 11인 다수의견은 특별채용의 근로 기회 제한의 정도가 매우 적다는 판단에 근거해 산재피해자와 그 가족의 보호가 법에 합치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특히 그러한 합의가 단체협약을 통해 확정되어 있었고 헌법이 이러한 단체주의를 반영하는 고용계약상 자율권을 적극적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다수의견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법이 사용자나 근로자, 특정 근로자의 자녀와 제3자 사이에 편을 들 수 있다는 점이 그 첫째다. 그런데 이 편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추가적인 2차적 법의 해석·적용과정, 대표적으로 사법과정을 통해 확정된다는 점이 그 두 번째다. 특히 사법과정에서 법관의 법과 사회현실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은 법익형량의 과정에서 추상적으로 법이 설정한 편 가르기를 제약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는 법이 우선권을 부여한 편에게 전혀 불리한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하급심의 결론대로 헌법과 민법을 해석하고 적용했다면 산재사망자의 자녀 특별채용은 반사회적 법률행위로 무효가 될 수도 있었다. 사용자나 특정되지 않는 추상적 제3자가 법의 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덕목은 단순히 기계적 중립성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법관이나 법집행자는 법을 누구 편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 낼 수 있도록 헌법정신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사회현실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이를 법의 해석과 적용에 실현할 수 있는 '책무성(accountability)'을 가져야 한다.

이번 산재사망자 자녀 특별채용의 유효성을 인정한 대법원은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근로의 권리와 근로3권에 대한 헌법적 결단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고, 근로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보호를 위한 사회적 연대의 가치가 구체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근로 기회의 공정이라는 기계적 평등의 가치보다 소홀히 될 수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판결이 어쩌다 내린 돌출적인 판례가 아니라 노사관계에서 법이 누구 편이어야 하는지를 헌법에 입각해 확인해 주는 거대한 전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