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⑭ '싱귤래리티의 시대'– 19세기후반 콘텐츠산업의 메가트렌드(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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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⑭ '싱귤래리티의 시대'– 19세기후반 콘텐츠산업의 메가트렌드(후편)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08.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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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의 싱귤래리티(특이점)를 견인한 과학혁명
현대 콘텐츠 산업을 만든 일등 공신은 전기와 내연기관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오피니언뉴스=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예수 탄생과 함께 서기가 시작된 이후 1800년 동안 인류의 진보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년 전인 18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인류의 과학과 기술 수준은 중세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는 여전히 신분제에 묶여 있었고,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이 사회의 모습과 기술의 진보를 통해 세상의 모습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 발달의 속도는 느렸다.

여전히 구(舊)시대의 사고와 관습이 사람들을 지배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인류의 기술적 진보나 과학적 발명 발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20세기나 현재의 21세기에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와 과학적 발견을 확장하고 응용하고 있을 뿐이다. 과학 만능의 시대라 불렸던 벨 에포크 시대는 아마 인류 역사 상 과학이 가장 많이 번성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현대 콘텐츠 산업의 기초적인 형태가 만들어진 일차적인 이유는 사회적 안정과 이로 인한 중산층의 성장이었다.

물리학자 존 틴들의 과학 시연. 당시 이러한 과학자들의 공개실험은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콘텐츠였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물리학자 존 틴들의 과학 시연. 당시 이러한 과학자들의 공개실험은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콘텐츠였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이 일차적인 이유라면, 콘텐츠 산업이 지금의 산업화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벨 에포크 시대에 폭발적으로 진보한 과학과 기술이 이루어낸 ‘기술적 특이점’ 덕분이었다. 재밌는 것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역시 현재 특이점의 발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 (AI)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어느 순간 인류의 지성을 넘어서는 슈퍼 AI가 탄생하는 ‘싱귤래리티’에 도달하는 순간 인류의 진보와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바로 그 것이다. 슈퍼 AI로 인해 특이점에 도달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정확하게 예측하지는 못하겠지만 150년 전의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특이점을 되돌아보면 앞으로의 특이점을 맞이할 우리들의 모습을 조금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19세기의 싱귤래리티

여기 한 프랑스 인이 있다.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프랑스인이다. 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쟝이라고 하자. 쟝은 19세기 초반에 태어나 나폴레옹의 시대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가 어릴 때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1제국으로 유럽을 휩쓸고 다녔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시기에 태어난 쟝은 워털루 전투에 패한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후 부르봉 왕조의 복고와 몰락, 오를레앙 왕조의 등장과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 그리고 보불 전쟁까지 겪으며 프랑스 제3공화국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100살 넘게 장수를 누리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생을 마감한다.

그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파리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그의 눈에는 세상이 그야말로 천지개벽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예전에는 밤이 되면 램프에만 의지해야만 했던 것이 어느덧 전기라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항구에는 거대한 철선이 바다를 가르며 대양을 넘어 전세계를 향하고 있다.

하늘에는 비행선과 비행기라는 것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번화가의 거리에는 영화라는 움직이는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둥그런 접시를 넣으면 음악이 나오는 축음기와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하는 높은 분들의 연설을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을 수 있는 라디오라는 물건.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손자와 함께 봤던 세상의 모든 신기한 것들이 불과 20년 사이에 다 만들어졌다.

여전히 구시대의 습관과 사고가 남아있던 쟝은 이런 모든 것들이 낯설고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미 인류는 새로운 문명의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바로 이 것이 싱귤래리티, 특이점이라 불리우는 지점이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만국박람회 전경. 새로운 20세기 출발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진출처=샌프란시스코 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만국박람회 전경. 새로운 20세기 출발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진출처=샌프란시스코 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19세기 싱귤래리티의 기반, 전기와 내연기관

21세기 싱귤래리티의 근원이 디지털 혁명을 통한 인공지능의 발현이라면, 19세기 싱귤래리티의 근원은 과학 혁명을 통한 전기와 내연기관의 등장이라 생각한다.

