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권력은 부동산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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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권력은 부동산으로 넘어갔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8.1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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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지난 7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 청와대 수석 등 참모진 6명이 부동산을 포함 각종 정책이 빚어낸 혼선과 난맥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윤미향 의원 사건, 박원순 시장 파문 등도 물론 있었지만 부동산 정책의 부정적 여파로 인해 청와대 비서진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일반적인 견해다.

주택 처분 이슈로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킨 일부 참모진이 포함된 이번 사의 표명에 여론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정책 방향보다 주택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경제적 기득권이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 시내 주요 아파트 가격은 강남이 아닌 곳에서도 이미 10억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과 회동한 이후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발언을 해 진보진영 정치인 및 시민단체로부터 수많은 비난과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발언의 맥락과 진실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치적 영향력보다 경제적 이익, 시장의 파워가 자본주의 시대에 훨씬 더 우위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력은 부동산으로 왜 넘어갔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이후 현재 대한민국의 권력은 시장, 그것도 구체적으로 부동산에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주택을 처분하라고 고위 공직자에게 단호한 메시지를 던져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임기보다 영원히 시장에서 독재할 가능성이 높은 아파트에 기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주장이 어리석다고 보기도 어렵다. 참고로 국내 부동산 상승 폭은 1964년 이후 55년이 넘게 하락한 적이 거의 없다. 경제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리카도는 지대소득의 지속적인 증가는 건설적인 근로 의욕을 저해하기에 자본주의 경제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주의의 대부 리카도가 인정할 만큼 부동산의 위력은 막강하다.

이를 막기 위해 대선이 진행될 때마다 유력 후보들은 부동산 대신 창조와 혁신을 거론하며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내놓았고 기업가정신의 역동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경기가 침체할 기미를 보이면 역대 정부는 부동산 육성에 초점을 두고 건설 경기 활성화라는 손쉬운 대안으로 경제 성장을 주도해왔다. 이러니 첨단산업 육성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2014년 9월 박근혜 정부는 ‘규제 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 회복’ 대책을 발표하며 '초이 노믹스'로 대변되는 양적 완화 방침을 강화, ‘빚 내서 집을 사야 한다’는 신념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창조경제를 통해 개인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것보다 빚 내서 집사는 부동산 활성화에 박근혜 정부는 끝내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내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규제를 통해 부동산을 잡겠다고 선언했지만 3년째 이어지는 저금리 기조와 지방 육성정책 미비는 서울 지역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대통령의 요청에도 다주택을 지닌 고위 공직자의 변함없는 주택에 대한 애정과 소신은 결국 부동산이 정부 위에 있다는 확고한 시그널을 시장에 주었다. 

경실련이 지난 6일 '고위공직자 부동산 재산 분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부동산이라는 괴물을 키우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활성화를 통해 ‘빚 내서 집을 사야 한다.’며 부동산 괴물을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는 참모들의 끈질긴 부동산 애정과 과한 규제가 시장에 혼선을 주며 부동산 괴물을 더욱 키워나갔다.

문제는 정부가 부동산에 대해 과하게 집착해서 규제 강화 또는 완화의 정책 카드를 내밀수록 부동산 폭등을 더욱 유발하는 기현상에 있다. 

2019년 한국주거환경학회에서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부동산 정책 또는 부동산 이슈가 공론화될수록 대중은 이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워나가고 단기간 내에 부동산 시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부동산에 대해 언급할수록 대중은 규제든 활성화든 상관없이 더 많은 관심을 보여 더 높은 기대심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내밀자 곧바로 세종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서울 지역 부동산 폭등을 잠재우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방침을 만지작거리자 세종시 주택 가격은 곧바로 과열되었다. 부동산 괴물은 정부의 과도한 정책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정부의 방향과 상반된 행보를 보인 참모들, 부동산에 대한 과한 정책 남발이 결국 부동산에게 절대권력이라는 반지를 주었다. 정부의 의지대로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엇박자가 결국 시장이 맞다는 합리적 가설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우리에게 지금 남은 건, 창조와 혁신은 오직 부동산에서만 가능하다며 투기와 떼 짓기가 성행하는 불편한 진실뿐이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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