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미군 1만2천명 감축, 독일은 어떤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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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미군 1만2천명 감축, 독일은 어떤 선택할까
  •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0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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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트럼프정권, 주독 미군 1만2천명 감축 발표...독일은 '충격'
트럼프-메르켈 간 개인적 악감정이 직접적 배경
메르켈, G7 대면 정상회의 불참 통보·러시아 가스관 사업 지속 '갈등 악화'
독일, 11월 미 대선이후 시간 갖고 해결 기회 찾을 듯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최수정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지난 7월 29일 미국은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감축 계획을 현실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즉각적으로 독일 저명일간지인 쥐트도이치 짜이퉁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 독일에 대해 말하길, ‘너희들은 우리를 너무 오랫동안 이용해왔어’” 실로 제목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충격적이다.

미국의 감축 계획은 1만 2000명으로 현재 주독미군 규모가 3만 4500명인데 향후 2만 250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 중 6400명은 미국으로 귀국하고, 나머지 5400명은 이탈리아, 벨기에, 폴란드 등에 재배치될 예정이다. 그리고 유럽주둔미군지휘본부(EUCOM)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벨기에의 몽스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미 일방적 감축 발표에 독일도 반발

이런 날벼락 같은 전조는 이미 지난 6월부터 나타났다.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사전통보없이 주독 미군 9500명을 감축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과 독일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결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독일에서는 메르켈 총리 이후 차기 총리 유력인사로 거론되고 있는 바이에른 주총리인 마르쿠스 죄더(기사당, CSU)를 비롯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CDU) 전 원내대표까지 일제히 미국의 발표를 비난하고 나섰다. 죄더는 7월 29일 뮌헨 소재 아메리카하우스 재개관식에 참석하여 “미-독 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상호존중은 일방적이면 안 된다. 오늘날 미-독관계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우회적으로 미국의 일방적 행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2018년 12월 독일의 미군기지를 방문해 미군 병사들로부터 환호를 받고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 AP/연합뉴스
2018년 12월 독일의 미군기지를 방문해 미군 병사들로부터 환호를 받고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 AP/연합뉴스

 

메르츠 기민당 전 원내대표는 7월 30일 “미국은 나토의 채권추심소가 아니다. 독일은 미국에게 빚진 것이 없다. 안보는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이제 유럽의 안보는 유럽 스스로 돌볼 기회가 왔다”라고 논평했다.

7월 30일자 독일 포커스지는 온라인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메르켈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앙심'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이 기사 제목에는 독일의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느껴진다. “말을 듣지 않는 자, 느껴봐야 한다. 메르켈에 대한 트럼프의 싸움은 부메랑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르켈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거칠고, 예의없고, 유아적이다 못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기사 말미에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오는 11월 3일 미 대선 이후 이 결정을 재고할 수 있을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르켈 총리에 대한 불만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30일에는 G7회의를 대면으로 개최하고자 했던 트럼프대통령의 초대를 메르켈 총리가 단칼에 거절해 버린 일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고 전해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 미군감축을 사전협의도 없이 결정한 것은 일종의 메르켈 총리에 대한 앙갚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양국의 관계 악화가 유럽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미국 의회가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9일 미상원 초당파 의원들이 '2021년 국방수권법(NDAA)' 예산개정안을 제출한 것이다. 이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은 6월 30일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독일에서의 미군감축은 러시아에게 선물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며,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은 미국의 안보와 나토의 결속력을 저해시키는 짓이다”라고 밝혔다. 이 개정안에는 미국 안보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6개월 전에 나와야만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다는 제한이 걸려있다. 7월 23일, 이 개정안은 미 상원을 통과했다.

독일도 경제악화로 방위비 지출 못올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29일 미국 국방부가 독일 미군의 감축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가 지적한 연간 방위비 2%(GDP 기준) 지출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는 지적이 있다. 2019년 기준 독일의 국방비 지출은 1.36%로 미국이 요구한 2%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2% 방위비 지출은 2030년에 달성할 계획인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의 계획으로 잡은 2024년까지의 1.5%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경제가 계속 좋아져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최근 경제상황은 좋지 못하다. 유럽에서 경제력이 가장 탄탄한 나라인 독일의 2019년 경제성장률이 1%에 못 미치는 0.8%였다. 그리고 올해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해 -7%(IMF 전망)의 역성장이 예상된다. 당분간 독일이 국방비에 더 투자할 예산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독일간의 관계 악화는 국방문제에서만 불거진 것이 아니다. 독일은 러시아와 2019년 제2의 해저가스관(Nord-Stream-2)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당연히 미국이 대놓고 반대를 했다. 결국 미국의 제재 협박으로 가스관 시공사인 스위스 Allseas사는 시공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독일은 러시아와 해당 가스관 시공사업을 계속하고 있고 올해 완공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속이 터질 노릇인 것이다.

마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15일 “러시아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투자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그의 이런 제재내용은 미 의회의 2021년 국방수권법(NDAA) 예산개정안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독일연방의회 경제위원회에 따르면 관련 제재 대상은 유럽 12개국 120개 기업이 해당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7월 30일자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대놓고 비꼬았다. “러시아에 에너지 구입명목으로 1년에 수조원을 가져다주면서, 왜 2% 군비지출을 맞추지 않는가?”

러시아- 독일간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러시아의 '노드 스트림-2 가스관 건설 현장. 사진= AFP/연합뉴스
러시아- 독일간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러시아의 '노드 스트림-2 가스관 건설 현장. 사진= AFP/연합뉴스

그러나 독일은 독일 나름의 고충이 있다. 독일은 2050년까지 탈원전/탈화석의 에너지 전환정책을 완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탈석탄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재생에너지의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상태다. 따라서 독일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에너지전환정책의 중요한 중간단계로 보고 있다. 최근 천연가스는 독일 주요에너지원 중 두번째로 높은 의존도(23.5%, 2018년 기준)를 보이고 있으며, 매년 시장성장률이 3% 이상이다. 독일은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없으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은 이미 유럽전체(EU회원국 28개)에서도 비슷한데, 그 수입의존도는 매년 3%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독일 군사안보보다 경제안보를 더 걱정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메르켈 총리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는 '유럽 독자노선'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군 창설'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탈취로 인해 미국과 적대적 경제제제관계에 빠져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이 원하는 독자적 생존을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회복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터키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터키의 레제프 에도르안 대통령의 반미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2018년 독일을 국빈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이 이렇게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여 추진하는 이유는 자국의 경제안보를 러시아 대응이라는 군사안보보다 더 심각한 생존위협 요소로 보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의 둔화, 실업, 유럽의 분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 경우 유럽의 미래는 미국의 협박보다 더 심각한 파국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일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 필자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며 오피니언뉴스 베를린 통신원 활동을 겸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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