특히 전기의 발명은 인류의 활동 시간을 늘려 인류가 보다 많은 지식 활동에 종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전기를 이용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들과 이를 활용한 미디어들은 인류의 지식이 보다 빠르게 축적되고 활용될 수 있게 했다.

영화나 축음기같은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테슬라와 에디슨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우리가 아는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기업가였던 간에, 전기라는 프로메테우스 이래 새로운 인류의 불을 활용해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낸 그와 그의 회사가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위업은 인정해야만 한다.

전기가 인류의 지식을 확장하고 보다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면, 1876년 독일의 니콜라우스 오토가 만든 4행정 내연기관은 그 간 문명 발전의 에너지원의 역할을 했던 증기 엔진이 가솔린 엔진으로 바꾸며, 인류의 활동 범위를 극적으로 확대시킨다.

작고 안전하며 출력이 좋은 내연 기관은 곧 철도나 자동차, 배, 비행기 등 다양한 이동 수단에 탑재가 되며 20세기 초반 유럽인이 미국 뉴욕에 가는데 자주 애용한 북대서양 횡단 여객선만 해도 10일 남짓한 시간에 런던에서 뉴욕까지 가는게 가능해졌다. 이전 같으면 멀고 먼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풍력을 이용하는 범선이라면 몇 달을, 증기선이라면 3주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전기와 내연기관이 만들어 낸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특이점을 만들어냈고, 이렇게 만들어진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싱귤래리티는 인류의 가치관과 생활의 모든 모습을 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여기에는 문화나 예술들도 빠질 수 없었다.

4행정 내연기관 (가솔린 엔진)을 만든 니콜라우스 오토와 그가 만든 최초의 내연기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4행정 내연기관 (가솔린 엔진)을 만든 니콜라우스 오토와 그가 만든 최초의 내연기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싱귤래리티가 바꾼 콘텐츠 산업

1879년 선보인 에디슨의 백열전구는 사람들의 활동 시간이 길어졌다. 이전까지는 해가 지면 대부분의 상업 시설들은 문을 닫았고, 야간에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들은 제한되었다. ‘제2의 태양’이 도시 곳곳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한가함을 느끼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이러한 한가한 시간을 때우게 도와준 것이 바로 ‘새로운 콘텐츠’들이었다. 전기가 만들어 낸 인공의 빛은 빛을 활용한 영화같은 새로운 콘텐츠에 활용되었고, 영화는 곧바로 연극이나 무대 공연을 빠르게 대체하며 확대되었다. 이어 나온 축음기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기술들을 이러한 디바이스들은 한가함과 여유가 있던 당시의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이러한 대박 사업을 놓칠 사업가들이 아니었다. 많은 돈들이 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되기 시작했고, 시장은 이제 산업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규모를 키워나갔다.

여기에 가세한 것이 바로 내연 기관으로 인한 이동 범위의 확대였다. 단지 범위만 확대된 것이 아니라 시간까지 줄어든 획기적인 발명으로 인해 확대된 것은 이른바 유통망이라 불리는 상권의 확대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하는 물건을 몇일이면 미국의 뉴욕에서 접할 수 있었고, 필름이나 레코드같이 콘텐츠를 보관할 수 있는 미디어들의 등장은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유통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사회 체계의 변화로 인해 대중이라는 소비자가 생겼고, 내연기관의 발달로 인한  유통망의 확대, 과학 기술과 특히 전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발명품과 미디어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불과 30년 남짓한 벨에포크 시대에 이루어졌다.

좋았던 시절, 아름다웠던 시절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좋았던 이 시기 인류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특이점을 맞이하며 즐겁고 낭만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좋지만은 않았다. 벨 에포크 시대에 만들어진 인류의 1차 특이점은 제국주의나 식민지 탄압,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전쟁을 만들어 낸다. 바로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이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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