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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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버려라’
  • 황헌
  • 승인 2015.12.0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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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헌 mbc 앵커의 글입니다. /편집자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는 책이 나왔습니다. 소유 물건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 왜곡된 심리가 숱한 물건을 끼고 사는 맥시멀리스트를 만든다고 합니다. 반면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없어도 된다면, 그리고 버리고도 후회할 물건은 하나도 없다면 굳이 끼고 살 필요는 없겠지요. 영원히 오지 않을 언젠가를 위해 끼고 사는 물건들 버리면서 삶의 의미를 얻게 된 미니멀리스트의 길 저도 한번 실천해볼까 합니다.

 

미니멀리즘을 두산백과는 이렇게 정의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시각 예술을 출발로 음악, 건축, 패션, 철학으로 확대된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만을 표현할 때 비로소 리얼리티가 실현된다는 믿음을 가진 문화현상이라고. 영어에서 '최소한도의, 최소의, 극미의'라는 뜻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뜻의 '이즘(ism)'을 결합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맥시멀리즘은 반대다. 미니멀리즘과는 정반대로 “더 많은 것이 더 많다” 또는 “큰 것이 아름답다”는 심미적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예술적, 사상적 경향을 말한다. 문학에서의 맥시멀리즘은 미니멀리즘처럼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행했는데, 백과사전적인 지식과 정보가 총망라돼 있어 매우 길다. 확대 지향적이며, 플롯도 미로(迷路)와 같이 복잡다단하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지향하는 예술인이나 건축가, 철학자를 각각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로 부른다. 그런데 그것을일상의 삶으로 이 두 관점을 옮겨보면 더 확연히 대비된다. 맥시멀리스트는 소유, 그것도 가급적 값나가고 크고 좋은 것에 대한 집착이 삶의 특징이다. 일단 무엇이든 보관한다. 물건을 살 때는 가급적 고품질에 고성능이어야 하고 크고 묵직한 제품을 선호한다. 그렇게 쌓은 물건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공간을 채운다. 지배한다. 그리고 나중엔 명령 또는 항의까지 한다. 나를 이렇게 버려둘 거냐고.

일본의 출판사 편집자인 사사키 후미오도 소문난 맥시멀리스트였다고 한다. 좋은 물건 사다 모았고 아무리 물건을 챙겨도 여전히 남이 가진 내가 갖지 못한 물건에 눈길이 가더란다. 집은 점점 좁아지고. 그렇게 흡족하지 못한 자신을 어느 순간 문득 발견하고는 깨닫는다. 자신이 애지중지 사서 모았던 물건들 가운데 세상에나 1년은커녕 여러 해 한번 만지지도 않은 채 지나온 것들이 왜 그리 많던지. 소스라치게 놀라 물건 살 때를 회상해본다. 타인의 물건에 대한 경쟁심과 집착에서 출발한 일시적 만족을 위한 도구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의 공간을 점령한 침입자였을 뿐. 그래서 후미오는 버리기로 맘을 먹었다.

인간은 본래 미니멀리스트로 출발한다. 빈손으로 태어난 가장 미니멀한 소유의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얼마 전 세상을 뒤흔든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 투병 말기의 글이 다가온다. 자신의 부유한 삶과 그 부가 사후 세계와는 무관한 것임을 느끼는 데서 오는 처절한 자각의 글은 큰 울림이 되어 다가왔었다.

후미오씨는 사람들은 꼭 필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모으고 사느라 시간을 보내고 지갑을 비우지만 결국 그 물건들의 압박에 갇혀 삶의 가치를 놓치고 산다고 보았다. 대표적으로 그는 몇가지 버리기의 신조를 만들었다. ‘버리고 후회할 물건은 하나도 없다’, ‘1년 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버려라’, ‘영원히 오지 않을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 “언젠가”를 위해 물건 쌓아두지 말라’, ‘남의 눈을 의식해 갖고 있는 물건은 버려라’, ‘버리기 힘든 물건은 사진으로 남겨라’, ‘여분을 비축해두지 마라’, ‘사복을 제복화하라’ 그리고 ‘구입한 물건을 빌렸다고 생각하라’ 등의 신조였다.

그렇게 삶의 부피를 줄였더니 이런 12 가지 기쁜 변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1. 시간이 생긴다.

2. 생활이 즐거워진다.

3.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4.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5.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6.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7. 집중력이 높아진다.

8.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한다.

9. 건강하고 안전하다.

10.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11.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12. 감사하는 삶을 산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당장 버려라.”라고 충고한다.

인생이 경쾌해지는 비움의 기술을 배웠으니 이제 나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당장 버리러 간다. 버리고 비우는 연습, 가장 집착이 강한 사람들한테 필요한 일이겠다. 나 또한 그 범주의 사람임을 알기에 버리는 시도는 적어도 해볼 테다. 첫눈으로 규정해도 좋을 함박눈이 상암의 하늘을 뒤덮은 이 아침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가 의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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