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그 왕관 빼앗을 자 당분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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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그 왕관 빼앗을 자 당분간 없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8.11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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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약세 이어지지만 붕괴로 진행되지는 않을 듯
유로화, 강세 보이지만 달러 대체하기에는 역부족
신흥국가 통화, 달러약세 수혜 전혀 못받아
이코노미스트 "달러화 위상, 다른 통화 비해 약하지 않아"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세계의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던 달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에는 달러화의 약세 속도가 주춤해지는 듯했으나, 지난 7월 한 달간 달러화 가치가 10년만에 최대 하락폭인 4.4% 떨어지는 등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되면서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명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달러 대비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는 유로화 등이 달러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장기적으로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지는 달러 약세..왜?

오는 15일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행과 관련한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달러는 소폭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약세 국면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유독 많아 이에 대한 우려감이 여전히 확산되고 있는데다, 미 연준(Fed)이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제로 금리를 유지할 방침임을 거듭 밝히면서 달러의 약세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연준이 주요 국가와 통화 스와프 계약을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달러를 공급한 점 또한 달러 약세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 신흥국에는 우호적인 환경으로 해석된다. 달러화 유동성이 높아지면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를 낮출 수 있고, 원자재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가의 경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움직임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 모습이다. 신흥국가들의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타격이 심각한 상황인데다, 단기적으로 달러의 낙폭이 가팔랐던 것이 신흥국의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이유로 해석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남아공의 랜드화는 4년만에 약세로 돌아서면서 최근 한 달간 세계 통화 중 터키 리라화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달러 대비 랜드화 가치의 월간 변동성은 지난 10일 6주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남아공 랜드화와 함께 브라질 헤알화, 러시아 루블화, 멕시코 페소화 등도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터키 리라화의 경우 달러 약세 속에서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한 주간 달러대비 리라화 가치는 4.2% 급락, 신흥국 통화중 가장 낙폭이 컸다.

리라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오던 터키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 중단으로 인해 리라화는 자유낙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때 24% 수준이던 터키 기준금리가 코로나19로 인해 8.25%까지 하락, 낮은 금리 또한 환율방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르디아 마켓의 안드레아스 스테노 라르센은 "터키에서 새로운 붕괴가 발생할 위험은 신흥 시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에 투자했을 때 따르는 위험에 대해 더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8년 1분기 달러 가치는 올해 하락폭에도 못미치는 2.5% 수준이었지만, 당시에는 신흥시장 펀드에 1180억달러가 유입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신흥국가의 채무상환 능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지난 4월 이후 신흥국 외화표시 채권으로의 자금 유입 규모가 미국과 유럽의 투기등급 회사채로 들어간 금액보다 적은 수준이었다는 설명이다. 

루이스 코스타 씨티은행 전략가는 "신흥시장을 포함해 위험자산에 유리한 환경이 형성된 듯 했지만, 투자자들이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됐다"며 "금융시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부정적으로 변한다면 신흥시장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인덱스 추이.
달러인덱스 추이.

달러 약세에 유로화는 강세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로화 가치는 회복세를 보였다. 유로화는 지난 7월에만 달러대비 5% 이상 올랐다. 이는 10년만에 최대 월간 상승폭이다. 유로화는 5월 이후 10% 상승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처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지역 국가들의 경우 코로나19가 비교적 안정적인 추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 21일 EU 27개국 정상들이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회원국들의 경제를 위해 7500억유로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한 점도 유로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유럽국가들의 역할이 미국에 비해 커졌다는 인식도 한 몫 한 것이다. 

위안화의 경우 지난달 말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절상을 고시하면서 달러당 6위안대를 유지중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에 비해 중국 경제의 회복세가 긍정적"이라며 "위안화 가치가 상승해 1년 이내에 미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6.70위안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원화의 경우 달러 약세 기조에도 불구하고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가 확대되면서 달러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이것이 원화 강세 압력을 상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내국인의 해외주식투자 규모는 역대 3번째로 컸다. 올해 상반기 내국인의 해외 주식투자는 253억 5000만달러를 증가해 2007년 상반기(261억달러)와 하반기(264억6000만달러) 이후 최대를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국내기업들의 수출이 줄어든 것 역시 원화강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출기업들이 달러로 수출을 한 후 이를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화 가치가 상승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수출이 크게 줄면서 이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설명이다. 

달러약세에도 기축통화 역할은 지속될듯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고, 연준의 유동성 확대 기조가 지속되면서 약달러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토론토 스코티아방크의 숀 오스본은 "달러화는 중기적으로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다만 약세 기조가 이어지더라도 붕괴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달러가 붕괴할 것으로 예상할 만한 근거가 없는 만큼,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 유로화나 위안화가 달러의 위치를 대신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로화의 경우 짧은 기간 동안 몇 차례의 실존적인 위기를 맞이한 바 있고, 중국의 금융시스템은 세계 규범과 비교했을 때 훨씬 폐쇄적이고 불투명하다"며 "미국의 달러는 일각에서 예상하는 것만큼 경쟁국들에 비해 약하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이 언론은 "달러의 세계적인 역할은 미국의 수출력과 신용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국이 쌓아온 지정학적 질서에 얽매여 있다"며 "달러의 가장 큰 위협은 유로화나 위안화의 매력이 아니라 70년 이상 미국이 쌓아온 세계적 질서"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계에서 미국의 경제적 역할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예외적"이라며 "미국 주도의 글로벌 무역 재구축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달러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영국 파운드화가 미국의 달러에 기축통화 위상을 내준 것처럼 달러 또한 대체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캐서린 도밍게즈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달러화가 언제까지나 지배적인 역할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지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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